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프레시안> 정희준 교수의 칼럼(3/23일자)에 대한 반박글입니다. - 기자 주

 

광분한 적도 없고 광풍이 분 적도 없다

 

한국야구가 국제대회에서 '사고'치는 이유가 정말 궁금한가? 간단하다. 한국야구의 실력이 일본과 베네주엘라를 상대로 '사고'치고도 남을 만큼의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미안하지만 이곳 한국에서도 WBC 광풍, 광분 그런 현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대회에 크게 집착하지도 않았고, 혹시나 모르시나 싶어 어머님 방 채널을 애써 WBC 중계 채널로 맞춰 드렸으나 잠시 후 무슨 연속극을 보고 계셨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업무시간과 WBC 중계방송시간이 겹쳐서 감흥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거짓말 하지 말자. '광분'이란 용어를 사용하려면 2002년 월드컵 당시 광화문 수십만 응원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미국 내에서 WBC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억지 끼워 맞추기 식으로 한국에서의 야구열기를 '광적'인 수준으로 몰고 가버렸는데, 단지 자국 선수들의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 몇 번 올렸다고 졸지에 미디어의 장난에 농락당하며 '광분'하는 어리석은 야구팬들로 도배가 되어버리는구나. 결승전 당일 단체 응원을 위해 잠실야구장에 모인 관중들의 수는 헤아려 보았는가? 정말 광적이라면 잠실야구장 3만 관중석 정도는 꽉 채워야 정상 아닌가. 그 '3만'에 포함되기 위해 밤을 새워서라도 기다려야 하지 않나. 서울, 수도권 인구만 해도 2천만이 넘어가는데.

 

기사입력시간이 '3월 23일 오후 2시경'이기에 아마도 24일 결승전이 열리는 그 시간에는 필히 잠실야구장에 3만 명이 꽉 차고 넘쳐서 야구장 주위에 수만 명이 대형 스크린을 보며 응원하는 그런 광경이 미리 정 교수의 머리 속에 그려지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어쩌나. 결승전이 열린 24일 잠실야구장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야석도 다 채우지 못했다. '광분'치고는 너무나 소박한 '광분'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전 세계적으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지금 이 마당에 밥줄 끊어지지 않으려면 제 자리 꾸욱 지키면서 점심시간 잠시 '대한민국' 한번 외쳐보는 것이 정상 아닌가.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그 정도 여유 가지는 것을 '집단세례'로 몰아붙이면 할 말 없다. 정희준 교수의 눈에는 아직도 국민들이 1988년 올림픽 당시의 '대중 마취'와 '집단 환상'에 빠진 어리석은 대중으로 보이나 보다.

 

정교수가 꼬집은 언론의 보도 행태는 나 역시 불만이 많다. 외신짜깁기는 물론이요,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낚시질 및 싸움붙이기를 통해 페이지뷰 장사를 하는 언론매체는 나에게도 지탄의 대상이다. 호들갑스럽고 광기어린 요소가 다분히 우리 미디어에 배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아시아 예선 대만전부터 시작해서 일본과의 결승전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선전한 그 모습 하나하나가 어느 대학 교수의 펜놀림에 쉽게 '평가절하'될 일은 분명 아니다.

 

한국야구 수준은 선수들이 가장 잘 안다. 팬들은 더 잘 안다

 

"세계가 경악했다", "일본열도가 비탄에 잠겼다"와 같은 구태를 반복하는 신파조의 헤드라인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정 교수가 하나 놓친 게 있다. 정작 선수들과 팬들의 반응은 그런 자극적인 문구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언론의 낚시질을 비난하고 행간을 읽어 내려가는 이들이 많다. 물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과장된 제목이라도 그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까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 80년대 군사독재시절처럼 언론의 '광대만들기' 장단에 춤추며 놀아날 만큼 선수들과 국민들(팬들)이 어리석지는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J모 일간지의 '도쿄돔 거울' 기사 아니었던가. 도쿄돔에서 거울반사를 통해 한국 투수의 투구동작을 방해하는 일본 관중의 사진을 담은 기사였는데, 거울이 아닌 ID 카드라는 사실이 결국 네티즌들의 침착한 뒷조사로 밝혀졌고 해당 기사는 허겁지겁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정 교수는 야구팬,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있다. 씁쓸하다. 굳이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라는 USA Today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만 방문해봐도 푸대접 받는 WBC의 모습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WBC 관련 기사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속에 파묻혀 있는 보이지도 않는 그 썰렁한 모습을. 야구 좋아하는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WBC 계속 참가해야 하냐고? 물론이다. 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2006년 WBC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란 두 개의 획기적인 모멘텀을 통해 '이기는(이기고자 하는) 습관'이 몸에 밴 한국야구가 일본 한번 이겼다고 그렇게 날뛰고 기뻐할까. 굳이 정 교수가 지적하지 않아도 선수들은 잘 안다. 아직도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의 벽이 높다는 그 현실을. 팬들은 더 잘 안다. 때론 언론매체의 200% 부풀리기 기사에 스스로 민망함을 느끼기도 한다.

 

야구팬이자 국민으로서 우리가 열광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치를 130% 발휘하며 선전하는 선수들의 던지고 달리는 그 모습이다. 그 초과된 30%의 원천을 정 교수는 '병역면제'라는 당근에서 찾고 있고, 팬들은 한 단계 높아진 한국의 야구수준으로 정당화하고 있을 뿐이다. 정 교수가 한 번만이라도 일본전에서 이닝을 마칠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치는 봉중근의 모습을 봤더라도 조금은 다른 논조의 컬럼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아래에서 얘기하는 병역문제 얘기가 봉중근의 그 소름끼치는 패기를 조금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었을까.

 

 2009 WBC 일본과의 결승전 선발투수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환 봉중근 선수

2009 WBC 일본과의 결승전 선발투수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환 봉중근 선수 ⓒ WBC 사이트 캡쳐

 

병역문제는 '당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승리에 대한 의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모두들 병역면제에 노예가 되었다? 물론 공감하는 내용이다. 적어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까지는 그러했다. 시간적 간격은 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는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플라이를 잡은 우익수 이용규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분명 승리의 기쁨뿐만 아니라 이제 군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속물적인 감격도 읽을 수가 있었기에,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심정도 잠시나마 착잡했었다.

 

10여 년 전인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미국에서 절정의 구위를 선보이던 박찬호를 비롯, 병역대상자들을 한꺼번에 대표팀에 무더기 승선시킨 결과 박찬호의 공을 건드리기조차 버거운 타자들로 구성된 일본과 대만을 꺾고서 금메달을 획득, 이들은 모두 병역면제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상대팀 선수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최정예 선수들로 엔터리를 짠 야구대표팀은 누가 뭐래도 병역면제를 목적으로 급조된 '신병훈련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정 교수의 주장이 통한다.

 

하지만 적어도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은 상황이 다르다. 애초부터 정부는 병역면제는 없다고 공언해 버렸고, 설령 한국팀이 선전해서 병역면제가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그 수혜자는 고작 4명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 네 명 중 임태훈, 최정 두 선수는 백업요원들이고, 선발 라인업에는 추신수, 박기혁 두 명뿐이다. 이들 네 명을 위해서 나머지 주전 선수들이 '병역면제 브로커'의 역할을 그토록 충실히 수행했다는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의 비약이다. 전체 선수단 중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적다. 그리고 병역을 마친(면제를 받은) 선수들의 '야구하려는 의지', '이기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작년 베이징 야구경기장을 찾아가 보자. 정 교수는 '이승엽의 눈물'을 예로 들며 후배들의 병역면제에 일조하지 못하는 관록의 33살 홈런킹의 고뇌를 언급했다. 그리고 그 맏형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형에게서 한방을 기대하는 철없는 14명의 동생들을 '병역면제'에 눈이 먼 이기적인 무리들로 규정해 버렸다. 물론 정 교수의 보는 눈이 정확할 수도 있다. 누가 사람 마음을 알랴.

 

하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정말 이승엽이 부진에서 벗어나는 홈런을 때린 뒤 흘린 그 눈물을 '병역'이란 틀 속에서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승엽은 동생들, 후배야구선수들에게 뭐가 그리도 미안했을까? 이승엽이 한국과 일본에서 이룬 업적과 그가 쌓아놓은 '부' 정도면 평생 동생들에게 욕먹고 살아도 뭐가 그리 문제가 될까. 솔직히 말해 올림픽 끝나면 남남 아닌가.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자기 자신과 그런 남편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던 부인, 그리고 여하튼 그에게서 한방을 기대하던 국민들의 성원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을까.

 

한국야구팀이 '사고'치는 메카니즘을 '병역면제'라는 '당근'으로 해석하기 바쁜 정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2006년 WBC 한일전에서 일본을 격파한 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기뻐하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닌 박찬호의 그 '정신 나간' 모습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텍사스 레인저스'와 대박계약으로 수백억대(5년간 6,500만 달러)의 돈방석에 앉은 데다 오래 전에 '국방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 박찬호가 도대체 무엇이 아쉽다고 그렇게 어린애처럼 그렇게 날뛰고 좋아했을까?

 

도대체 그날 대형 태극기를 휘날리며 '에인절스 스타디움'을 철없이 뛰어다니던 그 선수들 중에 병역면제의 꿈에 부풀어 있던 선수들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주전으로 활약한 대부분의 선수들(이종범, 박찬호, 구대성, 박진만, 조인성, 이병규, 김병현 등등)은 이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통해 그 혜택을 받은 선수들 아니었던가.

 

단지 이들이 이진영, 오승환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투지'와 '선전'을 '병역면제'라는 그림자 속으로 가두어 두는 것은 손으로 해를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위 선수들이 후배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매 게임에 임했다고 단정짓기엔 너무 설득력이 약하지 않은가? 일본과의 일전을 지켜 본 야구팬들은 모두 다 안다. 병역 운운하기엔 그때 이종범을 비롯한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너무 진지하고도 인상적이었다는 사실을.

 

한편으로, 병역면제가 한국야구에 있어 '힘의 원천'이자 '승리의 열쇠'라면, 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했고,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과 대만에게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 대표팀에는 면제받을 선수가 없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선수구성은 별반 차이 없다. 호화멤버로 구성된 국가대표 야구팀이다. 그래야 일부 선수들 면제도 받게 할 것 아닌가. 승부의 세계, 스포츠가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고?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입에 거품 물고 '병역'을 끌어 들일 필요가 없질 않나. 어떻게 경기를 하다 보니 WBC, 올림픽도 이겼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WBC는 '반듯하지는' 않지만 '어설픈' 대회는 아니다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는 정 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듯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어설픈' 대회는 아니다. 메이저리그(MLB)라는 최고의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해내고 있는 MLB 사무국, 구단들이 바보 멍청이는 아니다. 그들이 보유한 수십 개의 웅장한 야구장의 규모만큼이나 선수육성 시스템을 비롯한 이벤트 기획능력 등은 가히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도도 치밀하다. (개인적으로 분석컨대) WBC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중국시장'이다. 물론 중국으로 가는 길과 병행해서 복합적인 이해관계도'가 그 밑에 깔려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중국'만 다뤄보자. 중국을 WBC 결선에만 올릴 수 있다면 13억 인구로 대변되는 중국의 야구열기를 등에 업고 메이저리그를 주축으로, 그리고 한국 및 일본 리그를 다시 작은 축으로 '야구의 세계화'를 이루는 데 그만큼 좋은 카드도 없다.

 

'축구'에 미친 유럽은 사실상 포기했을 것이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는 그야말로 다크호스, 구색용 정도로 끼어 넣고 있음이 분명하다. 도미니카, 베네주엘라, 멕시코로 대표되는 메이저리그 등용문인 북중미, 중남미 시장은 이제 만족스럽지 못하다. 새로운 활력소, 돌파구가 필요하다. 중국의 마리아노 리베라, 중국의 매니 라미레즈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메이저리그' 시장으로 지속적으로 우수자원을 공급하고 동시에 세계야구시장을 확장하기 위해서 '중국'이란 초대형 자원배출국이자 야구 소비국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야말로 중국인들의 심장을 야구공으로 바꾸어 거기에 '애국심'이라는 불을 활활 지피고 싶은 것이다. '애국심 마케팅'을 통한 상술의 극대화에 있어 중국만큼 좋은 대상도 없다. 다른 국가들은 비교대상이 못된다. WBC 본선에서 중국의 단 한 선수가 이치로급의 활약만 펼쳐도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바로 그 장밋빛 미래를 위해 WBC라는 이벤트성 대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당분간 한국과 일본이라는 큰 장벽 때문에 중국의 예선통과는 쉽지 않겠지만, 중국야구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면서 잠자고 있는 중국인들이 눈만 야구장으로 언젠가 돌릴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세계야구는 계속 그들의 파이를 늘려가면서 배를 불릴 것이다. 이미 전조는 나타나지 않았는가. 베이징 올림픽과 2009 WBC 예선에서 중국은 대만을 연속으로 격파했다. 우연이 아니다. 이제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다음 타켓으로 할 것이다.

 

제3회 WBC 대회부터 한국과 일본에게는 '자동본선진출권'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표면적으로는 2회 대회 우승팀과 준우승팀에 대한 예우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중국을 어떻게 해서든 본선 무대로 올려놓고자 하는 미국의 속셈이 깔려 있다. 아시아권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이번 결정의 최대 수혜국은 중국과 대만이다. 대만은 요즘 취객처럼 비틀거리고 흐느적거리고만 있다. 대만이 역주행만 거듭하고 있는 반면, 중국야구는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그 발전 속도가 놀랍기만 하다. 이미 두 차례 대만을 이겼다.

 

결국 중국의 본선행을 돕고자 하는 수작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왜 'L.A. 다저스'가 오래 전에 중국에 야구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하고 있는지, '뉴욕 양키스'가 왜 별 볼일 없는 중국 선수를 데리고 가서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히려고 애쓰는지, 베이징 올림픽 야구경기장인 '우커송 야구장'을 왜 미국이 건설을 하고 구장관리까지 맡고 있는지, 야구장에서 Take Me Out to the Ballgame 의 멜로디가 울려퍼지는지, 그 이유는 자명하다.

 

절대 자기들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의 결정체 미국 아니던가. 한국과 일본은 어찌 보면 이용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들 역시 한국야구 발전의 계기로 삼아 WBC를 이용하면 된다. 여기에 정 교수가 이미 자신의 컬럼 속에 언급해 놓기는 했지만 혹시 다시 제기할지도 모를 가상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다.

 

"주최국 미국의 대중 일간지 속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국제대회, 메이저리거들이 몸 사리느라 대충대충 경기를 펼치는 WBC에 굳이 참여를 해야 하나?"

 

 2009 WBC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패한 미국팀

2009 WBC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패한 미국팀 ⓒ WBC 사이트 캡쳐

 

설렁설렁하는 WBC 꼭 참가해야만 하나?

 

미국과 일본이 짜고 치는 고스톱판에 저네들 배부르게 만드는 찜찜한 대회에 꼭 참여를 해야 하나. 물론이다. 명분과 실리가 있는 한 당연히 참가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류'가 없는 스포츠는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미국의 기획력, 인프라와 일본의 자본이 결합된 특정 국가의 돈벌이 놀이터로 전락한 대회인지는 몰라도 우리 야구선수들이 이와 같은 기회가 아니고서는 정예멤버들이 포진한 세계 최강 미국, 푸에르토리코, 베네주엘라, 도미니카와 같은 국가들과 경기를 펼칠 기회는 사실상 없다. 메이저리그(MLB)가 존재하는한 올림픽을 통한 최정예멤버간 진검승부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세계야구에서 MLB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IOC 와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그다지 아쉬운 게 없는 모양이다.

 

정 교수는 올림픽에서 퇴출된 야구가 다시 '사면복권'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잘된 일이다. 어중간한 국가들과 선수들로 채워진 '끼워맞추기' 식의 올림픽 야구보다는 WBC를 보는 것이 야구팬에겐 더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WBC는 한국선수들의 합법적인 병역면제의 장과는 거리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WBC가 3회, 4회 대회를 치르면서 제대로 뿌리를 내린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수들이 국가와 개인의 명예를 놓고 격돌하게 될 것이고, 이는 참가국 모두 최정예 멤버들로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검증을 받은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할 것이고 이 경우 병역문제를 해결한 선수들이 많이 포함될 확률이 높다. 세계 최정상의 야구강국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경기이기에 어중간한 신인들은 엔터리에 얼굴을 내밀 확률이 그만큼 줄어든다.

 

더럽고 아니꼽고 불쾌해도 그렇게 '꾸역꾸역' 참가해서 맞짱 뜨는 가운데 우리 야구실력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 교수 말대로 돈은 미국이 다 쓸어 담아갈지는 몰라도 지난 두 번의 WBC를 통한 4강, 준우승은 결코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자신감'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내프로야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다시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국내 스타들을 세계에 알리는데 WBC만큼 좋은 대회가 있는가? 제 아무리 국내에서 홈런 4-50개를 쳐내도 WBC 베네주엘라 전에서 김태균이 터뜨린 한 방이 스카우터들의 뇌리에 오래 남음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메이저리그로, 일본리그로 진출할 기회를 잡으면 된다.

 

이번 WBC를 통해 쿠바야구의 몰락을 다들 생생히 목격하지 않았는가. 폐쇄적인 사회주의 야구는 결국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교류가 없으면 발전이 없다. 단순히 쿠바가 운이 없어서 올림픽과 WBC에서 한국과 일본에 내리 네 번 진 것이 아니라, 폐쇄적인 쿠바 야구의 환경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쿠바가 이전처럼 세계 최강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강호들과 정보도 주고받으며 WBC를 비롯한 야구대결의 장에서 맞대결도 펼쳐야 할 것이다. WBC의 가장 기본적인 룰인 투구수 제한규칙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서 일본과의 경기에서 좋은 투수를 다 써버린 그런 무식한 투수운용도 더 이상 세계야구에서는 용납이 되질 않는다.

 

사실 두 번의 WBC와 베이징 올림픽을 겪으면서 베네주엘라, 일본을 비롯한 어느 나라와 맞붙어도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은 아래에서 소개할 1991년 '한일 슈퍼게임'이란 '교류'를 통해 획득한 것이다. '일본야구 배우기', '한일 야구교류'를 위해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접고서 일본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한국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단체로. 생전 처음 보는 뚜껑 덮인 야구장 속 3만명이 넘는 관중 앞에 섰을 때 다들 몸이 얼어붙었는지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연출하고 매끄럽지 못한 플레이도 연발하는 가운데 그 격차를 좁히려고 노력했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어림도 없지"하던 일본야구가 지녔던 오만함의 '유효기간'은 채 20년이 가지 못했다.

 

몸 사리며 대충대충 한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시즌에 162경기를 펼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매 경기마다 집중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시즌을 치르다 보면 5회 이전에 5-10점차 이상 뒤진 경기들도 적지 않을 텐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말 공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던지고, 또한 타격에 임할 수는 없다. 그것보단 '국가대항전'이라는 타이틀 아래 단기전 몇 게임에 최선을 다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몸을 아직 다 만들지 않았다고. 도대체 그놈의 몸은 언제 다 만드나. 곧 시즌이 시작되는데 아직 몸 만드는 중이라. 정말 메이저리거 맞나?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거 아닌가. 아직 몸이 덜 만들어져서 마스자카는 대회 MVP에 선정되었나. 이치로는 3월이라 그렇게 땅볼만 신나게 때리고 있었을까. 독기 어린 눈으로 플레이에 집중하는 그 모습은 덜 만들어진 몸을 감추고자 하는 '제스처'였던가.

 

다르빗슈는 메이저리그에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굳이 MLB에 가지 않아도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그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르빗슈는 일본에서는 초특급스타의 반열에 올라와 있고 귀한 대접 받는 몸이다. 이번 미국 대표팀에서 뛴 소위 '메이저리거'들 중에서 과연 다르빗슈보다 더 극진한 대접을 받을 만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그러함에도 그는 조국 일본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던졌다. 승리를 안기기 위해.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하라 감독이 철벽 마무리 후지카와의 자존심을 뭉개면서까지 신뢰를 준 투수는 다름 아닌 다르빗슈였다. 아시아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다르빗슈의 표정에서 대충대충, 설렁설렁 경기에 임한다는 모습이 조금이나 보이던가. 마스자카, 이와쿠마도 마찬가지다. 이치로, 조지마, 이와무라는 말할 것도 없고.

 

사진 한 장과 한-일 라인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2009 WBC 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4강행을 결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는 김인식 감독과 코치진. 이들 중 김성한, 이순철, 류중일 코치는 1991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슈퍼게임'에 참가한 선수출신이다.

2009 WBC 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4강행을 결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는 김인식 감독과 코치진. 이들 중 김성한, 이순철, 류중일 코치는 1991년 일본에서 열린 '한일 슈퍼게임'에 참가한 선수출신이다. ⓒ KBS 방송 캡쳐

 

정 교수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다. 일본을 꺾고 4강을 확정지은 뒤 코칭스탭이 서로 원을 그리며 감격해 하는 모습이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 등과 같은 수많은 국제 경기를 보았지만 선수들이 아닌, 감독과 코치들이 마치 봉황대기 우승한 선수들 마냥 저토록 유치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야구팬들이라면 정말 이들이 왜 이토록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이다. 김인식 감독 이하 코치진의 면면을 한번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김성한, 류중일, 이순철. 특히 이 세 명의 코치들에게 일본전 완승은 정말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이들 3인방이야말로 프로야구 출범과 더불어 일본 선수들과 직접 그라운드에서 몸소 부딪히면서 한국과 일본의 실력차를 절감하며 8,90년대를 보낸 선수들이다. 이들에게 일본전에서 완벽한 승리가 가지는 그 의미는 봉중근, 이대호로 상징되는 80년대 출생 선수들이 가지는 그 의미와는 또 다르다. 조금 더 얘기해보자. 정 교수는 과연 알고 있을까. 아래 라인업이 상징하는 게 무엇인지를.

 

韓) 정근우-이용규-김현수-김태균-이대호-이범호-이택근-강민호-최정 (투수: 장원삼)

日) 이치로-나카지마-아오키-조지마-우치카와-무라타-이와무라-아베-가타오카 (투수: 우츠미)

 

지난 3월 20일 벌어진 2009 WBC 한국-일본전 선발 라인업이다. 90년대 초에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역사적(?)인 일이었다. 비록 물음표를 달긴 했지만 18년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라인업이다. 양국의 선발명단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순위결정전이라 큰 의미가 없는 경기였음에도 이전에 펼쳐진 진검승부 두 경기에서 한국에 패한 일본은 사실상 '베스트 나인'을 투입했다. '아베'를 제외하곤 24일 한국과의 결승전에 전원 선발 출장한 일본야구의 최정예 멤버들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일본의 선발 라인업보다 중량감이 떨어지는 선수구성으로 여유를 보였다. 물론 우리의 선수층이 얇기에 한 경기 주전들에게 휴식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일본이 저렇게까지 악착같이 최정예 멤버들을 투입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17배 많은 연봉총액, 이치로, 마스자카를 비롯한 다수의 메이저리거 보유, 야구 역사에 대한 자존심, 그리고 압도적인 인프라 우위를 모두 내팽개치는 듯한 일본의 '저자세' 라인업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을 얻기 위해 다시 1991년으로 돌아가 보자.

 

1991년 11월 도쿄돔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당시 '한일 슈퍼게임'이란 이벤트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슈퍼스타들을 도쿄돔에 한 곳에 모아 놓고 국가대항전을 벌인 것이다. 사실 우리 측이 거의 간청하다시피해서 성사된 경기였다. 1990년대 초반 만 해도 일본은 메이저리그(MLB)에 대한 짝사랑으로 가득 피아났던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한일 슈퍼게임'은 모두 7차전까지 치러진 경기였으나 사실 1차전이 전부였다. 1차전은 말 그대로 한일 최고의 선수들만 한자리에 불러 모아 한판 승부를 벌인 진검승부였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진검승부지 사실 일본선수들의 얼굴에서는 한국대표팀의 '진검'에 대한 두려움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마치 올스타전에 하루 참석해서 야구외적으로 마음껏 즐기는 분위기였고, 이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한국 선수들의 얼굴과 몸은 얼어붙어 마치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2-2 접전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바로 그 한국 선수들 중에 김성한, 이순철, 류중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국내에서는 최고의 야수들로 일컬어지는 선수들이었지만 도쿄돔에서 그 존재감은 극히 미약했다.

 

박동희의 맞상대 선발이었던 구와타를 비롯하여 장종훈, 오치아이, 기요하라와 같은 슈퍼스타들이 각양각색의 유니폼을 입고서 도쿄돔에 운집한 그 광경을 보면서 야구팬이자 시청자인 내가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양국간 야구수준 격차는 30년, 최소 10년은 난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스포츠 세계가 늘 그러하듯, 왠지 한국이 일본을 한판에 제압해 버릴 것만 같은 강한 예감을 거부할 수 없었다. 물론 현실은 냉혹했다. 일본 최고의 포수 후루타를 상대로 이순철이 도루를 성공한 것과 160km 의 광속구 투수 이라부에게 뽑아낸 김성한의 홈런 한방이 내가 기억하는 1차전의 전부다. 2차전부터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경기들이었다. 주니치 드래곤즈와 같은 일본의 특정 팀 소속 선수들을 위주로 적당히 타팀 선수들을 섞어치기한 한마디로 무늬만 올스타인 연합군이 일본 대표팀으로 나왔기에 사실상 1차전이 정예멤버간 대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쿄돔 승부에서 한국대표팀은 그럭저럭 선전했으나 결국 일본에게 3-8로 패배하고 만다. 우리가 획득한 3점에 순간순간 들뜨기도 했었지만, 잃어버린 8점은 야구중계를 보는 시종일관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브라운관 속 양국 선수들의 치고 달리는 동작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개별 몸놀림이 다시 하나의 집합체가 된 공.수.주에서 미세한 차이점이 느껴졌다. 일본대표팀은 쉽게 점수를 내면서 편안하게 경기를 주도해 나가는 반면 우리 선수들은 늘 일본이 지나간 궤적을 힘겹게 뒤쫓아 가고 있었다.

 

단순히 패배했다는 사실보다 경기 내내 도쿄돔을 지배하고 있던 그 정체 모를 기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낯설고도 불편했던 마음가짐이 바로 1991년 그 당시 한국과 일본의 야구수준 차이였다. 3-8란 스코어는 내 마음 속에서 감지되고 있던 두 나라 야구수준의 '갭(gap)'이 수치로 나타난 것에 불과했다. 양국 선수들의 극히 상반된 표정이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숫자 '3'과 '8'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견고한 '벽'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데 18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기는 습관이 밴 선수들과 팬들은 야구를 편히 즐기고 싶다

 

2009 WBC 1차 한일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2-14 대패를 하게 된다. 그리고 패자부활전에서 중국을 이긴 뒤, 이틀 후 열린 순위결정전에서는 봉중근의 역투를 발판으로 일본에게 단 '0점'만 허락한 한국의 높은 마운드 덕분에 1-0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마지막 타자를 범타로 처리한 마무리 임창용의 담담한 표정이 너무 담담하게 느껴지지 않던가. 나머지 선수들의 표정과 몸짓 속에서도 그다지 감격스러운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국내 프로야구 한 시즌 126게임 중 한 경기를 이긴 것이 뭐가 대수냐는 듯, 조용히 다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임창용의 '권태스럽기까지' 한 얼굴표정이 얄밉기도 했다. 많은 팬들이 자신들이 느꼈던 감동의 깊이를 그들이 공유하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하게 생각했을 게다.

 

물론 줄곧 끌려 다니면서 패색이 짙던 경기를 8회 이승엽의 홈런 한방으로 단숨에 역전시켜 버린 3년 전 '도쿄대첩'이 선사했던 그 짜릿한 감동의 정도와 깊이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야구경기에서 가장 긴장감을 자아낸다는 팽팽한 투수전 끝에 쟁취한 1-0 완승이었기에 충분히 '오바액션'을 취할 만도 했으나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은 너무나 소박하게 승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난 18일 펫코파크에서 열린 본선 2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시 맞붙었다. 결과는 4-1 한국의 승리. 완벽한 승리였다. 4강 확정이란 무게감 때문인지 코칭스탭과 선수들이 얼싸안고서 기뻐하는 모습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덕아웃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는 속도가, 3년 전 도쿄돔 아시아예선에서 박찬호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바로 그 순간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로 전력 질주하던 달음질 속도의 1/2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순간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다들 배가 불렀나? 이미 병역면제를 받아서 별로 기쁘지 않나? 물론 선수들 자신은 안다. 야구팬들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솔직히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길 경기를 이겼을 뿐이기에 특별히 환호성을 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언제', '어디서'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 선수들은 어느새 '이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팬들 역시 그 습관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또 다른 습관이 배어 있다. 일본과 베네주엘라는 단지 우리가 '이기는 습관' 위에서 상대해 온 많은 상대 국가들 중 하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선수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습관',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반복된 습관은 제 2의 '천성'을 만들어낸다. 일본이 자랑하는 '데이터 야구'란 것도 따지고 보면 '습관의 야구'다. 쉽게 말해 투수 개개인의 투구 습관, 개별 타자들의 타격 습관을 수치화 시켜 놓은 것이 결국 '데이터'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경기를 보면서 조바심을 내비치는 대신 느긋하게 기다리는 버릇이 생겼다. 차분히 경기를 보고 있으면 선수들이 그 기다림의 시간을 승리, 또는 좋은 경기내용으로 보답해 주었다.

 

한번 드리워진 습관은 쉽사리 변질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2006년 WBC를 경험하면서, 2008년 올림픽 경기를 치르면서, 그리고 얼마 전에 끝난 WBC 경기를 보면서 이제는 완연히 몸속에 배어 있음을 느낀다. 또 다시 일본에 2-14로 패한다고 해도 '다음'을 도모할 것이고, 1-0 리드가 재현되어도 초조함보다는 승리에 대한 기대감에 무게중심이 쏠릴 것이며, 91년 슈퍼게임에서 일본 선수들이 그러했듯이 즐기면서 게임을 풀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들이 반복되는 가운데 하나의 묵직한 '매너리즘'이 형성되고 그 건설적인 '매너리즘' 속에서 몸과 마음 속에 밴 습관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적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그 적의 자리에 누가 위치하든 간에.

 

잡설: 월드컵도 그 시작은 미약했다. 서울 올림픽 누가 알아주기나 했나

 

야구팬이자 스포츠팬의 입장에서 MLB 사무국이나 IOC나 오십보 백보다. WBC를 통한 MLB 의 장사속을 비판하기 위해 IOC를 상대적으로 깨끗한 편에 세우는 그런 자세는 보기 좋지 않다. IOC가  MLB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한 곳은 아니다.

 

야구하는 나라가 20개밖에 안 된다고 너무 나무라지 말자. 미안하지만 그 20개 국가 중에서 추려진 본선진출국 8개 국가는 모두 우승후보들이다. 베네주엘라, 푸에르토리코가 대체 어디 붙어 있는 나라들이냐고 냉소 짓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장 worldbaseballclassic.com 을 방문해서 양국을 대표해서 뛴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바로 그 선수들이 지금의 미국 메이저리그를 먹여 살리고 있는 주축 선수들이다. 숫자 많으면 무조건 좋은가? 대학교수의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의 분량이 그 교수가 행해 온 연구업적의 질과 노력을 모두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월드컵의 시작은 어떠했는지 알고서나 글을 썼을까. 한마디로 보잘 것 없는 월드컵의 시작은 왜 덮어두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어떠했나. 80년대 언론의 세뇌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88 올림픽'이란,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 대륙은 물론이요, 저 멀리 무인도에 사는 원숭이들까지 그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함에도, 실제 현실은 그러했을까. 아프리카는 고사하고 많은 유럽인들조차 한국의 올림픽 개최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에 충격 받았던 건 나뿐이었던가. 고작 2회 대회에 불과한 WBC를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그 규모와 열기를 비교하는 발상의 근원지는 어디인가.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개최 두 달 전까지 유럽에서 한 나라도 참가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믿기나 할지.

2009.03.27 10:34 ⓒ 2009 OhmyNews
WBC 야구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김성한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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