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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대문 앞으로 나가보니 신문 한 부가 배달되어 있습니다. 조선일보입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계십니다. 신문 내용을 대충 훑어보고는 거실 소파에 던져둡니다. 기척 소리가 들립니다. 일요일은 보통 늦은 오전까지 늦잠을 주무시던 분이 무슨 일인지 일찍 일어나 신문을 달라고 하십니다. 제가 신문 가져온 것을 눈치 챈 걸까요. 어쩌면 이미 잠에서 깨어나 계셨던 것인지도 모르죠.

 

평소보다 두세 시간은 빨리 일어난 그가 묵묵히 신문의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합니다. 평소 서거하신 그 분을 끔찍이도 싫어했던 아버지가 술에 취한 늦은 밤 거실에서 "그 놈이 젊은 애들 다 망쳐놨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선 당시 노무현에 표를 던진 제게 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겠지요.

 

평소 같았으면 혀를 끌끌 찼을 그가 오늘만큼은 입을 굳게 다물고 사뭇 진지한 표정입니다. 긴 한 숨. 이십 분 가량 신문을 보던 그가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화단의 꽃, 풀들을 보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바깥은 숨이나 표정 하나 숨길 곳 없을 만큼 쨍쨍한 햇빛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잠옷 차림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간 그가 이따금씩 알 수 없는 어딘가 바라보며 긴 한 숨을 내쉽니다. 그건 아마도 애도였을까요. 무뚝뚝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은 아니었는지.

 

 디지털 촛불 세대의 탄생

 

촛불의 등장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때도, 탄핵 사건 때도 그러하듯 언제든 우리 주변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유례없이 거대한 규모의 군중이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꾸준하고 흥겹게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제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죠. 항상 뒤에서 숨어 입만 연실 떠들어대는 입장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겁니다.

 

쇠고기 파동 이후,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현 세대를 디지털 촛불 세대라고 명명하기 시작했지요. 총만 안 들었다 뿐이지, 전쟁터나 다름이 없던 집회 현장을 돌연 축제의 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젊은 세대가 그것에 결정적 역할을 했어요. 재치 넘치는 피켓 문구와 톡톡 튀는 복장, 그리고 노래와 춤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물대포와 곤봉이 난무했음에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온전하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래요. 짐짓 포기하고서 정부를 상대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그들의 즐거운 놀이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그건 현 시대를 새롭게 규정하는 일종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공부밖에는 모를 줄 알았던 그들이 어른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인 셈이지요. 이것 봐라, 너희들이 그렇게 구석에 몰려 울고만 있을 때 우리는 웃으면서 말하고 외치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더 이상 울고 불며 악다구니 쓰는 투쟁은 없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시종일관 생중계되었고, 전화연락망과 댓글을 통해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나 리포터 등을 지원해 주었지요. 이곳저곳에서 응원하는 글이 쏟아졌습니다. 몇몇 시위대가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 나갈 때마다 시민들은 '비폭력, 비폭력'을 외쳤습니다. 실은 그게 더 감동적이었어요.

 

보수 언론의 편협한 오해가 있었습니다. 배후 세력에 대한 의심이 그것이죠. 하지만 현장에 직접 나가 집회에 참여했을 때에 저는 그런 세력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노래 부르고 행진하고 외치던 시민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몇몇 시민 단체와 당에서도 참여를 했겠지만, 실제로 보통 참가자들은 그런 부류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런 이의 몇 마디 말에 선동당할 만큼 나약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 반발과 집회를 더 키운 것은 사실 사건 자체보다도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이었습니다. 국민까지 속이며 신속하게 민감한 사안을 처리하려 했고, 의심이 일어나자 강력한 억압으로 맞섰습니다. 물대포를 쏘아댔고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정부가 촛불을 저지하기 위해 온갖 수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이는 화를 더 돋우는 격이 되었습니다. 사태는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지요. 그들의 즐거운 투쟁, 아니 놀이는 자정이 넘어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우리가 꿈꾸던 시대와의 이별

 

지난 토요일(23일)에 노 전 대통령이 봉화마을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지셨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마치  어느 한 시대와의 이별을 하게 된 기분이다. 우리가 그토록 꿈꾸어 오던, 그 무엇과."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그는 진정 부끄러워할 줄 아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지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던 전직 대통령이나 부패한 정치인들이 아직까지도 두 눈 부릅뜨고 살아가는 걸 보면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 아버지는 어쩌면 그 분의 소신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잔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미안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 이런 비통한 순간에도 축제를 벌이겠다거나, 흠집을 내 비판하는데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점을 상기해 보니 더욱 더 내 아버지의 침묵과 애도가 진실로 경이로웠음을 느낍니다.

 

그 분의 곁에는 항상 촛불이 함께 했다고 하지요. 탄핵 때도 그랬고,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도 그랬고요. 촛불은 이미 지난 과거의 유물처럼 판단되고 평가받고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첫 버전의 테스트가 끝났을 뿐이니까요. ver 2.0의 시동은 아직 걸리지 않았습니다. 좀 더 즐겁게, 지나치게 하나의 의견에 집착하기보다는 각자를 존중할 줄 아는 자유로운 그들이 되길 바랍니다.

 

누군가는 말하더군요. 이번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선동하지 말라고요. 이건 마치 슬퍼만 하되, 입 다물고 있으라는 강요처럼 느껴집니다. 추모식에서조차 경찰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늦은 밤에는 해산 명령까지 강요하는 그들을 보고서도 우리는 그저 침묵해야 하는 걸까요. 그냥 말 잘 듣는 2MB 제국의 일등시민이 되면 되는 것인지요. 애도를 하면서까지 언제 물대포가 쏟아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진정 부끄러움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진화된, 업그레이드된 디지털 촛불 세대가 꼭 거대한 규모로 한 번에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사안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더불어 자유로운 표현과 함께 하는 즐거운 축제가 될 것입니다. 김종삼의 시 <시작노트>의 한 구절처럼, 그들은 불어도 흔들어도 끝끝내 꺼지지 않겠지요.

 

담배 붙이고 난 성냥개빗불이 꺼지지 않는다. 불어도 흔들어도 꺼지지 않는다. 손가락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김종삼의 시 <시작노트> 중 일부)  


태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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