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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중년이 되면 이 땅의 아줌마들은 대부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뱃살이 늘어난다. 그리고 늘어난 뱃살을 줄이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난 두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보통아줌마와 달리 특이한 허약체질이라 오히려 배가 쏙 들어가고 날씬해졌다.

 

두 번째 아이는 너무 허약한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8개월 되는 해 조산의 위기에서 응급실로 실려갔다가 간신히 9개월을 채워서 3킬로그램이 못 되는 몸무게로 나왔다. 두 아이의 엄마같지 않게 그 때의 내 몸무게는 43킬로그램이었다.

 

뱃살이 전혀 접근할 수 없는 몸무게였는데 얼굴이 워낙 작아 사람이 날씬하기 보다는 못 먹은 난민 여자 같았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길 가다 통통한 여자를 보면 무척 부러워하셨다.

 

몸을 보해주지 않으면 신경장애가 심해져 자칫 신경마비라도 일어날까 싶어서 비실비실한 막내딸을 항상 걱정하셨던 친정엄마였다. 그래서 해마다 봄에는 가물치나 민물장어를 고으시고, 가을이 지날 무렵에는 염소주를 해와서 먹이려고 애를 쓰셨다.

 

그러던 내가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자그만치 20킬로그램이 불어났다. 동반자처럼 수술 후유증과 이런 저런 지병을 껴안고 살면서 장기복용한 약물 탓인지, 운동부족인지, 여성가장으로서의 말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의 축적인지 모르겠다. 어느 날  불혹이 지나면서 갑자기 그렇게 눈깜짝할 사이 불어난 것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여성장애인들은 그 콤플렉스의 깊이가 좀 광범위하다. 한때 10여 년간 같이 일한 동료였던 곽정숙 국회의원과 함께 목욕을 갔을때, 그녀는 자신의 심한 척추후만증인 장애체형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편안하게 목욕을 했다. 그래서 나도 그녀와 함께 서로 등을 비누칠해주면서 즐겁게 목욕을 했다.

 

그러한 우리 모습에 지나가는 목욕객들이 가끔 힐끔거렸지만, 그것은 처음에만 그랬을 뿐, 두세 번 반복해서 보지 않았다.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목욕하는데 그것을 자꾸 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부자연스럽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같은 지역의 20대 척추여성장애인은 항상 사람이 드문 새벽의 변두리 목욕탕만 이용을 하고 누가 자기를 쳐다보면 부정적인 느낌으로 그 사람을 오히려 되쏘아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낯선 장애유형에 대한 일반의 시선은 낯설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는데, 장본인은 그것이 시선폭력이라는 장애차별이라고 무조건 판단을 하는 경향도 많다. 콤플렉스는 몸에서 오는 것이 아닌 그 몸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마음에서 오는 것 같다.

 

9삭동이로 적은 체중과 키로 태어난 둘째 아이는 지금 보통 아가씨들보다 키가 많이 훤칠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 더 쳐다볼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기도 하다. 지금은 민소매 원피스도 자유롭게 입고 맨 다리도 내어놓지만 한때는 자신의 신체에 대한 콤플렉스때문에 항상 바지만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못 생긴 다리는 엄마 때문이라는 말도 곧잘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몸인데 어느 시점에서 그 몸에 대한 닫혔던 느낌이 열린 모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체중이 20킬로그램 불어났는데 제일 크게 표시나는 것이 바로 뱃살과 둔부와 허벅지살이었다. 뱃살로 해서 85사이즈를 입던 팬티는 95나 100으로 사입어야 했다. 그리고 그 뱃살로 인해 전에 입었던 예쁘고 우아한 원피스는 거의가 못 입게 되었다.

 

옷가게 가서 계절에 따라 새 옷을 고를 때도 딸아이는 "엄마! 예쁜 옷을 사려면 우선 엄마 뱃살부터 빼야 될 것 같아!"라고 충고 비슷한 면박을 주었다. 그리고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것과 별도로 임신 6개월처럼 보이는 뱃살을 감추는데 쓰이는 보통 속옷의 10배 가격의 기능성 속옷이라는 것도 딸들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마다 단전호흡을 하면서 단전 아래의 뱃부분을 두 손으로 치는 동작을 유달리 오래했다. 그냥 오래하기도 뭐해서 사물놀이할 때 익혔던 중중모리나 휘모리의 북치기 장단을 쳐가면서 잘 부르지도 못하는 '옹헤야! 어쩔시고!'하고 흥얼거리기도 했다. 뱃살도 잘 단련시켜 근육으로 만들면 더 이상 뱃살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뱃살치기를 했다.

 

뱃살치기에 재미를 붙여 나 혼자만 한 것이 아니라 같이 공부한 분들과 함께 시외의 숲으로 갔을 때도 타원형으로 둘러 서게 해서 두 다리를 굽히고 오리 궁둥이 자세를 해서, 두 손바닥으로 뱃살치기를 했다. 그때는 숲이름이 금관이었는데 금관숲의 너른 흙터에서 아줌마들의 뱃살을 쳐서 울리는 소리가 정말 수십 대의 작은 소고소리처럼 울려 우리흙내음이 나는 숲의 분위기와 얼추 맞았다. 

 

딸들 입장에서는 엄마의 건강을 위한다고 "뚱땡이 엄마, 뱃살이 나온 엄마는 일단 NO!"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뱃살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마치 달빛이 밝으면 별빛이 보이지 않게 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은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서 과로하거나 무리하면 복수가 차오르고 일상이 무척 힘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장으로서,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일상을  소화하지 못하면 직장다니는 딸들의 일상도 덩달아 힘들어진다.

 

복수가 차오르는 부위는 뱃살이 아닌 배꼽 위부분인 가슴 아래이다. 가슴 아래에서 복수가 차오면 임신 6개월의 배모양이 아닌 마치 8-9개월이 된다. 그리고 호흡하기가 곤란해지고 이런 저련 약을 많이 투여하거나 허리조차 굽히기 어려워져 무조건 활동을 접고 누워 안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자주 겪다 보니 복수가 안 부풀려지고 그냥 뱃살만 나온 날은 오히려 안녕하고 좋은 날이 된다. 무조건 뱃살을 뺴라던 딸들의 멘트도 복수로 해서 힘들어하는 상황들을 여러 번 겪고서는 달라졌다.

 

"뱃살? 엄마 나이에 그 정도는 괜찮아! 살아온 경륜이 담긴 거잖아!"

 

살아온 경륜치고는 과하게 두꺼워진 배살이긴 하지만 싫지 않은 멘트이다. 뱃살보다 더 부담스럽게 차올라서 온 몸을 부풀게 했던  복수는 뱃살을 자주 두드리고  매일 꾸준히 복식호흡을 하면서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뱃살 안의 체지방을 줄여주는 생활요가운동프로그램을 2달 전에 시작했다. 뱃살의 밖으로는 두 손으로 두드리고 안으로는 분해하는 동작을 꾸준히 한다면 살아온 경륜만큼만 알맞은 보기좋은 뱃살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뱃살이야기 공모


태그:#뱃살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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