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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가슴에 묻고 / 대한민국이 몸져 누웠습니다 / 우리는 지금 / 자발적 조문행렬, 조문항쟁, 조문민란의 / 저 속수무책의 현장을 / 보고 듣고 함께 하고 있습니다 / 안타깝고 두렵고 아리고도 슬픈 절규…… / 당신의 떠나심을 두고 / '포괄적 살인'이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 당신의 마지막 말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 '원망하지 마라'"(추모시 "바보 노무현" 전문).

 

시인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슴 아파하며 추모시 모음집을 엮었다. 경남 진주․사천․산청․하동지역 시인들이 추모시 묶음집 <내가 지금 그 분을 위해>를 펴냈다.

 

강희근․김경․김남호․김지율․박구경․박노정․박우담․양곡․오인태․윤덕점․정푸른․최영욱․최은애 시인이 시를 읊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시를 써서 한데 모았으며, 2일 20쪽 분량의 추모시 모음집을 펴냈다.

 

이들은 3일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추모시 모음집을 노 전 대통령의 영전에 바친다. 이들은 이날 분향소에서 간단한 추모시 낭송의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추모시 모음집에는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흑백으로 담았다. 시인들도 이름만 넣고 문단이나 사회 경력은 일절 넣지 않았다. 시인들이 노 전 대통령의 삶을 닮아 소박하게 꾸민 것이다.

 

시인들은 추모시 모음집 발간에 들어간 비용은 십시일반으로 충당해 400부를 제작했다. 그 중 일부를 봉하마을 분향소에 바칠 예정이다. 경상대 명예교수인 강희근 시인은 이번 추모시 모음집 발간은 '시인들의 소중한 마음의 헌정'이라고 표현했다.

 

강 시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고 아파하는 게 국민적 정서라 생각하며, 그 물결을 바라보면서 시인이 그냥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시로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하나로 모여 시를 쓰고 책으로 묶어냈다"고 말했다.

 

시인들은 노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조문행렬을 잇는 국민들에 대해서도 가슴 아파하거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강희근 시인은 "내가 지금 그 분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프다"고, 김경 시인은 "몸으로 쓴 유서 아름답다 선한 이별이다"고, 김남호 시인은 "자전거 한 대 떠내려 간다"고, 박구경 시인은 "저 푸르른 들을 지키는 스스로 튼튼한 뼈여"라고 읊었다.

 

시 몇 편을 읽어보자.

 

"저 끝없는 행렬을 바라보다가 / 가슴 찢어지다가 / 가슴 뭄클해지다가, / 무슨 말이 필요한가 / 현장 생중계 / 지금 이 시각 봉하 분향소 모습 클릭해 놓고 / 하루 내내 / 지금 이 시각으로 보고 있다 / 오늘은 / 아무도 글자로는 적지 말아라 / 슬프다고 적지 말아라"(강희근 "조문" 전문).

 

"아직 어린 고추 모종 20포기 / 낮술 즐기던 아버지 같던 비틀비틀한 주말텃밭에 파종하고 들어온 이른 아침 / 한 생이 졌다 / 몸으로 쓴 유서 / 아름답다 / 선한 이별이다 / 당신을 아주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내 속의 / 짠 편지를 적는다 / 사랑하는 이여 / 그러므로, 오늘 미친 듯 살아 있는 / 나의 인사는 다만 / 나란한 그리운뿐이다"(김경 "나란한 그리움만" 전문).

 

"몸 바치네 / 빚잔치가 거나하네 / 통째로 던지는 / 단호한 결별 앞에 / 파란만장의 / 소지 한 장 / 시름없이 타오르네 / 사람들은 서둘러 / 말문을 닫고 / 기나긴 칩거의 / 또아리를 틀겠네"(박노정 "합장" 전문).

 

"… 나는 왜 당신의 죽음에 / 그토록 총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여야 했을까요 / 그건 내 안에 있던 당신이란 존재가 일시에 사라져버린 / 낭패감과 상실감 때문이었습니다 / 당신을 이미 까마득히 잊은 줄 알았는데 / 당신은 내 안에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오인태 "나, 그리고 당신에 대한 반성문"의 일부).

 

"그대 직선이었습니다 / 흔들림 없이 걸어온 길 / 소금눈물로 박혔어도 / 거침없는 한 획, 직선이었습니다 / 서까래 같은 굵은 선 위로 / 떨어지는 통곡 / 그대 누운 벼랑 아래 강물로 흐릅니다…"(정푸른 "직선"의 일부).

 

"햇살이 희망으로 내리어도 / 희망으로 보는 사람 흔하지 않다 / 구름이 개어 비 묻어오거나 / 바람 불고 / 노을이 먹탕으로 어둔 밤에 들 때 / 눈 먼 사람들 / 비로소 눈을 뜬다 / 눈 뜨는 사람들 / 가갸거겨 / 점자로 캄캄한 햇살을 읽는다 / 아, 가슴 치며 / 가갸거겨 / 가까스로 미래를 읽는다"(최은애 "햇살" 전문).

 


태그:#노무현, #봉하마을, #강희근, #박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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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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