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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이면서 해양과 대륙문화의 시작을 동시에 상징하는 땅끝
▲ 선착장에서 본 땅끝전망대 한반도의 남쪽 끄트머리이면서 해양과 대륙문화의 시작을 동시에 상징하는 땅끝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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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삼천포, 남해, 고흥, 완도, 해남은 무엇으로 합목될 수 있을까? 이름값으로? 아니다. 그들은 죄다 발치에 크고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다. 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다. 땅끝이다. 그중 거제도와 남해, 완도는 큰 섬으로 바다로 열려있고, 삼천포와 고흥, 해남은 땅 끝이면서 돌아서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고 있어 친근하다.

하지만 삼천포는 섬도 반도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때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회자되었을 정도로 벽해였을 때가 있었다. 물론 삼천포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속상해 할 일이겠지만, 삼천포행 기차가 다니던 그 시절엔 그곳이 종착역이었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뻗쳐나갈 때가 없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다가 삼천포로 빠져도 마찬가지다. 더 갈 곳이 없다. 다년간 길손이 다녀본 경험으로 이와 같은 사정은 고흥 해남 땅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옛말이다. 섬이며 반도며 땅 끝 어디라도 거대한 다리가 놓이고, 우람한 차량도 다 담아 싣고 가는 배가 연결돼 있다. 이제 더 이상 외로운 고도는 사라진 셈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해남 땅끝만큼은 아직도 이 땅의 끄트머리, 막다른 곳으로 남아 있을까?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길손은 보길도 가는 길목 땅끝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땅끝은 끝이면서도 새로운 시작이 되는 곳

순천만 갈대밭에 들렀던 길손은 이제 강진을 거쳐 해남 길에 들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얼핏 차창으로 보니 몽실몽실한 산들이 손짓하며 다가든다. 정겹다. 지겹도록 억센 경상도 산들만 친견하다가 야트막한 산들을 만나서 그런 것일까. 미리 작정한 것도 아닌데 수줍은 새색시 마음이 된다. 언덕배기 사이로 조붓한 들에는 푸성귀들이 의좋게 자라고 있다. 고만고만한 들에 얼마나 애틋한 사랑을 쏟아 부었는지 알 것 같았다.

땅끝 가는 길은 그것만이 아니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바다와 에둘러 가며 군데군데 개펄을 볼 수 있는 토말 가는 길은 그냥 아름답다. 간간히 염전도 보인다. 잠시 대흥사에 들렀지만, 길손의 마음은 오직 땅끝으로 향하고 있다. 오늘 귀착지가 바로 땅끝 마을이기 때문이다.

두륜산을 타고 도는 버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마산을 뒤로 한 채 갈두산에 오른다. 813번 지방도다. 이 길을 곧장 따라가면 땅끝 마을 주차장에 닿는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반갑다.

“와! 땅끝이다!”
  “여기가 땅끝 마을이란 말이냐?”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땅 끝 마을은 평화로웠다. 예전에 이 마을은 칡머리(갈두마을)로 불리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땅끝여관과 땅끝교회, 땅끝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 갈두산 정상에서 본 땅끝마을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땅 끝 마을은 평화로웠다. 예전에 이 마을은 칡머리(갈두마을)로 불리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땅끝여관과 땅끝교회, 땅끝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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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길손은 이미 초행길이 아닌데도 덩달아 반가운 표정으로 화답했다. 안내자는 땅끝 주차장에 가면 전망대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이 있다며 그리로 가자고 이끈다. 하지만 일행은 마다하고 내친김에 사자봉 전망대 입구까지 대형버스로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십여 분을 팍팍한 걸음으로 오르니 사자봉 마루에 선 땅끝 전망대다.

바다로 잦아드는 땅의 뿌리와 저 멀리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섬들이 내다보여 여기가 ‘땅끝’임을 실감케 한다.
▲ 땅끝 전망대 바다로 잦아드는 땅의 뿌리와 저 멀리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섬들이 내다보여 여기가 ‘땅끝’임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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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 땅끝유래비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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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그곳이 정녕 땅끝이란 게 실감나지 않았다. 그러나 바다로 잦아드는 땅의 뿌리와 저 멀리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섬들이 내다보여 여기가 ‘땅끝’임을 실감케 한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다소곳하게 모여 있다. 멀리 희끄무레하게 내일 행선지 노화도가 보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 기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에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 하였다.

때문에 땅끝은 오래 전 대륙으로부터 뻗어나가서는 우리 민족이 이곳에서 발을 멈추고 한겨레를 이루니, 역사 이래 이곳은 동아시아 3국 문화의 이동로이자 해양문화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땅끝은 우리나라 국토 육지의 최남단으로 많은 상징성을 갖고 있다.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날씨가 좋으면 이곳에서 멀리 제주도 한라산이 어슴푸레 보일 때도 있다고 하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거기서 일출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란 삼대가 적선을 쌓아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날씨가 좋고, 더구나 재수가 좋으면 그냥 제주도가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맨눈으로 아무리 꼬나보아도 제주도는 보이지 않았다.

재수가 좋으면 그냥 제주도가 보여

전망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그곳에 오르면 땅끝 풍광들이 좀더 확연해질까 싶은 조급증 때문이다. 하지만 마루에서 본 주변 조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망대 아래, 바다로 살짝 내민 사자봉 언저리에는 이곳이 땅끝임을 알리는 토말비가 서 있다. 그렇지만 가파른 비탈길을 쉼 없이 오르는 모노레일이 망루를 헤집고 다녀 그 모습이 마치 땅끝을 능멸하는 것 같았다.

전망대를 내려와 땅끝 마을에 이르니 또 다른 토말비가 서 있다.

“태초에 땅이 생성되었고 인류가 발생하였으며 한겨레가 국토를 그어 국가를 세웠으니 맨 위가 백두산이며 맨 아래가 사자봉이니라.”

전망대를 내려와 땅끝 마을에 이르니 또 다른 토말비가 서 있다
▲ 토말비 전망대를 내려와 땅끝 마을에 이르니 또 다른 토말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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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광장에 조성되어 있는 한반도통일기원비다.
▲ 한반도통일기원비 땅끝마을 광장에 조성되어 있는 한반도통일기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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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땅끝 마을은 평화로웠다. 예전에 이 마을은 칡머리(갈두마을)로 불리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땅끝여관과 땅끝교회, 땅끝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것은 땅끝은 막혀 있지 않고 다시 바다로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곳 선착장에서 완도, 노화도로 가는 뱃길이 시작된다. 그래서 땅끝은 끝이면서 돌아서는 사람에게는 시작이 되는 곳이다.
▲ 선착장 카페리 이곳 선착장에서 완도, 노화도로 가는 뱃길이 시작된다. 그래서 땅끝은 끝이면서 돌아서는 사람에게는 시작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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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은 막혀 있지 않고 다시 바다로 열려 있다

이곳 선착장에서 완도, 노화도로 가는 뱃길이 시작된다. 그래서 땅끝은 끝이면서 돌아서는 사람에게는 시작이 되는 곳이다. 빠듯한 일정에 여행은 쉽지 않다. 시간과 돈은 물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땅끝의 어둠사리는 쉽게 졌다. 아무리 잠은 살아서 경험하는 죽음이라고 해도 일찍 잤다. 불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것의 시작이다. 자면서 김지하 시인의 ‘애린’을 읊조렸다. 내일 답사코스는 보길도다.

땅끝에 서서
더는 갈 수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바람이 되거나 구름이 되거나 귀신이거나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 없는 땅끝에
혼자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나.

애린/ 김지하, 전문


태그:#땅끝마을, #토말, #토말비,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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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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