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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온 나라가 비통한 상태다. 고인을 극단의 선택으로 내몬 주체 가운데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상은 검찰일 것이다. 고인은 당선 이후 강금실을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해 사법개혁을 주도하려 했고, 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검찰 개혁의 신호탄을 쏘려 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실패했고, 귀향한 이후에는 오히려 검사들의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에 있으면서도 실패한 싸움이었기에 고인은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런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으로 무죄를 항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두식 교수의 책 <불멸의 신성가족>
 김두식 교수의 책 <불멸의 신성가족>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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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지만 검찰의 태도는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검찰만 그런가. 상대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신영철 대법관의 안하무인식 버티기는 법원 역시 정권의 하수조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노무현이 각고의 노력을 벌였던 사법개혁은 결국 1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런 상태로 몇 년을 더가면 오히려 군사정권 시대로 복귀할지도 모른다.

김두식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은 대통령조차 개혁하지 못했던 사법 패밀리의 실상을 적나라에게 드러낸 책이다. 검사출신이지만 그곳에서는 스스로 '또라이'라고 불리었다는 김두식 교수는 이 책에서 판사, 검사, 법원공무원, 변호사, 기자, 브로커 등으로 얽힌 법원의 낙맥상을 보여주고, 이 패밀리와의 대결을 벌였던 이들의 기록을 통해 이 신성가족이 얼마나 견고한 것이며, 개혁해야 할 곳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잘 읽힌다는 것이다. 91년 9월 자신의 사법고시 2차 합격이 들려올 때 이야기로 김 교수의 글은 시작한다. 즐거운 말발과 다양한 경우로 호기심을 자극해 독자들을 끄는 힘이 있다. 그는 앞에서 말했듯이 기존의 신성가족과 어울리지 않는 또라이라고 자신을 평한다. 결코 융화되기 쉽지 않았기에 김 교수는 로스쿨 설치에 맞추어 검사실 경력 출신의 교수 임용이라는 기회를 얻어 대학교수로 직업을 바꾼다. 장애아동에 대한 논문을 쓰는 아내를 돕기 위해서라는 인간적인 이유도 있다. 어떻든 모두가 들어가려는 신성가족에 편입했음에도 또라이의 길을 간 저자에게 우선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저자가 없었으면 아마도 '희망제작소' 역시 이런 연구를 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또 이런 결과물을 내놓기도 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른 사회 문화를 위해 만들어진 '희망제작소'의 연구프로젝트로 진행됐다. 방식도 객관적으로 보이는 양적 통계나 여론조사가 아니다. 관련 분야 종사 그룹을 심층 면담하는 질적 연구 기법으로 진행됐고, 김교수가 이것을 정리한 것이다.

우선 저자는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김기갑씨, 사법 패밀리의 도움을 받는 소송 의뢰인에게 고통을 당한 명성훈 사장, 부동산 거래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서 푼 하경미씨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사법이 얼마나 멀고 아득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는 물론이고 의뢰인이 해당 판사에게 직접 돈을 주는 엄연한 현실까지도 신랄하게 보여준다.

2번째장 '큰돈, 푼돈, 거절할 수 없는 돈'은 작은 돈부터 푼돈까지 다양한 형태로 사법 세계 안에서 돈이 돌고 이곳이 재판에 암묵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이 돈의 커넥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소외를 말한다. 변호사 판사에게 실비라며 돈을 주고, 전관 예우를 받는 검사 출신 선배들이 후배 검사들에게 촌지를 주는 등 크고 작은 돈으로 실핏줄처럼 연결된 사법부 돈의 흐름을 현장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또 돈의 힘이 좀 약해졌을 때는 골프나 접대, 법인카드 등으로 변용되는 모습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돈의 흐름 과정에서 돈을 거부하는 이들은 오히려 소외되고 '또라이'로까지 전락할 수 있는 이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구조의 옥상옥은 법원이나 검사 생활을 하고 나가서 전관예우를 통해 돈을 버는 구조를 만든다. 부장판사 정도를 마친 다음에는 1년에 10억 버는 것은 일도 아니게 만드는 특정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런 난맥상으로 만들어진 그들만의 리그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때문에 판치는 것이 브로커들이다. 이 브로커들은 사건을 수임해서 관리해주는 사법 패밀리의 충견들이다. 물론 이 폐해는 100만원이면 될 사건을 수백만원으로 만들어서 사법 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준다. 결국 돈이 없으면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5장 '팔로역정...'에서는 이 사법 패밀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법조인이 이겨내야 하는 여덟가지 유혹을 설명한다. 저자는 사법시험을 신분상승 도구로만 생각해 사시를 통과하면 '괴물'이 되는 것을 경계시킨다. 그 패밀리의 첫 번째 관문은 사람이 아닌 돈과 권력의 융화로 진행되는 결혼의 문제다. 세 번째는 소수의 사람이 거치는 법원행정처를 통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법원이나 중앙부터 시작해 지방으로 등급을 매기는 검찰 조직의 서열화를 지적한다. 

그밖에도 무조건적으로 선임을 통해 배워야 하는 법원의 도제시스템,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권위주의, 과도한 업무량 등을 지적한다.

정말 그들은 앞으로도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데 성공"할 것인가.(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신성가족' 중에서)

저자는 나가는 글을 통해 그래도 희망을 찾자고 이야기한다. 이 구도는 결국 모두에게 불행한 사법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촌지나 선물, 골프접대 등을 거부할 수 있는 양심, 상하를 구분해서 불통상태가 되어버린 의사 소통 구조를 혁파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가 이 사법 패밀리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법원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익숙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사법과의 대면에 대한 상식을 준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물론 사법 개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법부 내에서 횡횡하는 기업과 사법부의 커넥션, 사법 패밀리 내의 학연 지연 혈연의 문제가 조금 부족하게 다뤄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김두식 지음, 창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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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두식, #검찰,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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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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