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인들과 인사 하는 서울시장. 이 가운데 '똥투척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으로 영화 속 서울시장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실추된다.

시장 상인들과 인사 하는 서울시장. 이 가운데 '똥투척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으로 영화 속 서울시장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실추된다. ⓒ 영화사 비단길


충격이다. 누가 보냈건 청와대가 경찰 측에 메일을 보낸 것만은 확실하다. 지금이 80년대 공안정국도 아니며, 70년대 유신정권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정황은 이렇다. 11일 김유정 의원은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보낸 '문건'이 있다고 했다. 한승수 총리는 "무슨 메일이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청와대의 입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에서 12일에는 "공식적으로 보낸 일이 없다"로 바뀌었고 13일에는 "개인적으로 보냈다"고 했다.

해명은 모호했고 공식적인 사과는 전무했다. 결국 국민들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생겼다. 하나, 지금 정권은 언론 플레이에 강하다. 둘, 이 정권은 사과(謝過)를 모른다.

<추격자>의 연쇄살인사건과 '똥투척 사건'

 영화 <추격자>

영화 <추격자> ⓒ 영화사 비단길

선견지명이란 말인가. 2008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작금의 사태를 예언하고 있다.

<추격자>와 작금의 '청와대 메일' 사건의 비슷한 점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경찰이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영화 속에서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인들이 언론 플레이를 통하여 이미지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연쇄살인마 영민과 전직 경찰 출신이면서 현재는 보도방을 운영하고 있는 중호의 추격전, 그리고 한 시민이 서울시장 얼굴에 분뇨를 투척한 사건이다.

두 사건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진행된다. 범죄자를 잡으려는 중호라는 한 개인의 고군분투가 처절하다면, 연쇄살인마를 검거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공권력의 전략은 치밀하다. 그러나 공권력의 얄팍한 술수는 유치하다.

영화 초반부. 어렵사리 영민을 잡는데 성공한 중호의 모습과 함께 서울시장을 경호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교차편집 된다. 경찰들은 이른 새벽부터 시장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서울시장의 주변을 지키고 있다.

이 장면은 현재 한국사회의 정치적 지형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상인들과 악수를 하고 있는 시장 뒤로 카메라가 뒤따르고 있으며, 그 너머로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즉 정치권과 사법권 그리고 언론의 밀고 당기기가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서울시장은 최대한 친절한 미소로 자신이 서민과 가깝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언론은 시장의 이미지를 '친서민형'으로 탈바꿈 시킬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이른바 '똥투척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으로 영화 속 서울시장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실추된다.

<추격자> 개봉당시에 관객들 사이에서 이 장면을 두고, 서울시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을 지칭하는 지를 놓고 왈가왈부했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으며, 누구를 겨냥했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 관객은 안다. 어색한 미소로 시장 상인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던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분뇨로 뒤범벅이 된 시장의 얼굴을 보며 관객들은 쾌재를 불렀을 거다.

"이거 빵꾸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영화에서 경찰은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등장하고, 죽어가는 피해자보다는 살아있는 정치인을 위해서 움직인다.

영화에서 경찰은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등장하고, 죽어가는 피해자보다는 살아있는 정치인을 위해서 움직인다. ⓒ 영화사 비단길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다음 이야기다. 경찰이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등장하고, 죽어가는 피해자보다는 살아있는 정치인을 위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의구현의 사명감보다는 정치권 그늘막 아래에서 눈치 보기에 바빠 보인다.

똥투척 사건으로 경찰에 비상이 걸렸을 때, 중호는 영민을 잡은 후 길우라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건성으로 전화를 받던 길우의 안색이 변하면서 중호에게 되묻는다. "9명? 지가 9명을 죽였다고?" 그 즉시 경찰은 영민이 잡혀있는 경찰서로 향한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하고 급기야 경찰서장까지 귀한 걸음을 하신다. 서장이 부하직원들에게 하는 말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지금 상황 알지? 이거 빵꾸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경찰에게 영민이라는 연쇄살인마는 대세를 바꾸어 놓을 히든카드다. 마치 청와대가 경기 서남부 부녀자 살인사건을 이용하여 용산 참사를 무마하려는 것과 같은 꼴이다. 여기서 경찰이 중시하는 것은 정치권과 국가권력의 위신과 이미지다.

영화 속에서 경찰이 연쇄살인마를 검거했다고 발표했을 경우, 첫 번째 효과는 서울시장의 실추된 이미지를 최소화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효과는 희대의 살인마를 검거했다는 명목으로 경찰의 위신을 높인다는 점이다.

이는 작금의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경찰이 청와대의 압력으로 연쇄살인마 사건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게 친절하게 흘렸다는 점. 심지어 살인자의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윤리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불을 지폈다는 점은 <추격자>가 '똥투척 사건'과 연쇄살인 사건을 통해서 보여준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또 하나, 영화와 현실이 닮은 점은 죽은 자에 대한 경찰의 태도이다. 경찰이나 정치권은 죽은 자에 대해서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 중호가 미진을 찾기 위해서 미친듯이 영민을 추격하는 동안, 경찰은 중호를 감금하려고 한다. 공권력이 발 빠른 수사를 하지 않고 애매한 곳에서 삽질을 하고 있는 사이,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영민은 미진을 죽이고 만다.

'사과'를 요구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뒤늦게 연쇄살인마를 잡았다고 공치사를 떨면서, 악의적으로 범죄의 참혹함을 떠들고 있다. 그 공치사는, 국민을 호도하여 용산참사로 숨진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뒤늦게 연쇄살인마를 잡았다고 공치사를 떨면서, 악의적으로 범죄의 참혹함을 떠들고 있다. 그 공치사는, 국민을 호도하여 용산참사로 숨진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 영화사 비단길


이처럼 <추격자>에서 경찰은 무기력하며, 죽어가는 자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방관에 가깝다. 애초 그들의 수사 의도가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약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는 <체인질링>이라는 영화 속에서도 볼 수 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수사를 진행해 달라고 목 놓아 외치지만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경찰은 생명을 지키고, 죽은 자에 대한 참다운 태도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 일뿐이다. 뒤늦게 연쇄살인마를 잡았다고 공치사를 떨면서, 악의적으로 범죄의 참혹함을 떠들고 있다. 그 공치사는, 국민을 호도하여 용산참사로 숨진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애석한 것은 희생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청와대 이메일 파문 프로스트 닉슨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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