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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평소 <오마이뉴스>를 애독하고 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큰 맘 먹고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이 되어 시민기자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라는 '오마이'의 슬로건은 접하면 접할수록 '새롭고 신선하다'는 상큼한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첫 느낌이 좋았고, 누구에게나 실시간으로 열려 있는 토론의 장, 소통의 장이 있어 '오마이'와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해서 시간이 조금 흘렀고, 또 그 와중에 졸필이지만 간간히 기사를 올려 차곡차곡 원고료가 쌓여가는 쏠쏠한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08년 7월 나는 드디어 '오마이' 덕택에 마누라와 아이들 앞에서 폼도 한번 잡고 생색도 낼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기회는 지난해 여름 적당한 시기에 나에게 기막히게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모여 살며 아이들과의 인연으로 만나 정겹게 지내는 몇몇 가족들과 매년 함께 떠나는 여름휴가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7월 하순의 여름 날씨는 왠지 모르게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휴가를 떠나기로 한 가족들과도 미리 계획된 장소가 과연 비가 많이 와도 괜찮을지 심사숙고를 거듭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들 중심으로는 비가 오더라도 폭우가 아니면 떠날 것이고 바람이 불더라도 태풍이 아니라면 기필코 떠난다고 서로 암묵적 합의를 했었고, 마침내 떠나기 전날 밤 최종적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비가 오더라도 강행하여 출발하기로 결론을 내렸었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경기도 양평의 산음휴양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숙박은 텐트를 치고 ‘데크’에서 야영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집집마다 가져올 준비물을 나누었고, 1박 2일 동안 써야할 비용에 대해서도 의논하여 한 집 당 내야할 휴가비용을 분담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날 밤, 드디어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생색의 달인'으로 변신하였습니다.

"여보, 얘들아! 이번 여름휴가비는 아빠가 모두 책임질 테니 그렇게들 알고 있으시오!"
"오호~! 당신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지? 그치, 그치, 그치?"
"이 사람이 누굴 거짓말쟁이로 아나? 기분 나쁘게... 하여튼 간에 이번 휴가비는 그동안 내가 아무도 몰래 '알바'해서 번 돈을 모아서 한 턱 쓰는 거니까 고마운 줄이나 알라구!"
"호호호, 그래요 우리 서방님이 어디 가서 나도 모르게 '알바'를 하셨을까? 참 미스터리한 일일세 그려."
"울 아빠가 어디 가서 ‘알바’를 하셨단 말이지?"

나는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수상쩍어하는 아내와 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비스듬히 도도하게 들어 한참 동안 야릇한 눈웃음을 실실 흘렸습니다.

4인 가족이 1박 2일로 여름휴가를 가려면 절약해서 간다고 해도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일 겁니다. 더군다나 꼬박꼬박 휴가비 듬뿍 지급해주는 좋은 회사에 다니지 않는 자영업자나 자유직업인(프리랜서)들은 더욱 그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모든 비용을 자기 돈으로 써야만 할 테니까요.

그런데 바로 '오마이'가 우리 가족의 여름 휴가비 걱정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복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동안 '오마이'에 모아 두었던 원고료 중 일부를 휴가비로 쓰게 된 것이었지요. '오마이 원고료'는 경제도 안 좋아서 단돈 일이십 만원이 아쉬운 때, 여름휴가에 대한 돈 걱정을 일거에 없애주는 매우 의미 있는 귀중한 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평의 산음 휴양림에 도착했지만 출발할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오래도록 가늘어지지 않았습니다. 휴양림 안에 있는 텐트 '데크'에는 감히 텐트를 펼칠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흙탕물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모여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는 더 이상 텐트를 치기도 불가능하고, 또 친다하더라도 위험하고 불편해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대안은 근처에 있는 민박집이나 비싸지 않은 팬션을 수소문해보는 거였습니다. 결국 산음휴양림 근처 계곡 옆에 있는 아담한 팬션 하나를 구할 수 있었고, 다행히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에 잠에서 깨어 나가보니 차고 맑은 물이 계곡을 가득 채워 흐르며 자욱한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참 상쾌하고 신선했습니다. 머리가 깨끗이 맑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햇빛은 더욱 투명하게 밝아 왔고, 하늘과 산은 또렷한 색으로 눈에 들어 왔습니다. 계곡을 휘감고 있던 하얀 구름은 서서히 걷혀갔고 어제와는 너무도 다른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산음휴양림 계곡에서 아빠들은 계곡물 속에 머리를 식히며 그야말로 '물쇼'를 했다.
▲ 꿀맛 같은 여름휴가 - 1 산음휴양림 계곡에서 아빠들은 계곡물 속에 머리를 식히며 그야말로 '물쇼'를 했다.
ⓒ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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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에 몸과 마음을 시원하고 상쾌하게 담글수 있었던 여름휴가
▲ 꿀맛 같은 여름휴가 - 2 계곡물에 몸과 마음을 시원하고 상쾌하게 담글수 있었던 여름휴가
ⓒ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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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과 아이들은 지체 없이 물가로 나갔습니다. 발목에서 무릎, 무릎에서 허리까지를 차갑고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에 흠뻑 담갔습니다. 풀잎을 엮어 배도 만들어 띄우고, 예쁘고 이상한 모양을 한 돌멩이를 주워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엄마들은 준비해간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깔깔거리며 요리했습니다.

우리는 마치 '무릉계곡' 같은 그곳에서 모두가 어울려 마음껏 산소를 마셨고, 이슬(?)을 마셨으며, 조 껍데기 막걸리를 배불리 실컷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과음한 술은 웬일인지 우리를 취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산음계곡 신선들이 마시는 '신선주'였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음 휴양림 계곡에서 마셨던 조 껍때기 술과 골뱅이 무침
▲ 꿀맛 같은 여름휴가 - 3 산음 휴양림 계곡에서 마셨던 조 껍때기 술과 골뱅이 무침
ⓒ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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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들은 시원한 얼음물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계곡물에 모두들 발을 담근 채 어우러져 아이들 키우는 얘기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자기 가족만의 소박한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게다가 서로의 생각이 간절하면 언젠가는 무엇인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나는 물 속에 담갔던 발이 차가워져 밖으로 나와 아내의 손을 잡고 주변을 잠시 걸었습니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던 중 아내가 내게 물었습니다.

"근데, 당신 정말 무슨 '알바'를 했다는 거야? 그거 진짜야? 거짓말이지?"
"아, 그거! 사실은 그동안 '오마이'에 기사를 써서 모아둔 원고료를 받은 건대 휴가비로 쓰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로 했던 거야! 왜, 당신은 신비주의 그런 거 몰라? 으흐흐흐"

나는 못이기는 척 결국 아내에게 고스란히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우연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휴가비의 비밀을 생색내며 실토한 나와, 나의 실토를 추궁한 아내는 그만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깔깔거리며 한참을 실컷 웃었습니다.

이후에도 우리는 따스한 햇볕이 부챗살처럼 펼쳐 비치는 이른바 '무릉계곡'에서 놀았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계곡 물가에 모여 물싸움 놀이를 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 무렵까지 오래도록 휴가를 즐겼습니다. 맛난 음식을 나눠먹으며 쉴 새 없는 이야기와 웃음꽃을 피웠던 그 여름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진짜 달콤했던, 꿀맛 같은 여름휴가였습니다.

'오마이'에서 지급해 준 원고료 휴가비 덕택에 가족들과도, 이웃들과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었던 참 좋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008년 7월 26~27(1박2일) 양평 산음휴양림 계곡에 휴가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쓴 글 입니다. <오마이뉴스>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 입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원고료, #산음휴양림 계곡,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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