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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이 곳의 부서장을 처음 만났을 때다. 원래 사람을 만나면 눈치코치로 그 사람의 표정을 얼른 읽어야만 소통이 가능한 청각장애라 얼굴에서도 눈과 입을 집중적으로 본다. 그러나 부서장을 만났을 때는 임신 7-8개월처럼 부풀어 오른 배가 우선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부서장과 눈을 마주쳤을 때는 오히려 내 쪽에서 눈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 지 당황스러웠다.

30 중반으로 보이는 노총각 부서장이었지만 그렇게 부른 배를 가져서 비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젊은 사람이 어찌 저렇게 술배가 나왔담? 아니면 많이 먹고 작게 움직여서 그런지도 몰라…" 하고 혼자 생각했다. 처음에는 노총각인 줄 몰랐다. 듬직한 체구와 많이 나온 배로 해서 애가 3명은 되는 젊은 아빠인 줄 알았다.

그리고 농담으로 사석에서 어울릴 때도 실제로 빨리 장가가서 그렇게 애를 낳고 살라는 의미에서 웃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 "선생님! 좀 서운한데요!" 하고 솔직히 말해서 오히려 내가 무안스러웠다.

함께 근무하면서 부서장은 듬직한 체구에 얼굴 표정도 무표정일 때가 많았다. 무슨 말을 하는데 입모양이 전혀 안 움직이는 듯해서 나는 구화를 읽지 못해 업무 지시는 모두 필담으로 소통했다. 그러다 보니 문서 결재나 기안 작성 같은 것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오히려 정확해졌다. 어느 날 부서장이 사무실에서나 복도에서 종종 얼굴을 부딪치면서 갑자기 몇몇 수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합니다!"란 수화를 사용했는데 청각장애인의 단순함으로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화를 사용하면서 가끔 자기는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아 식사를 거른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서 일 분 거리에 있는 부서장 집이라 명절에는 모른 체할 수 없어서 이런 저런 명절음식도 갖다 주고 잽싸게 오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옆 동료인 30대가 가까워 오는 여직원에게도 "일하는 스타일이 좋아요!"라는 말을 자주 해서 옆 직원은 부서장이 자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나 싶어서 나와 서로 의논하기도 했다.

"호감을 가지면 좋은 일 같은데요! 나이도 얼추 맞고 성격도 지나보니 일희일비 않고 침착해 좋을 것 같은데요."
"샘!  좀 표현하기는 거시기 하지만 성격보다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생각도 하기 싫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부서장은 별 생각없이 오직 직원과의 소통과 사기진작을 위해 가능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노총각이라는 사실 때문에 종종 싱글 여직원에게 사심있는 것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노총각인 부서장은 사랑합니다라는 수화를 시도 때도 없이 하더니 그 다음에는  "감사합니다!"와 "수고했습니다!"라는 것을 수화로 익혀서 매일마다 수 차례 업무를 소통할 때마다 두 손을 펴고 깎듯이 머리를 숙이며 표현했고, 그리고 입 모양을 마치 연극을 하는 사람처럼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전혀 입 모양이 움직이지 않던 부서장이 이제는 누구보다도 구화를 잘한다. 그리고 대부분 직원들은 한두 번 구화로 하다가 내가 못 알아채면 필담으로 하지만, 부서장은 세 번이고 네 번이고 계속 반복한다.

그것은 일종의 훈련이 되어서 부서장보다 더 무뚝뚝하고 과묵하게 보이는 사람을 만났을때 아주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부서장의 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게 되었다. 내가 한때의 수술후유증이 살아나 병가를 내게 되었을 때 부서장이 말했다.

"나도 수술후유증으로 지금도 애먹고 있어요! 힘내세요!"
"무슨 수술후유증이요?"
"어릴 때 복부 부분에 큰 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학교도 휴학을 했구요. 수술 후 많은 약물치료를 받았고 그 치료를 이겨내기 위해 온갖 보약과 보양 음식을 닥치는 대로 부모님이 먹였어요! 그래서 복부 부분이 이렇게 부풀어 올랐어요!"

병가를 지내는 며칠 간 나는 나 혼자 부서장의 뱃살에 대해 착각했던 것이 참 미안했다. 그리고 정말 부서장의 말처럼 힘이 났다. 왜냐하면 나보다 젊은 사람도 저렇게 후유증을 앓고 약을 먹으면서 내색을 않고 열심히 일하니까 말이다. 그런 동병상련의 마음과 동시에 병가를 내면서 혹시 직장안에서 허약한 몸에 대한 것이 업무에 대한 핸디캡으로 작용하여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사라졌다.

같은 부서안에서 부서장보다 5살이나 더 작은 총각직원들이 하나 둘 씩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우리 부서장도 마침내 좋아하는 아가씨가 갑자기 생겨서 몇 달만에 금세 장가를 갔다.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에 힘쓴 부서장의 결혼이었기에 누구보다도 나는 기뻤다.

만삭의 임신부 같은 뱃살을 가진 부서장을 좋아하는 아가씨는 갈대처럼 마른 몸을 가졌기에 평소에 듬직한 신랑을 동경했던 어느 동심을 가르치는 여선생님이었고 사람마다 제 짝이 다 있다는 옛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했다. 

덧붙이는 글 | 뱃살이야기 공모



태그:#이유있는 뱃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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