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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대한민국이 큰 슬픔에 빠졌었습니다. 6월이 한참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의 잔영이 남아 있습니다. 임기를 마친 지 채 2년도 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건국 이후 처음 있는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충격과 슬픔이 대단히 컸고, 추모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신문, 방송, 인터넷 할 것 없이 모든 매체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재조명했고, 추모 열기를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전했습니다.

 

전국적으로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행렬에 동참했습니다. 언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의 말과 행적을 재조명하며 그의 정치역정을 새삼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그의 죽음을 애도함하며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 서점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책들이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살아생전 남긴 유산들을 곱씹으며 뒤늦게나마 그 의미와 진정성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이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와 관심이 한 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5년을 이끌면서 지지율이 늘 30% 미만이었습니다. 즉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보수진영에서는 그를 친북좌파라며 비난했었고, 진보진영에서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며 비판했습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정치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동안 맹렬히 비난해 왔습니다. 언론 역시 서거 전날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중인격의 부패한 정치인으로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부정적인 시선들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모든 걸 잘못한 대통령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잘한 대통령처럼 비춰지고 있습니다. 보수, 진보 양진영에도 모두 비난받던 그가 이제는 보수와 진보를 잘 아울러 균형 있는 정책을 펼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분명 그가 남겨 놓은 흔적들은 달라진 것이 없고, 잘 한 점도 있고, 잘못한 점도 있을 것인데 왜 이토록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의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워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하고 외로웠던 그를 가엾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의 실패한 정책을 비판했던 사람들은 비로소 가려져 있던 그의 성공한 정책에 눈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의 거친 말을 문제 삼았던 사람들은 비로소 말의 표현방식보다 담겨진 의미가 중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그 사람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고도 씁쓸합니다. 만일 국민, 정치권, 언론이 지금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글 그리고 정책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의미를 되새겨봤다면 재임시절에 그렇게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말로 인해 탄핵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극한으로 치달았던 좌우 이념대립도 다소나마 누그러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그가 생전에 추구했던 '사람사는 세상'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많은 것을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그 중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먼저 성찰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고 쉽게 비난합니다. 비난받는 사람의 입장이나 억울함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꼭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뒤늦게 그 가치를 알고 후회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추모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도 그를 쉽게 비난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의 진정성을 몰라준 것에 대한 후회가 사람들에게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달을 보라 하니 손가락만 본다'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한 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생김새를 나무란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은 슬픔은 우리가 진정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측은지심을 갖고 역지사지 해보는 자세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우리가 사람에 대한 따뜻함과 배려를 좀 더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태그:#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노무현, #봉하마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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