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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혼자 배낭여행을 하게 되는 저는 한국을 떠나면 어쩔 수 없이 그 나라의 현지인과 다른 나라에서 온 또 다른 여행자들과 어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과 첫 대면에서 십중팔구는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가가 통성명의 첫 주제가 되곤 합니다.

외국인과의 첫대면에 인사 다음으로 언급되는 질문은 십중팔구 제가 어느 나라사람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 밖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재치있고 의미있게 소개할 수 있는 가가 중요해집니다.
 외국인과의 첫대면에 인사 다음으로 언급되는 질문은 십중팔구 제가 어느 나라사람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 밖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재치있고 의미있게 소개할 수 있는 가가 중요해집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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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른 나라를 자신의 상식선에서 기억하듯, 그들도 한국에 대해 단편적인 기억이나 경험에 의존하게 됩니다.

20년 전 쯤에는 '88서울올림픽'으로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계 각국의 미디어가 올림픽이 개최되는 나라에 관한 보도를 쏟아내고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4위에 오른 대회결과에 놀라워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차례로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호들을 허물어뜨리고 4강에 진출한 것 또한 제가 한국인이라는 소개 후 상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국을 기억하는 파란의 이미지였습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신장되고 나서는 한국을 기억하는 장치들은 더 많아졌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의 초대형 광고 디스플레이인 점보트론Jumbo Trom에서 삼성이나 LG의 광고가 상시로 노출되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현대와 기아 자동차 현지 딜러들의 매장과 만나게 됩니다.

한국 밖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나 한국 기업의 광고판을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더문 일이 아닙니다.
▲ 뉴욕 맨해튼의 한국 기업의 광고판 한국 밖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나 한국 기업의 광고판을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더문 일이 아닙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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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캐나다 퀘벡 북부 세인트로렌스 강가의 작은 도시에서 경비행기가 기아자동차의 매장 개소開所 광고를 매달고 굉장한 소음을 내며 몇 시간씩 도시의 상공을 선회하는 광경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국의 중고차는 산업화가 뒤진 각 나라에서 한국과 한글을 알리는 첨병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정차 지역명을 달고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도시를 누비는 서울에서 은퇴한 시내버스, 염소와 양을 싣고 달리는 몽골 울란바토르의 신진공업사의 폐차트럭 등 버스와 택시와 트럭은 한국에서는 은퇴했지만 세계 각국에서 다시 현역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글을 지우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글이 되레 고급함을 상징하는 아이콘 역할을 하는 듯싶었습니다. 때로는 수리한 차량의 일부분에서 한글이 훼손되었을 경우 페인트로 서툴게 한글을 복원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만난, 한국의 버스 노선 정류소가 표기된 한국 버스 중고차. 그들은 부러 한글을 지우지않고 있습니다. 이 한글을 통해 그들은 고급한 차라는 이미지를 갖고자하는 듯 합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만난, 한국의 버스 노선 정류소가 표기된 한국 버스 중고차. 그들은 부러 한글을 지우지않고 있습니다. 이 한글을 통해 그들은 고급한 차라는 이미지를 갖고자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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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 교외의 염소 사이에 놓인 몽골 한 중산층의 자가용은 서울에서 폐차된 '서울시 한미자동차전문학원'의 16호 운전연습용차량입니다.
 울란바토르 교외의 염소 사이에 놓인 몽골 한 중산층의 자가용은 서울에서 폐차된 '서울시 한미자동차전문학원'의 16호 운전연습용차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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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는 서울시와의 자매결연된 도시입니다. 시내의 메인 도로를 '서울의 거리'로 명명하고 가로등에도 서울시의 문장門帳을 달았습니다. 도로입구에는 '서울의 거리'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울란바토르는 서울시와의 자매결연된 도시입니다. 시내의 메인 도로를 '서울의 거리'로 명명하고 가로등에도 서울시의 문장門帳을 달았습니다. 도로입구에는 '서울의 거리'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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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프랑스 한 호텔의 바에서 새벽까지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과는 반도체를 수입하는 영국과 프랑스인의 논쟁을 중재해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삼성의 반도체가 좋다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일행이 LG의 반도체가 더 좋아졌다는 얘기로 꼬리를 이었고 결국 이 두 사람은 제게 판정을 의뢰했습니다.

왼쪽 신사는 프랑스회사에서 반도체 수입을 담당하고 있는 프랑스인이고 왼쪽분은 영국회사의 반도체 수입에 관여하고 있는 영국 사업가입니다. 그 사이의 아가씨는 흑장미라는 별명의, 두 신사가 몇개월째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 호텔의 식음료코너 매니저입니다. 저는 이 밤 두 신사의 반도체논쟁을 틈타 흑장미의 장미꽃 한송아리에 다가가는 어부지리漁夫之利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프랑스, 파리 왼쪽 신사는 프랑스회사에서 반도체 수입을 담당하고 있는 프랑스인이고 왼쪽분은 영국회사의 반도체 수입에 관여하고 있는 영국 사업가입니다. 그 사이의 아가씨는 흑장미라는 별명의, 두 신사가 몇개월째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 호텔의 식음료코너 매니저입니다. 저는 이 밤 두 신사의 반도체논쟁을 틈타 흑장미의 장미꽃 한송아리에 다가가는 어부지리漁夫之利의 이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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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빌딩에서 내려다본 이 도시의 옥상풍경이 인상 깊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옥상에 진열된 대부분의 에어컨 실외기의 상표는 LG이었습니다.
삼성의 핸드폰은 남아공과 그 인접국에서 아프리카인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꿈의 모델입니다. 스와질랜드나 레소토의 작은 왕국에서도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가전제품들입니다. 올해 7월 몽골의 게르 중앙에 모셔진 TV도 빛바랜 한국 가전회사의 상표를 달고 있었습니다.

남아공의 악명높은 인종분리정책이 낳은 흑인집단거주지역인 Soweto에서 만난 한국의 흔적, HYUNDAI PARK. 이 기업에서 이 짙은 블루빛 담장 너머의 공원 조성에 혁혁한 기여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남아공의 악명높은 인종분리정책이 낳은 흑인집단거주지역인 Soweto에서 만난 한국의 흔적, HYUNDAI PARK. 이 기업에서 이 짙은 블루빛 담장 너머의 공원 조성에 혁혁한 기여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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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은 한국의 이미지를 쉬크chic하게 바꾸었습니다. 97년 당시 이미 북경의 버스 속에서는 한국 가수의 노래가 무시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올 7월 몽골을 방문했을 때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몽골 지상파 방송을 통해서 방송되어 시청률 80%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불가능한 경이적인 기록입니다. 몽골사람들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초원의 오지에서 만난 상당수의 몽골사람들도 한두 문장정도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 울란바토르 교외의, 비가 오는 초원의 녹색 융단위에서 벌어진 나담축제의 경마부문에 참가한 몽골오지의 지역대표로 참가한 일행중에 녹색 비닐 비옷을 입은 이는 한국에서 2년동안 생활했던 분으로 한국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했습니다. 몽골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몽골 울란바토르 교외의, 비가 오는 초원의 녹색 융단위에서 벌어진 나담축제의 경마부문에 참가한 몽골오지의 지역대표로 참가한 일행중에 녹색 비닐 비옷을 입은 이는 한국에서 2년동안 생활했던 분으로 한국어를 상당한 수준으로 구사했습니다. 몽골에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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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200Km 지점의 작은 마을상점에도 한국의 카스맥주가 선반중앙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가게의 다른 선반에도 선명한 한글의 '김치찌개'와 '도시락'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200Km 지점의 작은 마을상점에도 한국의 카스맥주가 선반중앙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 가게의 다른 선반에도 선명한 한글의 '김치찌개'와 '도시락'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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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러시아와 몽골의 한국 외교관이었던 한 학자는 공룡의 보고인 몽골에서 공룡을 연구하며 몽골정부로 부터 가장 아름다운 몽골지역의 60여만평을 40여년동안 임차받아 리조트건설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이 모두 초원인 지역에 바위산이 솟아있고 계곡사이에 소나무 숲이 형성된 무릉도원같은 곳입니다. 최병로선생님은 몇동의 방갈로와 게르를 지어서 방문자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쉼터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몽골 초원속의 작은 한국이었습니다. -울란바타르전화 | 976_9910_0040
-이메일 | viktorchoi@yahoo.co.kr
 오랫동안 러시아와 몽골의 한국 외교관이었던 한 학자는 공룡의 보고인 몽골에서 공룡을 연구하며 몽골정부로 부터 가장 아름다운 몽골지역의 60여만평을 40여년동안 임차받아 리조트건설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이 모두 초원인 지역에 바위산이 솟아있고 계곡사이에 소나무 숲이 형성된 무릉도원같은 곳입니다. 최병로선생님은 몇동의 방갈로와 게르를 지어서 방문자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쉼터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몽골 초원속의 작은 한국이었습니다. -울란바타르전화 | 976_9910_0040 -이메일 | viktorcho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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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제가 전시기획에 참여한 작가의 오픈식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한 히로시마의 전시장 오픈파티에서 함께한 초청 인사들은 한국드라마에 빠진 부인이거나 그 드라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인을 둔 남편들이었습니다. 갤러리관장님의 친구 분은 한국에서 온 저를 위해 특별히 포천 일동 막걸리를 준비해왔습니다. 이곳에서 포천막걸리를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해 놀라워하자 일본인들, 특히 여자들이 한국의 막걸리에 매료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島根? 마스다益田Masuda의 쇼카사갤러리에서의 전시 오픈파티. 저는 한국의 배미애작가의 일본 전시 기획에 참여했고 그 오프닝에 초대받았습니다. 한국을 바라보고 있는 일본 북쪽 동해에 면한 시마네현의 작은 도시,  마스다의 한 개성있는 갤러리에서 한국의 혼을 담아 작업하는 한국 작가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저는 이 쇼카사갤러리의 전시 오프닝에서 이 지역의 시립미술관 기획자들과 현지의 예술가들을 모시고 한시간동안 헤이리와 한국의 예술을 소개하는 강연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했고 한국과 헤이리의 예술커뮤니티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島根? 마스다益田Masuda의 쇼카사갤러리에서의 전시 오픈파티. 저는 한국의 배미애작가의 일본 전시 기획에 참여했고 그 오프닝에 초대받았습니다. 한국을 바라보고 있는 일본 북쪽 동해에 면한 시마네현의 작은 도시, 마스다의 한 개성있는 갤러리에서 한국의 혼을 담아 작업하는 한국 작가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제게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저는 이 쇼카사갤러리의 전시 오프닝에서 이 지역의 시립미술관 기획자들과 현지의 예술가들을 모시고 한시간동안 헤이리와 한국의 예술을 소개하는 강연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했고 한국과 헤이리의 예술커뮤니티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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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카사갤러리의 관장이신 야시마와 타마키 모녀는 일본을 방문해준 것에 대한 배미애작가과 저를 마스다시내의 한 요리집으로 저희를 초대했습니다. 그 입구에서만난 한국어 '어서오십시오'가 퍽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지인 이곳에서 한국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않았었거든요. 

쇼카사갤러리의 관장이신 야시마씨와 뮤지션인 관장님의 남동생부부 그리고 일본으로 시집와서 이곳에서 한국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신 제주도가 고향인 한국원적의 레스토랑주인.
 쇼카사갤러리의 관장이신 야시마와 타마키 모녀는 일본을 방문해준 것에 대한 배미애작가과 저를 마스다시내의 한 요리집으로 저희를 초대했습니다. 그 입구에서만난 한국어 '어서오십시오'가 퍽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상당히 오지인 이곳에서 한국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않았었거든요. 쇼카사갤러리의 관장이신 야시마씨와 뮤지션인 관장님의 남동생부부 그리고 일본으로 시집와서 이곳에서 한국레스토랑을 운영하고 계신 제주도가 고향인 한국원적의 레스토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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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kasha Gallery와 함께 기획된 히로시마 바자레갤러리Bazarez Gallery의 배미애작가의 전시 오프닝에서의 저녁 파티. 우리는 히로시마 각 대학의 미대 교수님들과 히로시마의 예술가들과 일본과 한국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의 한국드라마 열풍에 대해서도 술안주로 올랐지요.
 Soukasha Gallery와 함께 기획된 히로시마 바자레갤러리Bazarez Gallery의 배미애작가의 전시 오프닝에서의 저녁 파티. 우리는 히로시마 각 대학의 미대 교수님들과 히로시마의 예술가들과 일본과 한국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의 한국드라마 열풍에 대해서도 술안주로 올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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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국제공항에서 인천행탑승을 위해 2층 출발 보딩장으로 가던 저는 누군가를 환송하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출국장 한 면을 빼곡하게 채운 백여 명의 부인들과 마주했습니다. 그들은 히로시마에서 공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던 가수 류시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류열풍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었고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국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 일본에서 만난 한류, 류시원 류시원씨를 보기위해 출국장 격리된 유리창으로 모여든 일본의 류시원 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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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비행기를 탑승하게 된 류시원. 그의 손짓 한 번에 일소일비一嚬一笑하는 일본의 부인들을 보면서 저는 우리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과거 허리우드나 홍콩 배우들의 방한에 우리가 보였던 모습의 일부이지요. 한류는 한국에 국한되었던 연예사업의 규모를 수십배 키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활동이 주춤해진 스타들도 외국에서는 여전히 인기절정입니다. 한류가 가져다준 한국에 대한 부가가치는 직접적인 경제효과 외에도 측정불가능한 천문학적인 부대효과를 유발합니다.
▲ 류시원 저와 같은 비행기를 탑승하게 된 류시원. 그의 손짓 한 번에 일소일비一嚬一笑하는 일본의 부인들을 보면서 저는 우리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과거 허리우드나 홍콩 배우들의 방한에 우리가 보였던 모습의 일부이지요. 한류는 한국에 국한되었던 연예사업의 규모를 수십배 키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활동이 주춤해진 스타들도 외국에서는 여전히 인기절정입니다. 한류가 가져다준 한국에 대한 부가가치는 직접적인 경제효과 외에도 측정불가능한 천문학적인 부대효과를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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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권을 상실했던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나라를 잃었으니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일본 제국에 의해 학교에 있어야 할 젊은이들이 강제징병은 물론 노동력을 위한 징용에 무참히 희생당해야 했습니다.

97년 저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공화국에서도 한국의 흔적과 만났습니다. 독일의 아시아 진출 거점이었던 이 작은 섬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의 태평양 점령사령부가 세워지고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그 먼 섬에까지 끌려가 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괌에서 비행기를 바꾸어 타고 2시간을 비행해서 도착한 팔라우의 상공에서 본 팔라우의 아름다운 무인도
 괌에서 비행기를 바꾸어 타고 2시간을 비행해서 도착한 팔라우의 상공에서 본 팔라우의 아름다운 무인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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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아이고다리'가 있습니다. 수도 코로르의 섬과 섬을 잇는 1천m쯤 되는 그 다리의 이름은 다리의 건설에 동원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한국의 징용자들이 그 고된 노역을 견디면서 무의식중에 입 밖으로 내던 '아이고'라는 탄식이 굳어져 그 다리이름이 '아이고다리'가 된 것입니다. 이 다리는 나라 잃은 국민의 한恨을 증언해주는 남태평양 작은 나라속의 한국의 흔적입니다.

팔라우 수도 코로르에 있는 이 다리의 이름은 '아이고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건설하던 2차대전 당시 강제징용된 한국인 노무자들이 그 고된 노동때문에 저절로 입밖으로 나왔던 탄식, '아이고~'라는 말을 현지인들이 듣고 다리이름을 아이고라도 명명했습니다. 세계속에 변화된 위상에 자칫 잊기쉬운 우리의 비참하고 끔찍했던 과거입니다.
▲ 팔라우의 '아리고다리' 팔라우 수도 코로르에 있는 이 다리의 이름은 '아이고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건설하던 2차대전 당시 강제징용된 한국인 노무자들이 그 고된 노동때문에 저절로 입밖으로 나왔던 탄식, '아이고~'라는 말을 현지인들이 듣고 다리이름을 아이고라도 명명했습니다. 세계속에 변화된 위상에 자칫 잊기쉬운 우리의 비참하고 끔찍했던 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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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4주년, 세계 속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위상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태평양 그 체념의 고도에서 어찔할 수 없는 강제노역으로 지친 다리를 누이고도 밤새껏 저절로 '아이고~'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을 할아버지의 절망의 탄식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여행, #한국, #아이고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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