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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도 있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 살아가면서 싸움을 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육아와 시집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원치 않게 부딪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부부싸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화해의 기술을 신혼부부, 결혼10년차 부부, 28년차 부부의 삶을 통해 들여다 봤습니다. [편집자말]
난 화를 내지 않는 편이다. 성격이 유순하거나 참을성이 강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화를 내지 않는다면 이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읊어대는 성인군자의 반열에 올랐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언제나 번민하는 일개 중생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디거나 둔한 성격 탓도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면과는 달리 상당히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면이 강해서 사소한 말 한 마디라도 귀에 꽂히면 두고두고 내내 언짢아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싸울 순간에 싸우지 아니하고 화내야 할 순간에 화내지 아니하는 것인가.

추한 꼴 보기 싫어 화를 참다보니...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중 한 장면. '화도 내본 사람이 잘 낸다'고, 난 화를 내면 좀 어색해 하는 부류 중 하나이다. 내 경우, 이 장면은 결코 연출하기 힘들 듯하다.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중 한 장면. '화도 내본 사람이 잘 낸다'고, 난 화를 내면 좀 어색해 하는 부류 중 하나이다. 내 경우, 이 장면은 결코 연출하기 힘들 듯하다.
ⓒ CJ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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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 내본 사람이 잘 낸다'고, 난 화를 내면 좀 어색해 하는 부류 중 하나이다. 오래 전, 친구와의 말다툼 중에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나를 보고 상대방 친구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 이후부터 난 결투의 순간, 조금이라도 쿨하게, 조금이라도 조용하게 화내는 방법을 궁리하게 시작했다.

무턱대고 소리부터 지르거나 내 감정에 못 이겨 울긋불긋 안면 꽃놀이를 해대는 건 그 얼마나 아름답지 못한 몰골인가. 그렇게 10여년 숱한 전투를 겪으면서 난 싸움의 기술을 연구해 나갔고 결과는? 되레 싸움을 피하는 인간형으로 진화해 버렸다.

분명 화를 내야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다 보니 결론이 나왔을 때쯤, 내 감정이 이미 평온을 되찾았기 때문. '그 얼마나 바람직한 방법인가!'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는 난 결코 성인군자가 아니며 또한 어느 정도의 파이터 기질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

그러니 싸워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나면 뒤늦게 찾아오는 속병. 한 마디로 성격이 바뀐 게 아니라 화를 억누르는 것만 배워버린 셈이다. 진상이다.

화 못내 억울하고, 그런 내가 짜증나고

이런 굴절된 감정표현 방식으로 살아가던 중 만나게 된 서방. 그는 연애초기, 내 속을 모르겠다고 했다. 분명 화는 났는데 말은 안 하고, 조마조마하고 있으면 곧 누그러져 웃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화가 났던 건지, 화가 풀린 건지, 애당초 화가 나지 않았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정답은 화가 나서 뭐라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다가도 추한 꼴을 보이긴 죽기보다 싫었기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고 참았던 것이다. 마치 66사이즈의 여성이 44사이즈의 코르셋에 억지로 몸을 끼워 맞춘 꼴이랄까. 아, 생각만 해도 갑갑해.

아무튼, 뭐 그래봐야 남자친구가 우리 집 안방에 개울을 판다는 것도 아니고 연애시절 싸울 거리라야 고만고만 했을 텐데 풀지 못한 소소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작은 말 하나에도 예민한 신경이 거슬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병의 시작이 될 줄이야.

데이트를 하거나 일을 할 때는 아무렇지 않다가 혼자 있는 시간,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멍-' 하니 앉아 있을 때. 그때마다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들. '아- 난 왜 그때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나'하는 것. 울화가 확 솟구치면서 비 맞은 땡중마냥 "짜증나, 짜증나!"를 연발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괜히 억울하고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라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상황. 이건 뭐 병을 키우는 거지.

"어쩜 말을 해도 그렇게 조리있게 잔인하냐"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중 한 장면.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은 이런 모습보다 더 처참하다.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중 한 장면. 참았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은 이런 모습보다 더 처참하다.
ⓒ CK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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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쌓이고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최고조로 치달았고 더 이상 담아둘 수 없을 만큼 포화 상태가 되었던 어느 날인가, 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간 못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 부었다.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때문에 싸웠는지도 잊을 정도면 큰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예상은 했지만 크게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그가 던진 한마디.

"참, 말을 해도 어쩜 그렇게 조리 있게 잔인하냐?"

뭐… 뭐야, 이 상황은. 왜 니가 더 속상한 표정을 짓는 거야? 난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도 많은 상처를 받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연인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오빠, 정말 너무해!" 정도가 아닌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장을 요리조리 툭툭 던져가며 그의 심장에 못을 하나하나 박아왔던 것.

차라리 감정적인 표현과 분노가 낫지, 되받아칠 수도 없게 교묘히 소금을 붓는 방법은 그 얼마나 치사한 방법인가. 추하게 싸우고 싶지 않아서 화를 자제한다고 핑계를 댔지만 진심어린 아량과 이해가 아닌 무조건적인 절제는 되레 나도 모르는 사이 비수가 되어 날아갈 과녁을 찾고 있었나 보다. 이 얼마나 비겁한 합리화인가.

그의 한 마디는 내게 꽤 큰 각성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한마디로 알량한 서푼어치 자존심의 결과는 나와 그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도 크나큰 상처가 된다는 점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여자 나이 서른하나가 되도록 그걸 몰랐단 말이야?).

부부는 군사기밀도 나눌 수 있는 '아군'

그는 부부란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군끼리 팀 킬(team kill)을 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짓은 없다고 말이다. 시댁이나 친정이라는 가족의 울타리도 아군이라면 아군이지만 군사기밀까지 나눌 수 있는 아군은 부부라는 것. 그랬다. 우린 같은 편이다. 결혼 이후 이렇게 그의 말대로 알게 모르게 생겨버린 동지애는 나의 성격개조에 한몫을 했다.

생각해보니 그래봐야 나보다 두 살 많은 남자. 내가 철이 없는 만큼 그도 어리다. 나 또한 대책 없이 철없는, 아직은 결혼 3개월차, 아내라기보다 친구 같은 존재이니까. 주말 밤이면 손잡고 게임방에 들어가 나란히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재미있는 웹툰이 있으면 서로 보라고 강요(!!)하며, 어느 한쪽이 틀어놓은 음악에 매료되어 어느덧 함께 공연 예매를 하는 우리 부부.

그리고 직장생활 하다가 나이 들면 조용한 지방으로 내려가 작은 카페를 열고 악기나 연주하며 살 거라는 그에게 "가게 앞엔 낚시터가 있으면 좋겠다. 난 낚시하면서 글이나 쓸래"라고 맞장구를 치는 나.

우린 20년 후의 이상향이 같았고 취미가 같았고 자유로운 사상이 같아서 만난 사람들이다. 둘 다 아파트가 꿈은 아니었으니까. 이만큼 죽이 잘 맞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하고 한 공간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 하나만으로 우린 정말 든든한 평생지기를 만난 복 많은 사람들이 아닌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생겼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 중 한 장면. 부부는 같은 편이다. 군사기밀까지 나눌 수 있는 아군은 부부뿐이다.
 영화 <사랑을 놓치다> 중 한 장면. 부부는 같은 편이다. 군사기밀까지 나눌 수 있는 아군은 부부뿐이다.
ⓒ 시네마 서비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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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화내야 할지를 몰라서, 괜히 쪼잔해 보일까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외면해버린 감정을 그때그때 표출하는 연습. 그리고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말인지를 생각하는 것. 워낙 오랫동안 인이 박힌 습관이다 보니 쉽사리 고쳐지진 않지만 적어도 하루를 넘기지 않고 이야기 하려 노력하고 세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불만 사항만 간단하게 접수하려고 한다.

부부간의 말다툼은 랩퍼들간의 '디스'처럼 화려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문장력에 도취되어 어떻게 하면 좀 더 아프게 독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고민하진 않는다. 기대지 말고 바라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연습하기. 그리고 그때그때 현명하게 대처하며 문제를 풀어가기.

평범하기에 어려운, 말로 하기엔 너무 쉬운, 그러나 30년을 산 부부도 해법을 찾지 못한다는 평생을 풀어가야 할 숙제 하나가 생겼다.


태그:#부부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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