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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해바라기밭
▲ 타슈켄트 가는 길 거리의 해바라기밭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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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 가는 길의 양옆은 탁 트인 벌판이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그 경치를 감상했다. 소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목초지, 해바라기밭, 목화밭이 번갈아 나온다. 목화밭에서 일하는 현지인들도 많이 보이고 그 너머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나는 그 경치에 취해서 길을 따라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한 20장가량 찍었을 때, 맞은편 도로에 있던 경찰 한 명이 날 보더니 뛰어오면서 말한다.

"사진 찍지 마!"

나는 깜짝 놀라서 그 경찰을 바라보았다. 경찰은 아까부터 날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저 아래에서 걸어올라오며 계속 목화밭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목화밭 사진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문제가 되더라도 지우면 될 일인데. 나는 카메라를 보여주면서 목화밭 사진 지우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그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손짓으로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딘가에다 전화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냥 도로 바깥쪽에 털썩 주저앉아서 기다렸다. 경찰은 뭔가 한참 통화하더니 내 옆에 앉는다. 기다리라는 시늉을 다시 하더니 나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어디에서 왔냐, 무슨 여행을 하는 거냐 등.

사실 분위기 파악이 안 된다. 이 경찰은 분명히 자신의 상관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지시를 기다리는 것 같다. 지금의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걸까. 나는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목화밭 사진 지우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소용없다. 무조건 기다리란다.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하긴 내가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으니.

30분쯤 지나자 커다란 승용차 두 대가 내 앞에 와서 섰다. 그 안에서 몇 명의 남성이 내리더니 나를 둘러싼다. 얼룩무늬 제복을 입은 사람도 있고, 정장 차림의 현지인도 있다.

"여권! 여권!"

내 여권을 가져가서 비자와 거주등록 상태를 확인하고 그것도 부족한지 내 여권을 보면서 또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는, 가지고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이 휴대폰은 중앙아시아 전문여행사 SKY114의 조상식 사장님이 빌려준 것이다. 여행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한국어가 유창한 현지인 직원 나디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가 말한다.

"목화밭 사진은 원래 찍으면 안 됩니다. 그건 국가 소유라서요."

누쿠스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목화밭 사진을 꽤 여러 장 찍었는데. 그때는 거리의 경찰이 그 모습을 보고도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하라 근처에서도 목화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장 찍었다. 당시 그 일을 관리하는 현지인에게 사진 찍어도 괜찮냐고 묻자 그러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목화밭 사진을 찍다가 발생한 문제

부하라 도착 직전에 찍은 사진
▲ 수확한 목화를 트럭에 싣고 있다. 부하라 도착 직전에 찍은 사진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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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는 수도 타슈켄트 인근이라서 이런 통제를 강화하는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 국가 소유인 목화밭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다. 아무튼 이건 내 실수다.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하나. 내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 경찰 좀 바꿔주시겠어요?"

휴대폰을 넘겨주자 경찰은 통화를 한참 하고 나서 다시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나디르가 말한다.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냥 경치가 아름다워서 찍었다고 둘러대면 되구요. 비자랑 거주등록 상태만 조사하고 보내줄 겁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얼룩무늬 제복의 남성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가까워졌다. 멀리 지평선에 늘어선 키 큰 나무들, 아스팔트 도로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따갑게 얼굴을 때리는 10월 초의 가을햇살.

"식당으로 가요!"

정장 차림의 현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승용차에 타라고 권한다. 여권은 여전히 그들 수중에 있는 상태다. 나는 승용차에 올라탔고, 잠시 후에 내가 걸어오며 지나쳤던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있는 한 탁자에 앉아서 이들은 다시 어딘가와 통화를 한다. 두꺼운 수첩에 내 여권번호와 비자번호 등을 적는 걸로 봐서 내 여권과 비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모양이다. 초청장은 제대로 발급된 건지, 거주등록은 아무 문제가 없는지도 함께 점검해볼 것 같다.

목화밭 사진이 문제였더라도, 사진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나 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카메라 메모리 상태를 몇 시간 전으로 돌릴 수는 있는데. 이들은 아마 나의 신분을 의심하는 것 같다. 금지된 행동을 하며 걸어왔으니 내가 무슨 목적으로 들어왔는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입국했는지 등을 꼼꼼히 전화로 따져보는 것이다. 혹시 스파이일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로서는 답답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일 거다. 한국에서도 사진 촬영이 금지된 군사시설을 외국인이 함부로 찍고 돌아다닌다면, 그 외국인의 몰골이 아무리 누추하더라도 꼼꼼히 검문해볼 테니까.

경찰에게 여권과 비자를 조사받고

외곽의 풍경
▲ 타슈켄트 가는 길 외곽의 풍경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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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전화통화가 끝나자 정장차림의 남성은 내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 달라고 한다. 사진을 보여주며 한 장 한 장 넘기니까, 그는 목화밭 사진이 나올 때마다 그것들을 지우라고 말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가 지적하는 사진들을 모두 지우자 다시 승용차에 탔다.

타슈켄트 방향으로 한참을 달려가더니 경찰 검문소에서 모두 내렸다. 이들은 검문소의 경찰에게 내 여권을 보여주면서 또 뭔가를 조사한다. 그러고 나서야 기나긴 목화밭 촬영사건이 끝났다. 아까 내가 경찰을 처음 만났던 장소에서 타슈켄트 방향으로 너무 많이 차를 타고 왔다. 나는 걸어서 여행을 끝마쳐야 하는데.

나는 정장차림의 남성에게 말했다. 나는 도보로 타슈켄트까지 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좀전에 우리가 대화했던 그 식당까지 나를 승용차로 데려다 달라, 그곳부터 다시 걸어와야한다, 라는 것을 더듬거리는 러시아어로 말했다.

그는 흔쾌히 응한다. 그래서 다시 승용차로 그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여권을 돌려받고 그들은 승용차를 타고 멀어져 간다. 이 일 때문에 2시간 30분이 흘러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천천히 가자. 나는 식당의 탁자에 앉아서 녹차와 음식을 주문했다.

계속 떠오르는 생각,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문제는 내가 경솔했다는 점이다. 도보여행이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이 풀리고 들뜬 것이다. 목화밭이나 지평선은 여태까지 수도 없이 봐왔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만한 장면인데도 해이해진 정신에 나도 모르게 자꾸 멈춰 셔터를 누른 것이다.

나의 경솔함 때문에 어쩌면 나에게 초청장을 발급해준 여행사에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다. 내 실수로 여럿 다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조심하자. 신중, 침착하지 못하고 생각없이 행동하는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언젠가 나는 배낭여행 중에 대형사고 한 번 치게 될 것만 같다.

큰 식당에서 전통빵 만드는 모습을 구경

여기서 하룻밤을 잔다.
▲ 저녁에 도착한 식당 여기서 하룻밤을 잔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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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음식을 전부 먹고 일어섰다. 경찰 검문소를 지나 한참을 걸어서 저녁 때 커다란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을 관리하는 알리셰르라는 친구에게 여기서 잘 수 있냐고 물었더니 식당 안쪽의 건물을 가리킨다. 그 작은 건물 안에는 여러 개의 평상이 있다. 그 평상 위에서 자라고 한다.

나는 그 건물 안쪽에 짐을 놔두고 탁자에 앉았다. 꼬치구이와 생맥주를 주문해서 먹고 있으려니 알리셰르가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는다. 커다란 이 식당 한쪽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다. 사용하려면 이용료 2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을 내야 한다.

그 옆에는 우즈베키스탄 전통빵을 만드는 장소가 있다. 하루에도 족히 백 개는 넘게 팔리는 이 빵을 밤시간을 이용해서 만들고 저장해두는 것이다. 빵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들어가 보았더니 빵 굽는 친구가 친절하게 포즈를 잡아주기까지 한다. 사막에서도 이 빵 만드는 모습을 보았었다. 커다란 화덕에서 빵을 굽는 것은 동일하다.

이 식당의 화덕은 좀 더 신식이라서 화덕 바닥에 가스불이 들어온다. 빵 굽는 친구는 길다란 주걱처럼 생긴 도구를 이용해서 빵을 화덕에 넣고 빼내는 일을 한다. 내가 사진을 찍자 방금 구운 따끈한 빵을 주면서 먹으라고 말한다. 그 빵을 안주 삼아서 시원한 생맥주를 열심히 마셨다.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될 것만 같다.

빵을 화덕에 넣고 굽는다.
▲ 우즈베키스탄 전통빵 만들기 빵을 화덕에 넣고 굽는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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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구운 빵은 도구를 사용해서 빼낸다.
▲ 우즈베키스탄 전통빵 만들기 다 구운 빵은 도구를 사용해서 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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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목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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