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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에는 국경도 없다>겉표지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겉표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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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번역가 강주헌의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 뜬금없게도 그 질문이 떠올랐다. 좋은 글의 조건은 무엇인가? 어떤 주장을 하려고 한다면 근거가 충실해야 한다. 사례를 언급할 때도 그것이 풍부해야 한다. 그래야 힘이 느껴진다. 또한 말하는 목소리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소리의 울림은 가슴까지 파고들지 못한다.

갑자기 좋은 글 타령을 하게 된 건 오랜만에 그런 글을 봤기 때문이다.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가 바로 그런 글로 똘똘 뭉친 책이다. 번역가이면서 저작권 에이젠트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우리 출판계에 필요한 어떤 기획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을 자신이 일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그리고 해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하는데 그 목소리에 힘이 느껴진다.

저자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재밌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베스트셀러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에 의하면 조건은 저자가 노암 촘스키처럼 유명한 사람일 것, 책의 내용이 대중적이고 쉬워야 하며 책이 두껍지 않을 것, 처음부터 끝까지 알찬 내용을 갖출 것이다. 그런 책이 있을까? 저자는 누군가 그런 책을 찾아달라고 했을 때 단호하게 “그런 책은 없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책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뭘까? 베스트셀러의 조건이라는 그것을 갖추지 않고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책을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꾸준히 팔리는 책을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후자에 더 힘을 실으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최근 출판계는 ‘대박’을 노리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돌 스타가 책을 내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팬이 책의 독자로 자연스럽게 유입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할까? 새로운 독자를 만드는 기획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저자는 마이클 조던을 예로 든다. 마이클 조던이 화제가 될 때, 책이 나온다. 다양한 책들이 쏟아졌다. 반면에 우리는 비슷한 사례가 있을 때 어떻게 하는가? 스포츠스타라서 그런 걸까? 우리는 너무 소극적인 감이 없지 않다.

작은 영웅을 만드는 기획에 관한 이야기도 귀를 기울일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개구리 소년들의 시신이 발견되기 7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사라진 소년이 있었다. 저자는 그 소년을 주목하고 있다. 그런 일이 흔하기 일어나는 것이니 뭐 대수로운가 싶지만,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그 소년은 영웅이 됐기 때문이다.

출판계는 소년에 대한 조사를 한 끝에 소년을 신비로움을 추적하는 어느 여행자로 그렸다. 자연을 벗 삼았기에 소로와 비교되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영웅을 어떤 거대한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작은 영웅들은 언급하지 않는다. 대스타만 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발상의 전환을 한 경우도 있다. 예컨대 ‘시카고 리뷰 프레스’라는 출판사는 위인전을 위인의 업적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위인의 업적을 통해 세상 바라보는 눈을 알려주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 위인전에는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마르코 폴로를 예로 들자면 중동지방의 태피스트리를 직접 만드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지 않을까?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출판계의 어떤 정체된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확연히 눈에 띄는 점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은 좋은 글이면서 동시에 필요한 글로 다가온다. 귀를 기울여야 할, 변할 지점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물론 더 좋은 것을 말하려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이상적인 감이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외면하기에는 그 진정성이,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그것들이 아깝다. 출판 기획을 넘어서, 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게다.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강주헌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9)


태그:#출판 기획, #강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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