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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에 걸친 지방을 위패에 붙이고 8분은 메를 한꺼번에 놓자하니 상이 좁아 작은 상을 하나 더 붙이고 상을 차렸다.
▲ 제사상 차리기 사대에 걸친 지방을 위패에 붙이고 8분은 메를 한꺼번에 놓자하니 상이 좁아 작은 상을 하나 더 붙이고 상을 차렸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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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기제사는 매년 조상님이 돌아가신 날에 조상님을 기리기 위해서 지내는 제사다. 이 풍습은 아마도 수백년 아니 수천년 전부터 내려온 관습일지도 모른다. 추측건대 우리집 역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억불 숭유 정책을 쓴 이후 여태까지 내려온 풍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 집은 어른들이 향교를 출입하시는 유교사상을 신봉하는 집안으로 종손이신 아버님이 살아계신 작년까지만 해도 조상님들 제사를 날을 받아 합동으로 지낸다(합제)는 것은 감히 누구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버님이 그만큼 완고하고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4대 조 이상의 오래전에 돌아가신 선조들에 대해서는 제실을 지어 날을 받아 한번에 시제로 모시니까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버님이 작년 초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조부모님부터 고조부모님까지 3대의 조부모님 8분에 대해서 돌아가신 날마다 8번 제사를 모셔왔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4형제 모두가 서울에 거주하는 우리집으로써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고향집에 80이 넘으신 어머님이 계시고, 주변에 숙부모님들이 계시기는 하지만  1년에 8번의 제사를 돌아가신 날에 찾아서 모신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제수품을 준비하는 일은 물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보통 고민거리가 아니다. 그래도 아버님이 계실 때에는 시장은 봐다 주셨으니 근처에 사시는 숙모님들 도움을 받아 차릴 수가 있었다. 더구나 요즘은 어머님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서울에 기거하는 날이 훨씬 많으니 제사 때마다 고향가서 제사 모신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이런 저런 사유로 서울에 사는 형제들이 여러 가지로 의견을 조율한 결과 아버님 생전에 말도 못 꺼내게 하셨던 합제를 돌아가신 지 1년이 채 안되어 거론하는 것 자체가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어떨 것인가?

일단은 고향에 계신 어른들께 건의를 드리기로 하고 "추석 전까지의 제사는 설날에. 설날 전까지의 제사는 추석에 모시도록 건의"를 하기로 하고 집안 어른들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경우가 아니긴 하지만. 이왕 합제를 모시는 마당에 정초에 한번 모시는 것으로 하자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는 죄송스럽지만 다행스럽다.

그리하여 2009년 1월 26일 저녁 8시에 시제에 포함되지 못하시는 조상님 8분에 대한 첫 번째 합동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수 백년 내려오던 전통 풍습이 변하는 순간인 셈이다. 숙부님들께서는 조상님들은 물론 작년에 작고하신 큰형님께 몹시 죄스러운 모양이시다.

8번 제사를 한번으로 간소화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 모시는 제사라 제례에 관한 책을 펼쳐놓고 상을 차리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 제례에 관한 책을 보아가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 모시는 제사라 제례에 관한 책을 펼쳐놓고 상을 차리고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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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제를 모시기 전에 조상님들께 사전에 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축과 지방이외에 조상님 전에 사전에 고한다는 고유사를 간단히 작성하시어 제사 직전에 조상님께 고하셨다.

(고유사).

물질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여린 자여손들이 시간에 쫓기어 불손하게도 휘일 제사에 참배하는 것이 어렵게 되어 기축년부터는 정월 초하루 이 시간에 여러 선조님들을 합제로 모시게 되옴을 삼가 고하오니 널리 이해하여 주시고 흠향 하옵기 바라옵니다. 이런 내용이다.

제례에 없는 합제를 모시려 하다보니 축문을 쓰는 형식도 의견이 분분하다. 조선시대 때 궁중에서 제사지내는 절차 때문에 파당이 갈라지고 이로 인하여 사화가 일어나고 했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집안 어른 몇 분 안되는 데도 이견이 있으니 말이다.

결국 합의를 이끌어낸 축문은 다음과 같이 작성되었다.

維歲次 (己丑) 正月 辛未朔 初一日 辛未 孝 (玄孫 東辰) 敢昭告于

顯高祖考 學生府君
顯高祖妣  孺人 平康 蔡氏
顯高祖妣  孺人 密陽 朴氏

顯曾祖考 學生府君
顯曾祖妣  孺人 長興 任氏
顯曾祖妣  孺人 利川 徐氏

顯祖考 學生府君
顯祖妣  孺人 玉川 趙氏

歲序遷易 合祭復臨 追遠感時 不勝永慕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饗

(유세차 기축정월 신미삭 초 일일 신미 효 현손 동진 감소고우
현고조고 학생부군. 현고조비 유인 평강채씨. 현고조비 밀양 박씨.
현증조고 학생부군. 현증조비 유인 장흥임씨. 현증조비 이천 서씨.
현조고 학생부군. 현조비 유인 옥천조씨.
세서천역 합제부림 추원감시 불승영모 근이 청작서수 공신전헌 상향)

(한자말 뜻풀이)

세서천역 : 세월이 흘러 때가 바뀌다.
휘일부림 :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다.
추원감시 : 돌아가신 때를 맞이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감동하다.
호천망극 : '하늘이 넓고 끝이 없다' 는 뜻으로 '조상님의 은혜가 크고 끝이 없다는 말.
청작서수 :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
공신전헌 : 공손히 제물(祭物)을 올리다. 제사를 지내다.
상향 : 흠향하시옵소서.

제례에 없는 합제... 축문을 쓰는 형식도 의견이 분분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님께 축을 읽는 모습
▲ 독축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님께 축을 읽는 모습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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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문 내용을 다시 간단히 요약해 보면,
기축년 정월 신미일에 현손동진은 고조부모님. 증조부모님, 조부모님께 아뢰옵니다.
계절이 바뀌어 조상님 합동제사를 맞이하여 조상님들을  생각하니
하늘 같이 넓고 끝이 없는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는 것은 여전합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제수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라는 뜻이라고 한다. 조상님을 우러르는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가?

이렇게 재취 할머님들을 포함한 8분 조상님들 제사를 제사상 한번 차리고 축 한 장으로 한번에 제사를 마쳤으니 얼마나 간소화를 한 것인가? 물론 조상님들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있겠는가?

제례에 관한 방법은 지방마다 집안마다 모두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속담에 불필요한 간섭을 하는 사람에게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까지 생겨난 모양이다. 그만큼 말이 많은 것이 제사지내는 격식인 모양이다. 수 백년 내려오던 제사를 격식에도 없는 합제로 모시니 얼마나 논란이 많겠는가?

지하에 계시는 아버님이 이 사실을 아실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현실에 맞게 개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어쩐지 허전한 마음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분씩 기제사를 모실 때는 많은 후손들이 참석을 하지 못했으나 합제를 모시니 1년에 한번이기는 하지만 많은 후손들이 참석하게 되어 문중회의를 할 수도 있고 한 이점이 있고, 제수를 마련하는 많은 경비와 인력을 절감할 수 있어 너무나 좋은 것 같다. 조상님들이 복을 얼마나 더 주실지 삭감을 하실지는 모르지만….

덧붙이는 글 | 제사 모시는 지역과 집안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태그:#제사상 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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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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