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점골을 터뜨리며 한창 끓어오른 분위기는 채 7분을 넘기지 못했다. 또 한 번의 실수로 내준 두 번째 골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꼴이 되었다. 맏형 이을용이 떠난 상암벌은 더 황량하게 느껴졌다. FC 서울은 공교롭게도 사흘 전 그 맏형이 뛰고 있는 강원 FC에게 당한 1-2 패배에 이어 연거푸 안방 팬들 앞에서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세뇰 귀네슈 감독이 이끌고 있는 FC 서울(한국)은 우리 시각으로 17일 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9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F그룹 두 번째 경기에서 감바 오사카(일본)에게 2-4로 패하며 망신을 당했다.

 

강원도로 떠난 이을용의 빈 자리...

 

까다로운 방문 경기였지만 역시 디펜딩 챔피언은 달랐다. "패스를 잘 하는 팀은 당해내기 힘들다" 라는 말은 역시 축구판에서 들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진리였다.

 

K-리그는 물론 아시아 무대 정상까지 넘보며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던 안방 팀 FC 서울은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경기를 펼쳤지만 고비마다 나온 결정적인 실수때문에 분루를 삼켜야했다.

 

강원 FC로 떠난 미드필더 이을용의 자리를 물려받은 한태유는 경기 시작 13분만에 결정적인 패스 실수를 저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거기서 나온 감바 오사카 미드필더 야마자키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그림처럼 안방 팀 골문 오른쪽에 박혔다. 경기 전체를 놓고 봐도 바로 그 자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의 지점이었다.

 

0-1로 뒤진 상태에서 후반전에 들어온 한태유는 전반전의 그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가장 부지런히 움직였다. 후반전 시작 후 3분만에 거짓말처럼 그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기회도 찾아왔다. 하지만 상대 문지기 후지가와를 원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왼쪽으로 몸을 날린 후지가와는 한태유의 발등 깊숙한 곳에서 날아온 공을 기막히게 걷어냈기 때문이었다.

 

'4-4-2' 포메이션을 똑같이 들고 나온 두 팀은 최근 보기 드문 미드필드 싸움을 펼쳤다. 안방 팀 FC 서울은 90분이라는 시간대를 셋으로 나누었을 때 가운데 토막에 해당하는 30분동안 승부를 걸며 동점골도 터뜨렸지만 그 이후 더 중요한 시간대에 균형을 잡아주는 맏형이 보이지 않았다.

 

사흘 전 강원 FC의 주장 이을용에게 그렇게 당했지만 그가 또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각각 가운데와 측면을 책임지며 날카로운 패스의 줄기를 만들었지만 생각만큼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이들의 속도와 감각을 살리며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노련한 플레이메이커가 아쉬웠던 것이다.

 

골잡이 조재진, 수준 높은 찔러주기로 도움 '두 개'

 

감바 오사카는 지난 해 이 대회에 이어 한국(K-리그) 방문 경기에서 네 골을 몰아 넣는 놀라운 득점력을 또 한 번 자랑했다. 거의 1년 전 이맘때였다. 2008년 3월 19일 광양축구전용경기장에 들어간 감바 오사카 선수들은 G그룹 두 번째 경기에서 전남을 상대로 4-3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간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네 골을 퍼붓고 간 것이다. 아마도 2004년 3월 1일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창단 기념경기에 초청되어 0-4로 대패했던 것과 2006년 A3 챔피언스컵에서 울산에게 당한 0-6의 참패 기록이 한으로 남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한 때 K-리그 클럽만 만나면 기를 펴지 못했던 그들이 지난 해부터 방문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맘껏 제 실력을 펼치고 있다. 그 이유는 미드필드의 매끄러운 패스에 있다. 그 균형을 노련한 미드필더 엔도와 하시모토가 맡는다.

 

특히, 일본 국가대표로서도 우리 팬들에게 낯익은 엔도 야스히토는 감바 오사카의 아기자기한 축구를 완성시킨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오늘도 그가 중심에 서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FC 서울 미드필더들을 흔들었던 것이다.

 

자로 잰 듯한 코너킥 세트 피스 실력을 자랑하며 실질적인 결승골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골(60분)을 도왔고, 그 이후의 미드필드 기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여기에 다시 J 리거가 된 조재진도 큰 몫을 해냈다.

 

그가 만들어낸 두 개의 도움 장면은 조재진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을 바로잡기에 충분했다. K-리그에서 조재진은 주로 외롭고 피곤한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활용되었다. 그의 머리를 향해 높이 날아가는 확률 낮은 공은 당사자인 조재진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뻥 축구'의 희생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니시노 감독은 레안드로 다 실바라는 걸출한 브라질 출신 골잡이를 조재진의 단짝으로 삼아 훌륭한 조합을 이뤄냈다. 물론, 조재진을 겨냥하여 높은 공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에게 공간을 만들고 공격적 패스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낼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과 동료들과의 유기적인 움직임 속에서 레안드로의 해트트릭이 완성된 것이었다.

 

오래간만에 순도 높은 해트트릭이 나왔다. 중간에 다른 선수의 득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두 후반전 22분 사이에 터진 것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반면에 FC 서울의 수비수 김진규는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운 셈이었다.

 

엔도의 왼쪽 코너킥으로 해트트릭 행진을 출발한 레안드로는 74분에도 조재진의 기막힌 발바닥 패스를 받아 정확한 오른발 감아차기로 추가골을 넣었다. 특히, 이 장면은 전반전 17분에도 매우 비슷한 경우(조재진 밀어주기-야마자키 대각선 슛)가 있었기 때문에 FC 서울 수비수들이 학습된 것이었지만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또한, 조재진은 82분에 상대 수비수 김진규를 절망시키는 빠른 찔러주기 실력을 자랑하며 4-1을 만들었다. 그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아는 눈치였다. 관중석에 앉은 국가대표팀 허정무 감독도 이 대조적인 장면을 또렷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이렇게 방문 경기에서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긴 디펜딩 챔피언 감바 오사카는 다음 달 8일 스리위자야(인도네시아)를 안방으로 불러 세 번째 경기를 벌이고, FC 서울은 같은 날 샨동 루넝 FC와의 방문 경기를 위해 지난으로 날아간다.

덧붙이는 글 | ※ 2009 AFC 챔피언스리그 F그룹 경기 결과, 17일 상암월드컵경기장

★ FC 서울 2-4 감바 오사카 [득점 : 정조국(53분,도움-이청용), 이상협(90+3분,도움-기성용)/ 야마자키(13분), 레안드로(60분,도움-엔도), 레안드로(74분,도움-조재진), 레안드로(82분,도움-조재진)]

◎ FC 서울 선수들
FW : 데얀(83분↔이상협), 정조국
MF : 김치우, 기성용, 한태유, 이청용
DF : 아디(46분↔이승렬), 김치곤, 김진규, 안태은(74분↔케빈)
GK : 김호준

◎ 감바 오사카 선수들
FW : 조재진(88분↔오츠카), 레안드로 다 실바(85분↔반도)
MF : 루카스, 엔도, 하시모토, 야마자키(85분↔사사키)
DF : 시모히라, 야마구치, 박동혁, 미치
GK : 후지가와

◇ F그룹 현재 순위(2위까지 16강 토너먼트 진출)
1 감바 오사카 2승 6점 7득점 2실점
2 샨동 루넝 FC 1승 1패 3점 5득점 3실점
3 FC 서울 1승 1패 3점 6득점 6실점
4 스리위자야 2패 0점 2득점 9실점

2009.03.18 09:4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2009 AFC 챔피언스리그 F그룹 경기 결과, 17일 상암월드컵경기장

★ FC 서울 2-4 감바 오사카 [득점 : 정조국(53분,도움-이청용), 이상협(90+3분,도움-기성용)/ 야마자키(13분), 레안드로(60분,도움-엔도), 레안드로(74분,도움-조재진), 레안드로(82분,도움-조재진)]

◎ FC 서울 선수들
FW : 데얀(83분↔이상협), 정조국
MF : 김치우, 기성용, 한태유, 이청용
DF : 아디(46분↔이승렬), 김치곤, 김진규, 안태은(74분↔케빈)
GK : 김호준

◎ 감바 오사카 선수들
FW : 조재진(88분↔오츠카), 레안드로 다 실바(85분↔반도)
MF : 루카스, 엔도, 하시모토, 야마자키(85분↔사사키)
DF : 시모히라, 야마구치, 박동혁, 미치
GK : 후지가와

◇ F그룹 현재 순위(2위까지 16강 토너먼트 진출)
1 감바 오사카 2승 6점 7득점 2실점
2 샨동 루넝 FC 1승 1패 3점 5득점 3실점
3 FC 서울 1승 1패 3점 6득점 6실점
4 스리위자야 2패 0점 2득점 9실점
조재진 기성용 감바 오사카 챔피언스리그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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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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