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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산도를 빠져 나온 아이의 얼굴은 시퍼렇다. 엄마 역시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맞이하느라 지쳐있다. 그러나 바깥 세상으로 나오자 마자 아이에게 가장 편안한 곳은 엄마의 품이 아니겠나.
▲ 엄마와 아이의 뜨거운 포옹 좁은 산도를 빠져 나온 아이의 얼굴은 시퍼렇다. 엄마 역시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맞이하느라 지쳐있다. 그러나 바깥 세상으로 나오자 마자 아이에게 가장 편안한 곳은 엄마의 품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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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 25일 밤 10시] 폭풍전야
출산을 걱정하는 아내가 모순되게도 진통이 오길 기다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정일이 아흐레 지났기 때문이다. 예정일 2주 전후로 태어나면 정상이라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 밤에도 우이초등학교 운동장을 열심히 돌았다. 그러나 아무일도 없었다.

[2신 - 26일 새벽 0시] 가진통의 시작

드디어 올 것이 왔다. 5월 26일 새벽 00시 22분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4분 간격이다. 아내와 나는 기쁨과 동시에 긴장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20초 정도 아프다가 4분 후 다시 반복한다. 아내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하나'가 엄마 엉덩이를 보고 있어야 쉽게 나오는데, 아이는 하늘(배쪽)을 보고 있었다(하늘을 보고 있으면 엄마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앞쪽 치골이 아프다). 미리 준비해둔 찜질팩을 허리에 대주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으나 아내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허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통증이 오는 20~30초간을 주무르는 것이다.

진통이 시작하면, 진통이 시작된 시각과 시간을 적어두어야 출산을 판단할 수 있다.
▲ 진통시간 확인 진통이 시작하면, 진통이 시작된 시각과 시간을 적어두어야 출산을 판단할 수 있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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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 26일 새벽 2시] 이슬이 비치고, 남편은 자고

새벽 02시가 넘었다. 이슬이 비쳤다(생리혈처럼 피가 나는 것을 말함). 이슬이 비치고, 10분에 3회 정도 진통이 있으면 조산원으로 전화하고 오라는 원장님의 말씀대로 나는 조산원에 전화하려 했는데, 아내는 아직 '가(假)진통'이라고 하지 말란다. 아이 낳아 본 사람도 아닌데 잘도 안다. 교육을 받고 책을 보면서 아내가 직감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훌륭하다.

새벽 3시 30분이 넘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아내는 나보고 자란다. 멋지다. 나는 아내말에 의지해 잤다. 하지만 아침까지 아내는 한숨도 안 잤다. 아내는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조산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출산기를 열독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계속 진통이 있었지만 역시 '가진통'이라 나를 깨우지 않았다고 한다.

[4신 - 26일 아침 7시] 진짜 진통의 시작, 조산원으로 출발

아침 7시. 약 4시간 동안 불규칙한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작된 '진(眞)진통'. 아내는 이게 진짜라고 한다. 3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40초 동안 통증이 있다. 조산원에 전화했더니 오늘 저녁쯤 나올 것 같다며, 점심 쯤 출발하란다. 조산원까지 막히지 않으면 1시간이다. 출근 시간을 피해서 12시에 가기로 하고, 친한 형에게 운전을 부탁했다(남편은 당황할 수 있다. 든든한 사람을 섭외해 놓자. 부탁할 사람이 없다면 택시를 타는 것도 좋다).

[5신 - 26일 오후 1시] 잘 참은 아내, 이제 다 됐어!

자동차가 자연스럽게 흔들리면서 아이가 밀고 내려오는데 더 도움이 되었나 싶다. 조산원에 도착하니 1시. 원장님이 진료를 하고 칭찬을 해주셨다.

"아이고! 잘 참았네! 이제 8~9cm 열렸으니까 곧 나올 거야. 4시 전에 낳고 저녁 먹자!"

자궁문이 10cm가 열리면 아이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내는 잘 참았다. 보통 산모들은 3~4cm 만 열려도 아프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래봐야 '이걸 가지고 뭘 그러냐고 집에 더 있다가 오라'고 원장님께 혼나기도 한다.

호흡법, 연상법 등을 사용해 남편은 아내의 출산을 돕는다. 아니 출산의 경험을 함께 한다. 진통을 함께 겪는 것은 엄마와 아빠가 힘을 모아 아이가 좁은 산도를 잘 통과하도록 응원하는 일이다.
▲ 엄마와 아빠의 응원 호흡법, 연상법 등을 사용해 남편은 아내의 출산을 돕는다. 아니 출산의 경험을 함께 한다. 진통을 함께 겪는 것은 엄마와 아빠가 힘을 모아 아이가 좁은 산도를 잘 통과하도록 응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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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 - 26일 오후 2시] 아내 진통 중 남편 호흡법 구령 붙여줘

분만실로 옮겨 진통이 올 때마다 아내 허리를 계속 주물러 주었다. 마침 실습 나온 간호사 학생들이 함께 했다. 조산사는 마사지하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함께 아내의 몸을 풀어주었다. 곧 양수가 터질 것 같다고 하신다.

10cm가 열리기까지 호흡법은 이렇다.
(내쉬고) 하나(1초), 둘(1초), 셋(1초)
(들이마시고) 하나(1초), 둘(1초), 셋(1초)

아내는 진통 때문에 호흡법을 자꾸 까먹는다. 남편은 이것을 잘 기억하고 구령을 붙여 줘야 한다. 진통 중에 함께 있는 것으로 아내에게는 큰 위안이다.

[7신 - 26일 오후 3시] 아내 힘주고 힘빼자 아이가 우르르

원장님이 그만 주무르고 자세를 바꾸라고 하신다. 아내 등을 받치고, 양 다리를 잡아 준다. 오후 3시 양수가 터지고 아이가 나오기 시작한다. 아이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간호사들은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거센 파도가 밀려오듯 진통이 올 때(그 때가 되면 느낄 수 있다) 함께 힘을 줘야 한다. 턱은 당기고 배꼽을 바라보면서 대변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아래쪽에 힘을 준다. 이때 호흡법은 이렇다.

(내쉬고) 내쉬고(0.5초)
(들이마시고) 크게 들이마쉬고(1초)
(숨을 참고, 힘주기) 하나(1초), 둘(1초), 셋(1초), 넷(1초), 다섯(1초), 여섯(1초)

아이 머리가 점점 크게 드러난다. 진통이 올 때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해 힘을 주고 있다. 나도 함께 힘을 보태며 아내를 지원했다. 아이 머리가 들락날락 거린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꼬깔콘'을 닮은 머리가 툭 튀어 나왔다. 좁은 산도를 통과하느라 머리가 눌린 것이다(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돌아온다). 간호사들은 탄성을 연발했다.

이제 힘을 빼야 한다. 이때 힘을 주면 회음부가 손상을 입게 된다.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산도를 통과해야 하는 시간이다. 조산사님은 그 와중에도 여유가 있다. '어머! 아이가 보조개도 있네요!' '남자일까 여자일까?'

하나의 우주가 탄생했고, 이제 엄마와 연결된 세상을 끊고, 더 큰 세상과 접속한다. 하나가 접속한 세상, 분단된 조국과 분열된 나라이다. 하지만 고운 결을 우직하게 만들어 가는 이들이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다.
▲ 탯줄 커팅식 하나의 우주가 탄생했고, 이제 엄마와 연결된 세상을 끊고, 더 큰 세상과 접속한다. 하나가 접속한 세상, 분단된 조국과 분열된 나라이다. 하지만 고운 결을 우직하게 만들어 가는 이들이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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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다소 지친듯이 헐떡 거렸다. 연상법(좋은 기억을 떠올려서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을 써봤지만, 아내는 떠들지 말고 잠자코 있으란다(다소 무안했지만 상관없다. 이때는 아내가 편한 것이 최고니까) 5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가 어깨를 빼는데 성공하자 몸이 우르르 나왔다.

[8신 - 26일 오후 3시 28분] 축하의 글과 탯줄 커팅식, 엄마 울먹여

아이는 탯줄을 달고 엄마의 가슴에 안겼다. 아내는 울먹였다. 9일 지나서 나온 아이라 그런지 다소 통통했다. 아이가 나오면 축하해주려고 써온 편지를 읽었다.

출생시간 2009년 5월 26일 03시 28분. 몸무게 3.65kg. 여아. 이름 '하나'. 아빠가 된 나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탯줄 커팅식을 진행했다(탯줄에 남아 있는 피가 아이에게 모두 전달되려면 5분 정도 걸리는데, 이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 병원에서는 나오자 마자 그냥 자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내는 내게 '함께 낳아주어 고맙다'고 했다.

아이는 탯줄로 부터의 접속을 끊고, 입으로 엄마의 가슴과 접속한다. 나오자 마자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빤다. 아이가 태어난 후 4-5일 동안 분비되는 '초유'는 꼭 먹이는 것이 좋다. 영양분은 거의 없으나 질병이나 질환으로부터 신생아를 지켜주는 면역 항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 엄마와 아기의 접속 아이는 탯줄로 부터의 접속을 끊고, 입으로 엄마의 가슴과 접속한다. 나오자 마자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빤다. 아이가 태어난 후 4-5일 동안 분비되는 '초유'는 꼭 먹이는 것이 좋다. 영양분은 거의 없으나 질병이나 질환으로부터 신생아를 지켜주는 면역 항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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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탄생을 축하하며...
(아빠가) 하나야 안녕?

이렇게 예쁘게 생겼구나! 보고 싶었다. 너의 얼굴을 보기 위해 엄마와 아빠가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단다. 쉽지 않은 길을 성실히 걸어나온 하나야 고맙다. 수고했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하되 참된 길을 갈 수 있도록 기도할게. 건강하게 자라길 기도할게 우리 신명나게 살아가자꾸나!

(엄마가) 사랑하는 하나야

엄마 아빠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선물, 너를 허락하셔서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하단다. 좁은 산도를 지나 이 세상을 만나기 위해 온 너를 진심으로 환영해 정말 수고 많았어. 네가 만날 이 세상이 더 아름답도록 엄아 아빠가 최선을 다할게. 마을의 이모 삼촌, 언니 오빠들도 하나를 진심으로 환영한단다. 하나야, 고맙고 사랑해. 함께 건강하게 자라가자.

* 남과 북이 '하나'되고, 동과 서가 '하나'되고, 너와 내가 '하나'되는 신명나는 세상. 하나야 우리 함께 만들어 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하나, #출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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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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