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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참 무섭다. 고정관념은 지독하다. 물론 인간이 가진 기억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선의를 가지고서도 잘못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해는 가지만 짜증이 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짜증 나는 왜곡과 편견

"그(DJ)는 좌·우 갈등과 산업화·민주화 갈등의 한 상징과도 같았다. (…)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은 우리 사회 갈등이 한 근원이다."

<조선일보> 8월 19일 자 양상훈의 기명 칼럼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려 깊은 왜곡인데, 이 매체는 이런 기술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하는 '3김 청산론'을 만들어 DJ를 공격하고 노태우를 돕던 신문 아니던가. 당시 "두 김씨(DJ와 YS)의 이름이 결코 우리 정치의 마법이 아니고 두 사람 아니면 우리는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은 맹신"을 규탄했다. <조선일보>다운 통찰이요, 혜안이다.

"그(DJ)는 우리 사회의 고질인 지역주의의 희생자이고 하지만 동시에 원인 제공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겨레>의 8월 19일 자 칼럼이다. 이건 문제다. '원인 제공자'라는 대목에서 딱 걸린다. 잘못된 편견, 고정관념에 짜증이 난다. 추정컨대, 아마 1987년 10월 DJ가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것을 염두에 둔 지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1980년의 광주항쟁을 기억한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광주항쟁은 독재에 대한 저항이지 지역독립을 외친 게 아니었다.

그처럼 아픈 상처를 지닌 호남이 1971년 대선에서 대중경제론 등을 외치며 독재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DJ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1963년 대선에서 낡은 체제를 쓸어버리고 출마한 박정희 후보에게 호남이 영남(56.7%)과 비슷한 54.2%의 지지를 보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광주를 피로 짓밟고, DJ를 핍박한 그들이 같은 세력이라면 과연 누가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

물론 그때 DJ가 탈당해서 당을 만들지 않고, 또 대선에서 '4자 필승론' 따위에 근거해 독자출마하지 않았다면 민주화가 순조로웠을 것이란 지적도 가능하다. 당시 유시민이 <게임의 법칙>이란 책을 통해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인정할 수 있는 논리다. DJ가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 신세에서 가해자의 처지로 바뀌는 건 더 더욱 아니다.

가능성만 놓고 말한다면, YS가 기득권을 바탕으로 DJ 양보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DJ가 그런 선택을 했을 리 만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DJ의 이탈과 출마를 개인 욕심의 발로로 비판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계산된 행동'으로 보는 것은 야비한 비틀기다.

DJ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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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1971년 대선에서 지역출신과 이념성향으로 DJ를 공격하기 시작한 이후 그에 대한 '악마화'는 점점 심해졌다. 멀쩡한 생목숨을 바다에 빠트려 죽이겠다는 시도까지 감행할 정도로 그들의 공포가 처절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대항쟁까지 DJ는 지역주의를 부추기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1987년 결과적으로 나타난 호남의 DJ 몰표 현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DJ를 지역주의의 화신으로, 빨갱이로 모는 덧씌우기 작업이 만연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는 결코 좌·우 갈등의 상징도 아니고, 산업화·민주화 갈등은 단연코 상징이 아니다. 우리 사회 갈등의 근원이 아니다. 독재정권의 의도된 매도라는 원인을 빼놓고서, 그 후의 현상만 가지고 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 역시 계산된 왜곡이다. DJ는 지역주의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다. 희생자일 뿐이다. 설사 그렇게 볼 여지가 없지 않더라도 그것은 30년 가까이 왕따와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허용된 자위권이나 방위권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이 말은 어떤 이의 시커먼 속셈을 쉽게 예단하라는 속담이 아니다. 그의 행동을 촌탁할 때는 최대한 신중하라는 경구다. DJ의 속내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다른 행동에 비추어 보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DJ는 과거와의 화해, 동서 통합에 나섰다. 6년간의 감옥살이와 10년에 걸친 연금 생활을 겪고 대한해협에서 수장당할 뻔한 그였지만 그는 박정희를 용서했다. 박정희 기념 재단에 국고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죽하면 박근혜 전 대표가 말했으랴. "아버지 (집권)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 DJ가 화답했다. "정치를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2004년 8월에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다.

뿐이랴. DJ는 청와대 비서실장에 TK의 핵심이던 김중권 전 의원을 발탁했다. 그것도 구색 차원이 아니라 실권을 줬다. 끊임없이 동진정책을 추진했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부은 밀라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런 그에게 2000년 16대 총선에서 영남은 그에게 단 한 석도 허락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가?

이 땅의 우파, 보수가 동경해 마지않는 나라 미국은 2008년 대선에서 흑인 대통령을 뽑았다. 미국은 흑백갈등 때문에 내전을 겪은 나라다. 무려 60여만 명이 희생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 국민 의료보험제가 도입되지 못한 것도 인종갈등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 백인의 43%가 흑인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박상훈의 <만들어진 현실>을 보면, 우리의 지역주의는 산업화 이전 아무런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오직 독재정권이 정권안보 차원에서 동원한 논리요, 통제 기제였다.

DJ는 지역주의를 이용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이처럼 제대로 된 뿌리조차 없는 지역주의 때문에 1997년 대선에서 영남은 호남 출신 DJ를 홀대했다. 고작 13.2%의 지지를 보냈다. 이 조차도 산업화 시대에 일자리가 있는 영남으로 이주한 '가난한' 호남 출신의 지지 덕분이었다. 좋다, 영남의 냉대를 평민당 창당이라는 분열에 대한 단죄 차원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3당 합당이란 야합을 주도한 YS에게 영남은 어떠했나? 그들은 1992년 대선에서 무려 68.8%의 지지를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부당하다. 부끄러워해야 할 수치다.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 호남은 인구 덩치에서 영남에 비교가 안 된다. 사실 둘. DJ는 한 시도 대통령이 되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사실 셋. DJ는 평소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통령직을 열망하는 DJ, 현실감각이 뛰어난 DJ가 호남만 먹어서는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DJ가 호남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이처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가 바보처럼 그랬다고 억측해야 하는가.

지역주의에 희생당한 사람과 수혜를 누린 사람은 다르게 대해야 한다. DJ가 피해자라면, MB는 수혜자다. 이 주장은 싫어하는 사람에게 어떤 딱지를 붙이려는 억지가 아니다. MB는 서울시장 시절 시종일관 수도권 이기주의를 자극하고, 동원했다. 덕분에 그는 선거 역사상 드물게 수도권에서 압승할 수 있었다. 정동영 후보에 비해 2배 넘는 득표율을 얻었다. 과거 그 누구의 독주도 쉽게 허용하지 않던 수도권이 MB에게 올인한 것은 그의 지역주의 정치 때문이다.

MB가 수도권 지역주의를 형성·활용할 수 있는 계기는 참여정부가 줬다. 참여정부가 식민지로 전락한 지방을 살리기 위해 지방분권 차원에서 국토 균형개발을 시도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하고, 추진했다. 기득권을 빼앗기는 수도권으로서 맘이 편할 리 없었다. MB는 이런 정서를 파고들었다. 행정수도 이전에 극력 반대했다. 서울시장으로서의 반대를 넘어 정치적 효과까지 감안한 행보였다.

지역주의를 부추긴 인물, MB

참여정부는 의도와 상관없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조장했든, 막지 못했든 어쨌든 참여정부 시절 서울의 집값은 폭등했다. 이것을 두 가지 효과를 낳았다. 수도권 이기주의를 자극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부동산이 자산증식의 주요 통로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 MB의 뉴타운 정책이다. 뉴타운은 민주정부의 실패로 야기된 개인주의와 수도권 이기주의를 자극하는 촉매로 작용했다. 그 결과가 바로 17대 대선에서 MB에 대한 수도권의 편애였다. 그 효과는 총선까지 이어졌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MB는 지역주의 해소를 거론했다. 그것은 수도권이 흔들리고, PK가 이탈하는 흐름에 대한 처방이다. 지난 대선에서 '수도권+영남연합'을 복원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70%에 가까운 반MB 정서 속에서 그것밖에 나름대로의 활로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도나 친서민 운운한 것도 지역주의 동원을 위한 터 닦기에 다름 아니었다. 

관점이 곧 가치요, 시선이 곧 권력이라고 했다. 어떤 관점과 시선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해법을 택할 것인지도 관점과 시선의 문제다. DJ에게 따뜻하고, MB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지역주의 운운하면서 또 다시 우리 사회의 잘못을 숨기려 하는 시도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지역주의에 대한 해법은 지역주의를 소리 높여 성토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주의의 원인인 권위주의, 부자 감세, 지역 편중, 불평등과 차별, 소외와 빈곤 등을 없애는 것이다.

DJ는 할 만큼 했다. 과도한 피해를 당했고,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냈다. 독재정권이 그에게 올가미 씌운 온갖 허상과 왜곡을 바로 잡아주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어영부영 뇌 뱉는 찬사 속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DJ에게 진 빚, 이제 갚아야 한다. 특히 그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들에게 속죄를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DJ와 같은 피해자가 없을 것이고, 그래야만 DJ처럼 큰 인물이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1963년부터 1984년까지 <뉴스위크> 동경특파원을 하면서 주은래·박정희·김일성·김영삼·김대중 등을 인터뷰했던 버나드 크리셔가 말했다.

"김대중씨가 죽고 나면 한국인들은 그때 가서야 김대중씨에게 정말로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태그:#DJ, #MB, #지역주의, #박근혜, #아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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