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현대건설 대 흥국생명 경기 모습.

5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현대건설 대 흥국생명 경기 모습. ⓒ 김정욱


5일 오후 5시 수원시 종합실내체육관. 현대건설 그린폭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자배구 프로리그 경기가 열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을 메운 300여 배구 팬들의 응원 열기는 뜨거웠다. 귀를 찌르는 함성과 장내 아나운서의 해설, 선수들의 스파이크 마찰음으로 체육관은 들썩들썩했다.

특히 수원을 연고지로 두고 있는 현대건설 응원석은 노란 막대풍선을 연신 부딪히는 팬들의 응원으로 바로 옆 사람과의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응원단의 함성도 만만치 않았다. 흥국생명 로고가 박혀 있는 수건을 올렸다 내리며 막대풍선 소리에 버금가는 함성을 지르며 팀을 응원했다.

'미녀 군단'이라 불리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출전했기 때문일까. 체육관을 찾은 관객은 대부분 남자였다. 그러나 관중석 여기저기 자리잡은 '언니 팬'들의 응원소리는 남자 관중의 함성 못지 않았다. 비록 소수였지만, 남자 팬들 사이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현대건설 그린폭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여자배구단 선수의 평균 연령은 각각 22.9세와 23.2세. 프로배구 새내기 선수들의 경우 90~91년생이 대부분이다. 언니 팬들의 눈에는 하염없이 귀여운 '막내 동생뻘'이다.

"남자배구는 너무 빨라 정신없어요"

다리로 'ㄱ'자 만들기 경기 시작 전 흥국생명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 다리로 'ㄱ'자 만들기 경기 시작 전 흥국생명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 김정욱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큰 카메라 가방을 메고 코트 바로 옆에 자리잡은 김애경(36)씨는 흥국생명 김연경(22·레프트) 선수의 열렬한 팬이다. 공식 팬카페인 '흥배사모'의 회원이기도하다. 김씨는 "그저 대견하다"며 연신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경기 끝나고 구단 버스에 오르는 선수들을 보면 얼음찜질해 가며 고통스러워해요. 어린 선수들이니 가여운 마음, 자식 같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그녀는 이번 시즌부터 배구장을 찾았다.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과 달리, '운동선수'로서 색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김씨는 "우리 동네 아줌마들은 여자배구 정말 좋아해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남자배구는 너무 빨라서 정신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희연(35)씨는 배구 경기장에서 스트레스를 푼다.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은데, 어린 선수들이 높이 점프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단다.

이씨는 "선수들이 스파이크 때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기운이 나요"라며 "내가 키만 컸으면…"하고 웃었다. 이어 "여자배구는 남자배구보다 경기 속도는 느리지만 그만큼 전술이 다양한 것 같아 보는 재미가 다분하다"고 전했다.

언니 팬의 '섬세함', 남자 팬 못 따라온다

이용희(54)씨는 중학교 시절, 배구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전직 배구선수'다. "그 당시에 여자가 배구 한다면 좋아했겠어요?"라며 쑥스러워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코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편과 종종 배구 경기를 보러 경기장을 찾는 이씨는 "어린 선수들을 보니 활기차고, 생동감이 느껴져 자주 경기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여자배구 현역 선수들의 평균 연령대에 속하는 정유리(23)씨는 '3년차 팬'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배구를 처음 접했던 정씨는 여자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에 반했다. 매 번 경기장을 찾는 열성팬이 됐다. 정씨는 "(배구는) 타 구기종목과 달리 단시간에 승부가 나고, '1점 차이' 승부가 잦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흥국생명 응원 왔어요" 강선화(31)씨는 "언니 팬은 남자 팬들이 모르는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 "흥국생명 응원 왔어요" 강선화(31)씨는 "언니 팬은 남자 팬들이 모르는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 김정욱


 현대건설 그린폭스 팀을 응원하고 있는 관중들. 대부분이 남성 팬이다.

현대건설 그린폭스 팀을 응원하고 있는 관중들. 대부분이 남성 팬이다. ⓒ 김정욱


강선화(31)씨는 언니 팬들만의 강점을 말했다. 강씨는 "남자 팬들이 모르는, '언니'만 알 수 있는 사소한 부분을 챙겨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남성 팬들이 여자배구를 단순히 좋아할 수는 있지만, 여자배구 선수들을 '이해'하는 면에선 언니 팬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했다.

언니 팬은 선수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신영(32·가명)씨는 "숙소 생활 때문에 군것질 못하는 선수들 위해 과자 같은 걸 전해주고 밸런타인데이 때는 초콜릿도 사준다"며 "남자 팬은 잘 챙기지 못하는 세세한 것들을 언니 팬이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장서 언니 팬 더 많이 봤으면..."

 이번 올림픽 예선에서는 김연경의 시원스런 스파이크를 볼 수 없다.

5일 경기에서 여자배구 프로통산 2500 득점을 달성한 흥국생명 김연경(자료사진). ⓒ 한국배구연맹

듀스까지 가는 접전이 이어졌으나, 현대건설이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이날 경기에서 흥국생명 김연경은 여자배구 프로통산 최초로 '2500 득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언니 팬은 주로 혼자 체육관을 찾는다. 쑥스럽다며 인터뷰에 손사래 친 언니 팬들도 대부분 혼자였다. 삼삼오오 친구끼리 오는 경우도 있지만, 각자 직업 때문에 자주 뭉쳐 오는 경우는 힘들다고 한다.

관람석에서 남자 팬들에게 둘러싸일 때면 문득 외로움도 느끼는 '언니'들이다.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언니'로서 선수들이 코트에 몸을 던질 때나, 아깝게 득점 기회를 놓쳤을 때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은 물가에 내놓은 아기를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전업주부 이희연씨는 경기 후, 한 가지 바람을 전했다.

"여자배구는 여자들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경기다. 앞으로 젊은 선수들의 든든한 언니 역할을 해줄 여성 팬들을 경기장서 자주 봤으면 좋겠다."

이후 여자배구 경기일정은 한국배구연맹 홈페이지(http://www.kovo.c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 글을 읽는 여성분들께 가까운 배구장에 한 번 찾으시길 권한다. 남자 선수들과는 다른 여자 선수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흥국생명 현대건설 여자배구 언니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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