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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5일 "내년에 날씨 좀 따뜻해지면 그때 다시 만나러 나오겠습니다" 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남았다.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 그 어떤 표현이든지 그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에게 저항했다. 기득권은 모함과 조롱으로 그를 매도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이제 몸으로 저항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과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역사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을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사회가 불의가 지배할 때 저항으로 이끌림을 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억을 한다.

 

이 수동적인 저항은 자신만 희생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람은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저항 정신을 마음에 새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가진 양심은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독일에서 뮌헨 대학을 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와 한스 숄, 죠피 숄, 알렉산더 슈모렐, 크루프 후버의 실화를 바탕으로 잉게 숄이 지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은 수동적 저항이 몇 십 년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이유가 그 예다.

 

나치에 대한 저항이라면 이들이 엄청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저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정의, 삶을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스와 죠피는 "세상을 잊어버린 듯 바깥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작고 조용한 광산촌에서 보냈"고 한스는 "러시아와 노르웨이 민요"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은  의대들 졸업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가정을 꾸리는 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후버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통하여 진리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열정을 다하여 강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훈련과 획일주의"와 "독일을 서서히 하나의 감옥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아무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독일을 집단 수용소로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이다. 한스와 죠피가 나치를 향하여 저항에 나서자 아버지는 말한다.  

 

"우리가 정부에게 요구해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견해와 신념의 보장이란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비록 인생의 길이 험난하고 고달프다 할지라도, 너희들은 인생을 자유롭고 올바르게 살았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빼앗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아버지 말에 울림이 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를 되찾기 위한 저항이 험난하고 고달플지라도 가라고 말하는 아버지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가라고 했다.

 

말하고, 생각하는 자유가 70년이 지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도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지유를 빼앗고 있다. 나치가 이들을 탄압하고, 결국은 한스와 죠피, 뮌헨 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을 탄압했듯이 이명박 정권도 자유를 달라는 시민들을 짓밟고 있다. 저항하는 이유가 자기들에게 있다는 비판까지도 못하게 한다.

 

인민이 말하는 자유와 생각하는 자유를 가지게 해달라고 저항할 때 나치는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져 일기장과 잡지, 노래를 모은 노트들을 압수하고 불태웠다. 그것을 본 한스는 "차라리 우리들의 몸에서 심장을 빼앗아 가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마 그것에 타 죽어버리라"고 했다.

 

시대가 평탄하면 제자들에게 정의와 양심을 위하여 살아라고 대다수 교수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치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정의와 양심은 독재자 앞에 팔아먹는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 양심을 팔아 부역한 교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들은 독재자 앞에 양심을 파는 부역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한스와 죠피,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나치에 저항할 때 뭔헨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강의했던 후버 교수는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면서,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인 권리일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역시 제자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폭력에 대항하여 꿋꿋하게 살았고,  정의는 죽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살았다. 한 치의 타협도 없이 그들은 비굴하게 구원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유 만세를 외쳤다. 국가가 인민의 자유를 지배하려는 것에 저항했다.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 될 때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존중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도는 다를 뿐 국가와 권력은 항상 인민의 자유를 자기들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그 때마다 인민은 저항했다. 저항하지 않으면 국가와 권력은 언제든지 인민에게 자유를 빼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했다. 이유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그것이 그 때 그들에게는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나치가 종말을 고하고 난 후 1947년 독일에서는 이 책을 학교 교재로 지정하여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덧붙이는 글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 지음 ㅣ 시간과 공간사 펴냄 ㅣ 2,500원

1989년에 나온 책으로 서평을 썼습니다. 개정판이 2004년에 나왔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 지음, 이재경 옮김, 시간과공간사(2004)


태그:#나치, #저항,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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