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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나의 명절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남들 다 오르는 귀성길 마다하고 설날 아침부터 라면을 먹으며 TV를 켜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외국인 노래자랑이라거나 연예인 장기자랑, 해묵은 영화(대표작 <나홀로 집에>, 제목도 참…). 또 그게 싫어 '뿌우뿌우' 기차타고 부산 할머니 댁에 내려가면 어김없이 듣는 이야기들.

"시집 안 갈기가?"
"무슨 글을 쓰는 기고? 책 언제 나오노?"
"용돈은 무슨, 땡전 한 푼 못 버는 손녀한테 뭔 돈을 받을 기고. 치아라, 마."

이래저래 집에 있으나 고향에 내려가나 우울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20대 중반까지는 그나마 고향길이 약간은 즐거웠다. 아직은 앳된(할머니한테는) 손녀 내려온다고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실 것이며 지루한 잔소리 끝에 그래도 아직은 젊으니 괜찮다고 등을 다독여 주실 것이며 또 부산에 남은 솔로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해후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의 명절, 더 이상 '설렘'은 없다

그러나 이런 약간의 설렘은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참혹하게 엎어지고 말았다. 2007년 스물아홉이 되던 설날.

"니가 이제 스물 일곱이가?"
"할매도 참, 손녀 나이도 모르나? 내 스물아홉."
"으잉? 뭐라? 니가 스물아홉이라꼬? 거짓말 하지 마라, 가스네야. 니가 어데 스물아홉이고? 스물일곱이지."
"내가 먼다꼬 거짓말을 한다대? 스물아홉 맞다니까능."
"하이고, 진짜가? 니가 스물아홉이라는 말에 내 심장이 철렁한대이."

그랬다. 그때부터였다. 두 손으로 들고 가기도 힘들던 설날 음식의 무게가 반으로 줄어든 것, 지루한 잔소리가 돌아오는 날까지 잔소리로 끝나던 것. 그리고 친구들도 하나하나 시댁으로 사라진 것. 그리고 더 슬픈 사실. 이틀이고 삼일이고 손녀가 내려오면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고 옆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나만 남겨두고 외출을 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데피묵그라."

빈집에 덩그러니 일어나 앉아 있을라치면 뼛속까지 사무치는 서러움에 쓰디쓴 콧물만 주룩주룩 흘렀다.

'대신동 시스터즈'가 '놈팽이 손녀'에게 미치는 영향

할머니가 던져준 자갈치시장 '몸빼 바지'를 둘둘 말아 입고 이불 안에서 뒹굴 대고 있으려니 할 일도 없고 재미도 없다. 이미 나의 물건이 모두 사라진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설날특집 TV 프로그램을 보는 게 전부.

또 이상하게도 부산 집에만 내려오면 알 수 없는 무기력증이 온 몸을 덮쳐 근처 게임방에 가는 것도 귀찮아지니 말이다. 그저 명절음식을 한 접시 옆에다 끌어다놓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 꼼지락 식충이 놀이를 할 뿐이다.

친척들이라도 많으면 왁자지껄 명절분위기가 난다지만 우리 집은 할머니도 일찍 혼자 되시고 아버지도 독남에 나 또한 하나뿐이라 사람 냄새가 없다. 그러니 굳이 명절이라고 들뜰 이유도 없고 틈틈이 시간 될 때나 내려가서 얼굴 뵙는 그런 분위기이다.

"이불 뒤집어쓰고 뭐하노?"

오후 내내 문화생활을 하고 돌아오신 할머니, 그 뒤로 함께 들어서시는 무시무시한 '대신동 시스터즈'. 이번 설날도 맘 편히 있긴 틀렸다 싶은 순간이었다.

그녀들은 할머니와 수십 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온갖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공유하며 우정을 돈돈히 하는 존재들. 그 우정으로 인해 나를 포함한 그녀들의 가족들은 심심찮게 마음고생을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들어오던 날. 대신동 시스터즈 중 노인대학도 다니신 나름 '인텔리' 통도사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향이 통도사라 하신다).

"컴퓨터가 얼라들 시력에 안 좋을긴데."

이 한마디에 옆에서 듣고 있던 노인정 할머니(노인정의 부녀회장 정도의 파워가 있다고)가 특기인 '펌프질'을 마구마구 하셨다.

"내랑 같이 산 타러 당기던 구포 개시장 최씨라고 말 안했드나? 그 최씨 얼라가 하도 콤푸탄지 뭔지 사달라캐서 사줬드만 딱 3년만에 눈이 픽 갔다 앙카요. 그기 그기 얼마나 무서븐지 아나."

그랬다. 통도사 할머니의 '밑밥'과 노인정 할머니의 '펌프질', 그리고 울 할머니의 '팔랑귀'. 컴퓨터는 이 괴력의 쓰리쿠션을 맞고 이틀만에 우리 집에서 철거되고 말았다.

이러니 스물아홉에 명절날 덩그러니 집을 찾은 나로썬 그들의 출몰 자체가 공포 아니겠는가.

"스물아홉이면 올해는 시집 가야 되지 않겠나?"

할머니 셋이 모이면 두려울 것이 없다.(KBS <올드미스다이어리>의 한 장면)
 할머니 셋이 모이면 두려울 것이 없다.(KBS <올드미스다이어리>의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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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 두리 니 손녀 온기가."(두리는 우리 할머니의 애칭으로 둘째 딸이라는 의미에서 어린 시절부터 불리었다고 한다. 염두리 여사님, 크….)

주섬주섬 안방에 널린 이불을 둘러매고 작은 방으로 도망가려는데 이때를 놓칠세라 통도사 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운다.

"오랜만에 왔으면 이 할미들이랑 대화를 나눠야지, 어딜 슬금슬금 도망가노."
"아, 그게 도망이 아니라 옷을 좀 갈아입으려고."
"괜찮다, 우리가 어데 하루 이틀 본 거도 아이고 니 똥기저귀도 다 봤는데 뭐."

할머님! 그건 아닙니다! 제가 6살 때 부산에 왔는데 어찌 제 그 기저귀를 보았다는 획기적인 거짓말을!

"앉그라, 할매들이 우리 봄이 왔다꼬 용돈 준단다 아이가."

받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들 주머니 쌈짓돈 몇 푼 받고 몰아칠 후폭풍을 누구보다 알고 있기에.

"그래, 올해에는 시집가고."
"뭐 어린 얼라보고 벌써부터 시집을 가라카노. 요즘엔 미스들이 더 잘 산다카드라. 그래도 뭐... 가는 거도 나쁘지 않다. 올해는 시집가고."
"주책이다, 갈 때 되면 가겠지. 그래도 스물아홉이면 올해는 시집 가야 되지 않겠나?"

하아, 둘러가나 기어가나 결론은 시집인 걸 뭐 그리 힘들게들 아닌 척 하시는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가는 게 좋다. 나이 들어 아이 낳으면 산모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고."

역시 '밑밥'에 강하신 통도사 할머니. 스리슬쩍 판을 깔아주신다.

"맞다, 맞다. 우리 앞집에 통닭집 손녀도 멋부리싸코 돌아당기다 서른 넘어서 결혼하고 얼라를 낳았는데 노산이라꼬 어찌나 고생했다 카던지…, 일주일 동안 얼라 낳느라꼬 힘을 어찌나 줬는지 병원 침대 다리가 뿌라지따 앙카나."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주일동안 애를! 침대다리가 왜! 펌프질도 적당히 하셔야지, 노인정 할머니의 세상천지에 없을 기이한 펌프질에 또 "옴마야~" "우짜노~"하며 동요되시는 할머니들. 이 양반들은 명색이 설날인데 집에는 안 계시고 왜 우리 집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시는지 원.

"무슨 글 쓰냐" 물으시기에 기사도 쓰고 가이드북도 쓰고 소설도 쓰고 이것저것 쓴다고 둘러치고 자리를 뜨려니 가이드는 무슨 가이드냐며 또 잡아 앉히신다. 대답도 하기 전에 가이드면 여행가이드가 아니냐고, 노인정 할머니의 사돈에 팔촌 아가씨부터 재작년 이사 간 전주댁 할머니의 손자까지 등장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그들 중 하나가 '삘리삔'에 가서 모기에 물려 시름시름 앓았다는 스펙터클한 스토리로 전개가 되더니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또 "하모 하모~" 하며 없는 걱정 만들어하시는 할머니들.

예전 같았으면 할머니가 앞에 나서 손녀를 변호하셨을 텐데 스물아홉의 충격 탓인지 되레 맞장구를 치시며 신이 나셨다. 에휴, 내가 이러려고 내려온 게 아닌데….

결론은 하나, 놀지 말고 일해서 시집부터 가라.

이번 명절도 무사하길! 일단 가드부터 올리고...

아쉬운들 어쩌리. 어찌됐던 명절날 어깨 힘주며 고향 내려가 기대와 관심과 용돈까지 받던 좋은 시절은 이미 가버린 걸. 그렇다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내려가지 않으려니 어느덧 고향집의 편안함을 깨달은 나이가 되어버렸고 말이다.

올해도 비슷한 레퍼토리의 펌프질로 몇 시간 벌 좀 서겠지만 어쩌랴, 어른들이 바라는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시집도 가는 내가 되기 전엔 이 또한 명절의식 중 하나인 걸 말이다.

그리고 난 부지런히도 나이를 먹어 이제 어느덧 서른하나가 되었으니 어르신들의 펌프질과 밑밥은 더욱더 강해지셨을 것이다. 가드 단단히 올리고 이번 명절도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태그:#명절, #잔소리, #삼십대, #노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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