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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당돌한 여고생이 이주노동자를 만났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우정을 쌓아가던 두 사람은 분명 친구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흔치 않은 조합의 이 여고생과 이주노동자의 심리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덧 한국 사회의 이면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안엔 소수자를 대하는 따뜻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뱅갈어로 '친구'라는 뜻의 <반두비>는 신동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와 까칠한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방문자>, 서로 다른 계급의 두 친구와 그의 아내의 기묘한 관계를 그린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이은 '관계 3부작'의 세 번째 영화다.

올 전주국제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반두비>는 일찌감치 티켓이 동나면서 전주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통통 튀는 여고생 민서와 순박한 이주노동자 청년의 로맨스라는 독특한 설정이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더욱이 국내만큼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독립영화계의 대표선수 신동일 감독의 신작에 골수 팬들은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다.

3일 첫 번째 공식상영을 마치고 전주에서 만난 신동일 감독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얼굴이었다. "연대를 표방한 영화라 자신할 수 있다"고 <반두비>를 소개한 신동일 감독은 "이번엔 좀 더 다양하고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있을 것 같다"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한 뼘 더 전진한 작품을 내놓은 신동일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두비>는 우리들의 자화상... 한국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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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영화제에서 <반두비>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소감이 궁금하다.
"첫 공식 상영이었는데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을 확인해서 기분 좋았다. 전작들을 챙겨 본 관객도 많았고, 전작 <나의 친구, 그의 아내> DVD를 가져와 사인을 받아간 관객도 있었다. 한 마디로 감동이었다."

- 이주 노동자와 여고생의 우정 이상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설정이 꽤 파격적이다. 그 둘의 조합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논리적인 이유보다는 오래 전부터 여고생이 주연인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또 이주노동자나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주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게 됐다. 이주노동자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고생 또한 입시 지옥에 묶여 자신의 청춘과 꿈을 저당 잡혀 있는 소외된 존재들이잖나.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인 결합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둘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두 사람의 감정이 우정인지 로맨스인지 헷갈려 하는 관객들도 있던데.
"외로운 영혼이 만난 거다. 외로이, 고독하게 몸부림치던 그들이 서로 마주 보며 감정을 공유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걸 심각하게 얘기하면 연대라고 볼 수 있겠지. 또 그 연대가 둘만의 삶이 아니라 <반두비>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해당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 MB 정부나 영어몰입교육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언급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 또 백인 영어교사의 입으로 '쥐박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고. 
"촬영할 때의 시대 상황과 분위기를 중시한다. 또 그 시대의 공기가 드러나는 동시에 드라마가 결합하면 관객들이 더 흥미롭게 보는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 이전에 우리가 한국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주고 싶다.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보고 삶이나 사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끔 하고픈 바람도 크다. 그런 시대의 공기가 무겁지 않게, 또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드라마와 조응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 어제 한 관객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님의 신변을 걱정하기도 하더라. 촬영 당시 부담은 없었나?
"부담이 왜 없었겠나. 놀라웠던 것은 스태프들이 알아서 다 분위기를 세팅해줬다는 것이다.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감독의 의도나 가치관을 반영하게끔 도와줬고, 그러면서 스태프들이 더 즐거워하더라. 하지만 그런 설정들이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에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가 묻어난 것 같다. <방문자>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우정 출연을 했던 것처럼(웃음)."

- 이주 노동자와 현시대의 공기가 어떻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 정부 측에서 다문화사회로 홍보하면서 선진국인 것처럼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주연을 맡은 마붑의 얘기처럼 이주노동자들 단체에 대한 지원도 끊기고 상황은 더 악화일로에 있다. 110만 외국인 중에 40만∼50만이 이주노동자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백인종만 우대하고 유색인종이나 개도국에서 온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이중적인 시선은 이제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대한민국의 모순된 문화를 비판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반두비>는 단편영화를 제외하고 이주노동자를 욕망의 주체로 그린 첫 번째 장편영화라고 할 수 있다."

- 여고생인 민서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잠시 스포츠마사지 업소에서 일한다는 설정이 파격적이라 일견 오해를 낳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마음을 열고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도 주변의 여성 지인들뿐만 아니라 여고생들에게도 충분히 모니터를 하면서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많은 여자 관객들도 그런 설정에 동의했고, 너른 시각으로 본다면 오해가 없을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촛불소녀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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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얼리티 측면이나 민서의 심리가 자연스럽게 묘사됐다고 봐도 될까?
"민서가 그곳을 찾은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엄마에 대한 반항심이나 질투심 등 복합적인 감정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다. 그리고 <반두비>에는 손과 관련된 행위나 설정이 많다. 카림은 손으로 밥을 먹고 또 손으로 고된 일을 한다. 어떤 노동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다. 민서가 '마법의 손'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다층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 지난해 거리로 나섰던 촛불 소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던데.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촛불 소녀를 얘기하는 작품이 됐다. 하지만 작품 구상은 이미 오래 전에 한 거였다. 그래서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웃음). 여고생 특유의 감수성이나 남성들보다 앞에 나서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순수함이 촛불시위의 원동력이 됐지 않나. 그런 촛불 소녀가 이주노동자를 만난다는 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 여지가 더 넓지 않을까 싶다."

- 저예산이라 힘들진 않았나?
"제작비는 2억 2천 정도 들었고, 영화진흥위원회와 KT&G 장편영화 지원을 받았다. 독립영화지만 퀄리티는 제작비의 몇 배 이상이라고 자신한다. 헌신적으로 작업에 임한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개봉은 결정됐나?
"6월 말에 개봉 예정이다. 그간 내 영화들이 안정된 배급망을 타지 못해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했다. 이번엔 독립영화 전문배급사인 인디스토리가 배급을 전담한다. 시대와 충분히 조응하면서 많은 관객들이 즐겨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거라 믿는다."

<반두비>는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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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는 자기주장 강하고 똑 부러진 성격의 여고생이다. 한창 반항심이 클 나이인지라 연하의 애인과 동거 중인 엄마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부도 곧잘 하는 민서는 영어 공부를 위해 원어민 강사가 강의하는 학원에 가고 싶은 평범한 여고생이기도 하다. 그런 민서가 어느 날, 이주노동자 카림을 만난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유소에서 사고를 친 민서와 편의점에서 본의 아니게 싸움에 휘말린 카림. 경찰서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그러나 초면이 아니다. 버스에서 카림의 지갑을 주었던 민서는 돈 몇 만 원을 슬쩍 하려다 카림에게 들킨 전력이 있다. 이를 계기로 고된 한국 생활에 지친 카림과 생활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민서는 점차 마음을 열고 '좋은 친구'가 되어 간다.

<반두비>는 자연스레 신동일 감독의 데뷔작 <방문자>를 떠올리게 한다. <방문자>는 착하디 착한 여호와의 증인 청년과 비루한 중년 지식인이 우연한 만남 이후 따스하게 교감하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바 있다. 변화의 계기를 제공하는 소수자가 여호와의 증인에서 이주 노동자로, 입체적인 성격의 주인공이 지식인에서 여고생으로 변모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전작들과의 동어반복이란 얘기가 아니다. 유머는 좀 더 유연해졌고, 로맨스와도 같은 민서와 카림의 관계는 훨씬 따스하다. 도드라진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현 정부와 영어몰입교육, 보수언론에 대한 날카롭고 화끈한 비판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아쉽게도 삭제됐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에 대한 어느 여고생의 명쾌한 설명이 좋은 예다.

민서와 카림은 방글라데시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의 손을 맞잡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서로의 문제에 진심으로 귀기울이며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란 현실에서 이들의 우정은 쉽사리 지켜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영화는 분명히 한다. 이렇게 여고생과 이주 노동자를 한데 소수자로 설정한 신동일 감독은 이들을 껴안을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변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진심 어린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 노동자인 동시에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활약 중인 마붑 알엄이 카림 역을, 발랄한 매력의 신예 백진희가 민서를 연기했다. 2억 2천만 원의 예산으로 제작된 독립영화 <반두비>는 인디스토리 배급으로 6월 말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반두비 전주국제영화제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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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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