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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5 : 안녕~ 오로라~

아침부터 Great Slave Lake의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얼어버린다. 어제보다 체감 온도는 더욱 떨어져 이번 대회 기간 중 제일 추운 하루로 느껴진다. 호흡을 통해 배출되는 습기 때문에 안면 부위가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버린다. 고글에 이상이 생겼는지 2중 렌즈의 안쪽이 얼어 버리고, 바람에 실려온 눈꽃들은 계속해서 온몸을 휘감는다.

이곳 옐로우나이프는 눈의 천국이지만 의외로 건조하다. 사막 날씨가 영상 50도를 훌쩍 넘겨도 건조하기에 살 수 있듯이, 여기도 상당히 건조한 날씨 덕분에 인간이 살아 갈 수 있는 환경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단단하게 눈을 뭉쳐서 눈싸움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눈은 가루 같은 느낌이다. 마치 동남아시아의 쌀처럼 입으로 불면 날아가 버린다.

오늘은 아무리 추워도 우리를 기쁘게 하는 희망찬 소식이 있다. 먼저 코스 길이가 24km로 가장 짧다. 몸 상태가 안 좋아도 5~6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이 Trout Rock Lodge에서 숙박을 한다. 단순히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 음식을 서비스한다고 했다. 거기에 하나 더, 식당에서 맥주와 음료수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잠깐, 그런데 돈을 가져왔던가?"

stage 5 출발 모습
 stage 5 출발 모습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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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5. 오랜만에 모든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
 Stage 5. 오랜만에 모든 참가자들과 함께 출발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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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서인가? 아니면 코스가 좋아서 그런가?

같이 출발한 선수들의 속도가 무지하게 빠르다. 선두권의 풀 코스 마라톤 기록이 2시간 30분대라 그렇기도 하지만 눈 속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특히 일부 선수는 죽기 살기로 달린다. 대회 전에 몇몇 친한 참가자들 모아놓고 순위에 들면 '인진지' 양말 풀세트를 준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재물에 욕심이 많은 것 같다.

3명의 좀비 중 내가 컨디션이 제일 좋았는지 6시간 12분 만에 가장 먼저 골인지점인 Trout Rock Lodge에 도착했다.

Trout Rock Lodge는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와 숙박을 위한 오두막까지 있어 이 지역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밥을 준다는 소식에 허기진 배기를 움켜 잡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서는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이 맥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도 질세라 맥주와 음식을 끊임없이 먹어 치웠다.

"돈은 누가 냈냐고?"
"어…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난 돈이 없었다."

오로라와 마지막 조우를 끝내고 내일의 아름다운 완주를 위한 깊은 단잠에 빠진다.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를 지나는 모습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를 지나는 모습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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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t Rock Lodge 모습
 Trout Rock Lodge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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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6 : 6일 만에 7kg 빼기, 누구나 가능하다

보통의 대회들이 갑자기 식사를 잘 주거나 서비스가 좋아지면 그 다음에 무식하게 굴린다.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급자족 대회에서 밥을 먹여주는 환상적 서비스를 베풀더니 기어코 마지막 날 사고를 친다.

기분 좋게 아침을 먹고 있는데 대회 감독인 스코트가 코스 설명을 하면서 오늘은 39km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 무슨 마지막 날에 39km를 돌려, 미친 거 아냐?" 여기저기서 구시렁구시렁 말들이 많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라디오 일기예보 방송에서 현재 기온이 영하 26도이며 날씨는 맑고 화창하다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뭐해, 우리는 39km를 가야 하는데…. 39km를 가야 하는 끔찍한 현실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춥다, 덕분에 안면 동상에 걸림
 춥다, 덕분에 안면 동상에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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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만난 개썰매
 중간에 만난 개썰매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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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지만 기분 좋게 대회를 마치고 호텔에서 거울을 보는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앙상하게 메마른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내가 아니다. 대회 시작 전까지 3주 조금 넘게 7kg를 빼고 대회 6일 동안 7kg이 빠졌으니 한 달 사이에 14kg이 빠진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85kg에서 71kg으로 변한 것이다. 물론 몸이 가벼워지면 좋기는 하지만 빠진 살이 정착될 때까지 사람이 불쌍해 보일 수가 있다. 회복 기간이 보통 두 달은 걸리는데 그동안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나의 경우 30kg을 늘렸다 빼본 적이 있어서인지 나이 살이 붙어도 몸무게 조절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운동은 마라톤을 기본으로 하기에 탄탄한 하체와 균형 잡힌 몸을 유지한다. 그렇다고 내가 운동을 많이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가끔 참가하는 대회가 전부일 때가 있다. 물론 참가하는 대회들이 좀 무식해서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비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비만에 관해서 한마디 하자면, 살은 누구나 단기간에 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극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내심이란 다름 아닌 음식과 벌이는 싸움이다. 일단 안 먹고 버티면 저절로 살은 빠진다. 그 상태에서 운동이 가미되면 좀 더 빨리 빠진다. 음식 조절은 다이어트의 가장 기본이다.

유카꼬, 유지성 골인 모습
 유카꼬, 유지성 골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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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오지 레이스 완주

2002년 사하라사막 마라톤으로 시작한 나의 오지 레이스 도전은 7년 만에 캐나다 옐로우나이프에서 13번째 완주로 이어졌다. 그동안 아프리카, 남미, 북미, 남극, 아시아 등지를 찾아 다니며 많은 경험들을 쌓았다. 남들은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오지 레이스에 꾸준하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역시 즐겁게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대회 시작과 동시에 기본 필수 장비인 스노우 슈즈가 망가져 버려 무릎까지 오는 눈 속을 헤치며 나가다 탈진해 기절했다. 스키 고글에 낀 서리가 얼어버려 고드름이 달리고, 급체를 하여 50번이 넘게 구토를 했다. 대회 중 이틀간 아무것도 못 먹고, 처음 3일간 매일 밤 12시쯤 골인하다 보니 제대로 휴식도 못 취했으며 다음날 또 고생하는 반복된 나날을 보냈다. 결국 어렵게 완주를 했지만 안면 동상과 발가락에 감각이 없는 후유증이 훈장처럼 남았다.

하지만 나는 7kg의 다이어트, 아름다운 오로라와 함께 달리는 낭만, 좋은 친구들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우정과 사랑을 경험했다. 이전까지 완주했던 12번의 오지 레이스를 한방에 엎어버릴 만큼 최고로 고생한 대회이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와 행복을 듬뿍 만끽했다.

남이 가지 않을 길을 가는 것은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길을 건너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곳에는 새로운 미래와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의 모습
 그레이트 슬레이브 레이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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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도전

올해 1월 도쿄에서 열린 사막 레이스 일본 참가자 신년회에서 유카꼬, 미호와 약속했다. 2010년 되기 전 마지막으로 좀 무모한 도전을 해보자. 그래서 결정한 것이 3월부터 5월까지 매달 한 번씩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우리끼리 명칭을 "3개월 3연속 도전 릴레이"라고 칭했다. 물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실천에 옮기는 스타일이라 카드 한도 가득히 결제하고 메우고를 반복하고 있다.

3월 캐나다 다이아몬드 울트라 완주, 4월 제주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 이제 마지막으로 5월 17일~23일까지 열리는 아프리카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레이스만 남았다.

그 후 올해는 7월 내 몽골 초원 마라톤이나 한번 달리고, 내년의 아마존 정글 200km 마라톤과 호주 사막 250km 레이스를 위해 당분간 잠수를 타려고 한다.

완주 후 모습
 완주 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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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아니, 최근에 행복했다는 기억이 있는지요?

남과 다른 인생을 원하는지, 아니면 같은 인생을 원하는지, 행복은 과연 무엇인지? 정답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지 않을까?

환상의 오로라
 환상의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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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막의 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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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월간 마운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다이아몬드 울트라, #옐로우나이프, #오로라, #유지성,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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