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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굴 쪽에 불 났다는데요."

상황실에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마이크에서 "산불 출동! 산불 출동! 장소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 대형 한 대 출동하세요!"라고 나온다. 지금은 정확히 2009년 1월 25일 시계는10시 40분를 가리키고 있고 나와 동료들은 대기조로 편성되어 비상대기중이다.

설 연휴에 고향에도 못가고 산불에 대비하여 대기하고 있던 운항실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엔진소리가 나더니 산림청의 위용을 과시하는 카무프 헬기 1대가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창공을 박차고 산불현장으로 출동하였다.

나는 2번기로 편성되어 1번기가 현장에서 산불상황을 판단하여 후속기를 요청하면 우리가 출동해야 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이크에서 다시 흘러나온다. "2번기 출동하세요! 2번기 출동!"

조종석에서 보이는 산불현장
▲ 산불현장 조종석에서 보이는 산불현장
ⓒ 김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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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설 연휴 기간 중에 평균 6건의 산불로 7.1ha의 피해를 내고 있으며, 매년 설 연휴 성묘객 및 입산자 실화에 의한 산불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 말부터 건조주의보가 지속됨에 따라 산림청에서는 설 연휴를 맞아 대대적인 산불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산림항공관리소에서도 가용헬기 전원 출동태세를 유지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영서와 남쪽에는 눈이 내리고 있고 귀성객들의 차량이 게걸음을 하고 있으며 우리 가족도 어제 고향을 가는데 눈길이 많아 12시간이나 걸렸다는데, 이곳에 산불이 났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기야 저 멀리 대관령에는 하얗게 눈 덮인 백두대간이 남북을 가르고 누워 있으니 우리나라가 넓다고 해야 하나, 기상이 변덕이라고 해야 하나.

기상을 파악해보니 풍속이 10낫트에 돌풍이 20낫트까지 불고 있다. 그렇다면 산악지역은 30낫트 정도는 예상해야 하고 담수지가 문제인데 산불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광동댐에서 담수를 하기로 판단하고 현장에 출동해보니 환선굴에서 조금 가까운 산악지역으로 예상보다 많은 연기가 피어올라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광동댐에도 담수할 수 있도록 주변이 얼지않아 다행이었다.
▲ 얼어붙은 광동댐 꽁꽁 얼어붙은 광동댐에도 담수할 수 있도록 주변이 얼지않아 다행이었다.
ⓒ 김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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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강풍은 돌풍과 함께 불길을 산 위쪽으로 확산시키고 있었으며 광동댐은 꽁꽁 얼어있었는데 다행히도 한쪽 부분이 얼지 않아 담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강풍으로 헬기자세잡기도 힘이 들고 조종석 앞쪽으로 덮이는 물기가 바로바로 얼어붙어서 시야를 가렸다.

잘 보이지 않는 시계 사이로 장애물과 타 헬기를 경계하면서 불길과 진화인력을 고려하여 물을 투하하기는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 가파른 능선을 따라 불길은 확산되는데 뿌리는 물은 강풍을 타고 흘러가버려 예상하는 대로 잘 맞지 않았다. 예상보다 불길이 잡히지 않아서 3번기를 출동시키고, 울진에 전진배치중인 헬기까지 출동하여 총 4대가 참여하여 모처럼 보기 힘든 어려운 산불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영하의 날씨속이라  담수중에 날라온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시야에 제약을 가져다준다
▲ 날려온 물에 시야는 좁아지고.... 영하의 날씨속이라 담수중에 날라온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시야에 제약을 가져다준다
ⓒ 김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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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사투의 시간이 지나고 연료가 부족하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2시간 반 넘게 공중에 떠있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도 지났고 헬기도 연료보급이 필요해서 유조차 있는 곳으로 기수를 돌렸다. 1번기는 벌써 연료보급을 마치고 다시 이륙한 지 오래다. 유조차는 이미 환선굴 주차장으로 전개시켜서 연료보급 걱정은 없었다.

연료를 보급하는사이 추운날씨에도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니 젖었던 속옷에 한기가 들어 벗었던 잠바를 다시 입었다. 누군가가 준비해 놓은 빵과 우유로 시장기를 달랜 뒤 긴장된 근육을 풀어본다.

연료보급을 마치고 다시 이륙해보니 오후 2시다. 다행히도 바람이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다. 진화가 눈에 띄게 효과를 보이고 지상에서도 많은 인원들이 지상진화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헬기가 뿌려대는 물에 의해 옷도 젖어있을 것이고 영하의 날씨와 바람에 의해 추위와 싸우랴 가파른 산 능선의 불길과 싸우랴 정신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한쪽에서는 산불진화를 하는데 능선너머 한쪽에선 눈이내리고.......
▲ 저멀리 눈이 몰려오고..... 한쪽에서는 산불진화를 하는데 능선너머 한쪽에선 눈이내리고.......
ⓒ 김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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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서쪽에서부터 뿌옇게 밀려오는 것이 있다. 자세히 보니 구름이 눈을 몰고 와서 뿌리기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산불이요, 맞은편에서는 눈이 오고 있다. 급기야는 광동댐도 눈송이가 하나 둘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불길은 잡히고 연기도 줄어들고 바람도 잠을 자준다.

그리고 오후 3시쯤 연기는 사라지고 시장기도 함께 사라졌다. 참으로 길고도 어려운 산불진화의 시간은 지나고 공중진화 상황이 종료되어 기수를 기지로 돌렸다. 기지에 무사히 착륙하고 헬기를 점검하면서 꽁꽁 언 물탱크와 거기에 매달린 고드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혹한 속에서 제 기능을 발휘해 준 물탱크가 얼마나 고마운지 다시 한번 고생한 헬기를 쓰다듬으며 오늘하루도 무사히 안전비행으로 마무리함에 감사를 드린다.

헬기에 부착되어있는 물탱크가 엄동설한에 얼어붙었으나 다행히도 제 기능을 발휘해주었다.
▲ 얼어있는 물탱크 헬기에 부착되어있는 물탱크가 엄동설한에 얼어붙었으나 다행히도 제 기능을 발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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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요즈음 날씨가 너무 건조하여 조금만 부주의해도 산불이 발생하며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게 됩니다. 모두들 불조심하시고 특히 설 연휴를 맞아 산행하시는분들 산불조심 부탁드립니다.



태그:#KIMCM301, #김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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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우리의 임무수행상 많은 일들을 접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지만 홍보하고싶은 부분도 있고 널리 알림으로써 공공의 이익과 정보의 공유등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전국을 무대로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긴박했던 상황이나 순간의 포착 등 귀중한 순간들을 접할 기회가 오게 되는데 그런 부분들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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