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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
▲ 책겉그림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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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분이 올 초 은행 빚 2천 5백 만원을 면책받았다. 그는 파산 신청에서부터 면책을 받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파산선고 때가지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던 그 사무장이 떠난 탓이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는 사무장에게 수임료를 포함하여 200백 만 원 상당의 의류와 식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작년 연말에는 나와 절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일로 친구는 병원신세를 져야 했는데, 보험회사에서 1천 3백 만 원의 합의를 요구해 왔다. 그런데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을 고용한 덕택이었던지 두 배나 되는 합의금을 받았다. 놀라운 것은 사무장이 15%의 수임료를 받은 그 직후, 친구와 작성했던 수임료계약서를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는 것이다.

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장들이 그런 일에 매달려야 할까? 김두식의 〈불멸의 신성가족〉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무장들이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받는 월급은 제한돼 있고, 그 대신 일한 만큼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사무장들은 일반 사건의 변호는 물론이고, 굵직한 법조계의 변호까지 따오려고 안달이라 한다.

"사무장들이 브로커 노릇하라고 그냥 놓아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지요. 그 이유는 사건 수임이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라 해도 의뢰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183쪽)

과연 사무장만 그런 브로커 노릇을 하는 걸까? 이 책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무장뿐만 아니라 대형 로펌에 이름값을 올리고 있는 전관 출신의 고문들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브로커들을 '사창가의 창녀'로,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을 '고급 창녀'로 빗대고 있다.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고급 창녀하고 사창가에 있는 창녀의 차이겠지요.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내가 아까 말했지 않습니까? 법조계에만 왜 전관을 얘기하느냐 이거죠."(211쪽)

그럼 사무장과 로펌의 고문들만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성가족'에 해당될까? 여러 식사 자리와 골프회동을 주선하는 판사출신의 나이 든 변호사들, 그들 전관 변호사들이 초청하는 자리에 불쑥 나가 '부장님'하면서 90도 각도로 고개숙여 인사하는 젊은 판사들, 그리고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가족과 친지들을 잘 봐 달라며 전화 청탁하는 검사들도 예외이지 않다.

물론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이후 법조계 내부에서는 사건 청탁을 위한 검은 돈이나 접대 등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10년 동안 '신성가족'들은 거룩을 위해 그만큼 몸부림 친 것이다. 더욱이 보수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도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이 느끼기에는 아직도 '신성가족' 내부를 꿰뚫고 들어가기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며 어려워하고 있고,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더욱 공고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대형 로펌의 고문들은 더욱더 잘 나가는데 반해 가난한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들은 더더욱 다른 일에 혼줄을 매달아 놓고 살아가고 있으니, '신성가족'의 해체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요원하지 않겠는가 싶다.

법조계의 수직적인 구조가 흔들리지 않는 이상, 전관예우 로펌의 고문이나 변호사들이 판을 치는 게 사라지지 않는 이상, 판사들에게 살인적인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그리고 시민들이 배심재판제도를 적극적으로 주도해나가지 않는 이상, 그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김두식 지음, 창비(2009)


태그:#불멸의 신성가족, #김두식, #대형 로펌 고문, #법조계의 비리, #신성가족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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