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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초 아내는 동백꽃보다 더 예쁜 수호천사였다
▲ 동백 결혼 초 아내는 동백꽃보다 더 예쁜 수호천사였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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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내 생일 때 꽃다발 보낼 거야?"
"나 참! 근데 왜?"
"꽃다발 대신 꽃값을 보내주면 안 되겠느냐구요~"
"왜 또? 이젠 두 딸 용돈 챙겨주는 것도 모자라 마누라 용돈까지 챙겨달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괜히 꽃값 들일 필요 없잖아. 금방 시들고 말 텐데…."
"???"

1989년 겨울. 결혼을 한 뒤부터 나는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기고 있다. 내가 어디에서 일하고 있건 상관없이, 비록 작은 꽃다발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짤막한 축하 글과 함께 아내에게 보냈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축하 꽃다발이나 축하 글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생일날 미역국 얻어먹은 것 빼고는.

근데, 이건 거의 협박(?) 수준이다. 그렇다고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덜렁 꽃값만 통장으로 보내고 꽃다발을 보내지 않는다면 아내가 또 얼마나 서운해 하겠는가. 나는 이처럼 속 깊게(?) 아내를 대하고 있지만 아내는 나를 속 얕게(?) 대하는 것 같다. 아니, 멀리 있으니 생일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투다.

그래도 문자 메시지라도 한 통 남겨주면 좋으련만. 생일은 그렇다 치고,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치른 기념일인데 왜 나 혼자만 해마다 꽃다발을 보내야 하느냐 이 말이다. 그렇다고 아내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아내가 혼자서 두 딸을 예쁘게 키워놓은 것만 해도 너무 고마우니까. 

사실, 세월을 저어가면 갈수록 아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깜빡 잊고 있을 때가 더러 있었다. 하긴 내 생일도 깜빡하고 지나간 때가 여러 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가 전화를 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간 때는 한 번도 없었다. 요즈음에야 두 딸이 알아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니 아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까먹을 일이 거의 없다.   

두딸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 하얀 민들레 두딸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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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였던 아내가 다그치는 아내로

"아직 그게(돈) 안 들어왔네. 뭘 해? 빨리 좀 보내주지 않고. 당장 나가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란 말이야."
"알았어. 통장 확인해보고 곧바로 보낼게."
"통장확인? 그럼 그게 오늘 안 된다는 거야?"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요즈음 다들 힘들어. 하여튼 좀 있다 전화해줄게."

갓 결혼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내는 수호천사였다. 두 딸을 낳아 유치원에 보낼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특히 돈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출판업에 뛰어들었다가 사업이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도 아내가 어디서 돈을 마련했는지 부도를 몇 번이나 막아주기까지 했다.

근데, 언젠가부터 아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출판업을 하다가 말 그대로 쫄딱 다 말아먹고 '고향 앞으로' 낙향한 뒤부터였던 것 같다. 서울에서 잘 나가던(?) 맏사위가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처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자 맏딸인 아내로서는 꽤 체면이 상했던가 보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와 두 딸을 처가에 팽개치다시피 맡겨놓고 울산, 양산, 부산, 대구, 경주 등지를 떠돌며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월급이랍시고 보내고 있었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내가 아내 눈치를 슬슬 살피며 큰소리치지 못하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때부터였던가 싶다.    

그래도 아내는 맞벌이를 하며 잘 버텨 주었다. 빚쟁이가 창원 집까지 몇 번이나 쳐들어 왔어도 나에게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두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내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내는 월급날 돈이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나를 슬슬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즈음부터 월급날이 다가오면 조바심을 치기 시작했다. 행여 월급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어쩌나 하고.     

아내가 선물한 반 돈짜리 금돼지가 가져다 준 행운 

"손전화걸이가 그게 뭐야? 촌스럽게. 이거 매달고 다녀. 그래도 자기 생각하는 사람은 마누라밖에 없지?"
"그게 뭔데?"
"이거 달고 다니면서 돈이나 왕창 좀 벌어오라고."
"이거 제법 비쌀 텐데? 달고 다니다 혹 잊어 먹으면 어떡해?"
"잃어버리기만 해봐라. 그냥 콱!"

그때가 2002년도 초여름이었던가. 아내가 불쑥 손전화걸이용 반 돈짜리 금돼지를 선물했다. 금돼지를 손전화에 매달고 전화를 하면 재물의 여신이 전화를 할 때마다 행운을 준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고마웠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게 얼마 만에 아내에게 받아보는 선물이었던가. (하긴 수시로 옷 선물을 받았다.)

아내에게 그동안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때 꽃다발은커녕 문자메시지 한통 보내지 않는다고 은근히 서운했던 마음이 금돼지를 받는 순간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날 아내는 내 손전화에 반 돈짜리 금돼지를 직접 달아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 조금만 더 고생해. 백화점 일만 잘 되면 자기 좋아하는 글만 쓰면서 살 수 있도록 해 줄게".  
   
아내가 달아준 그 금돼지 때문이었을까.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직장을 탄탄한 곳으로 옮겨 월급도 두 배 이상 올랐고, 월급날이 되면 꼬박꼬박 아내 통장으로 제법 두둑한 생활비가 들어갔다. 아마 낙향한 뒤 아내와 내게는 그 몇 년이 가장 행복했던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토끼 같은 두딸과 함께 사는 그날을 기다리며
▲ 토끼 아내와 토끼 같은 두딸과 함께 사는 그날을 기다리며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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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금돼지, 언제쯤 내 품에 돌아올까

"자기 왜 오늘 하루종일 전화를 안 받아?"
"......"
"혹, 그 손전화 잃어버린 것 아냐?"
"미치것어. 금돼지도 금돼지지만 그 손전화 안에는 내가 아는 전화번호가 싹 다 들어 있단 말이야. 이를 어떡하면 좋아."
"하여튼, 무얼 잃어버리는 데는 선수야. 빨랑 옷 갈아 입어."
"왜?"

"새로 하나 사야 될 거 아냐. 내일부터 당장 어쩔려구 그래."
"금돼지는?"
"다시 사 줄게. 그 대신 자기는 나한테 금거북 한 마리만 사주라."
"그래, 남편은 열심히 돈이나 벌면 되고, 마누라는 그 돈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장수해보겠다는 거로구먼."
"아빠! 이번에 손전화 사면 목에 걸고 다녀. 그러면 절대 잊어먹지 않아."

그로부터 몇 년 뒤, 오랜만에 마산에서 살가운 선배 동무들과 밤늦게까지 세상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던가. 그 다음 날 오전 내내 이리저리 뒤척이며 늦잠을 자고 있는데, 낮 12시가 지나도록 전화벨이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손전화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집전화로 내 손전화번호를 눌렀다. 분명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다. 집안에서도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곳이 없었다. 어젯밤 기억을 더듬어 여기저기 옮겨 다닌 주점들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손전화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정말 난감했다. 

무엇보다 아까운 것은 아내가 선물한 반 돈짜리 금돼지와 손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였다. 그날 저녁 나는 마치 중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아내와 두 딸을 따라 손전화 가게로 가서 새 손전화를 손에 쥐었다. 그때부터 나는 손전화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아내가 다시 사 준다는 그 금돼지는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아내가 준 금돼지 선물. 그래, 지금도 나는 그때 그 금돼지가 우리 가정에 행운을 가져다 준 게 아니라 능력이 별로 없는 남편을 그래도 굳게 믿고 따르는 아내의 포근한 마음이 곧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이제 또 아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아내 생일에는 아무리 금값이 비싸도 반 돈짜리 금거북이라도 선물할까보다.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응모



태그:#금돼지, #아내, #두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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