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체육계의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체육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운동만 하던 관성이 쉽게 바뀌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조용한 변화'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3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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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철인은 아니거든요."

주호(15)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공릉중학교 축구부 주장인 주호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기로 소문난 선수다. 주호는 지난 5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렸던 도요타컵에 유소년 대표로 뽑히는 등 축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학업 성적도 평균 90점 이상으로 반에서 1~2등을 다툰다.

주호는 그래서 '운동을 하면 공부를 포기하는' 한국의 학교 체육 현실에서 '돌연변이'다. 물론 열악한 국내 학원 체육을 개선시키는 좋은 쪽으로 말이다. 때문에 주호는 운동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한번쯤은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운동 선수의 전형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있는 주호에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축구도 잘해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중학교 때까지는 좋은 결과를 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어깨를 짓누를 이중 부담이 될 수도 있어서다.

"고등학교 3년에 축구 선수로서 미래가 걸려있는 만큼 성공하려면 운동에 '올인'(다걸기)해야 할 것 같아요. 태극마크를 달고 유럽의 빅리그에도 가고 싶거든요. 그만큼 훈련량이 중학교에 비해 크게 늘어날 텐데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주위의 바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운동하면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과 경쟁하는 게 큰 부담인 것은 사실이에요."

주호는 모든 운동 선수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전 과목을 모두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운동 선수들에게 필요한 과목과 공부량이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운동 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찬성하는 편입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공부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운동 선수들의 현실을 인정하고 국·영·수라든지, 이런 식으로 운동 선수는 이것만 하면 된다는 기본 공부량을 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운동 선수도 공부하자'... 최저학력제 도입 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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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의 말처럼 이제 운동 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당위가 돼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학교 체육을 정상화하고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운다는 방침에 따라 최저학력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시작된 상태다. 

정부와 여당은 일정 수준의 학업 성적을 낸 경우에 한해 선수 등록과 경기 출전을 허용하는 최저학력제 도입을 준비 중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문화체육관광포럼(대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최저학력제를 골자로 한 '학교체육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최저학력제를 통해 학생 선수들이 대회 출전과 연습 등으로 수업에 빠지고 이에 따라 공부를 포기하거나 공부를 위해 운동을 포기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현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최저학력제의 기준과 적용 범위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학교체육 현장에서는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최저학력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주호가 걱정하는 것처럼 선수들이 이중 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내 학교 체육의 현실 속에서 최저학력제가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인 김아무개(43)씨는 "팀에서 에이스인 선수가 학업 성적 때문에 경기를 뛰지 못하게 되고 진로에 문제가 생긴다면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며 "최저학력제가 시행되면 지금 고등학교 2~3학년 선수들은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테니스부 코치 최아무개씨도 "소질이 없고 적성에 맞지 않는데 아이들에게 운동을 하려면 무조건 학업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라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최저학력제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부도 하고 경기력 저하도 막을 묘책은?

현장 지도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대부분의 학생 선수들에게 갑자기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운동 실력마저 떨어지는 부작용이다. 때문에 최저학력제와 같은 명시적인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먼저 선수들을 위한 학습 지원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게 학부모들과 일선 지도자들의 생각이다.

아이가 야구를 하는 학부모 이아무개(42)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공부를 보충해주기 위해 과외를 따로 시키는데 학부모 처지에서는 운동부 회비에 과외비까지 이중 부담"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운동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는 보충 수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현철 잠신중 야구부 감독은 "야구를 비롯해서 모든 종목에서 선수들이 현재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하면서 공부도 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에 맞는 특별 학습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며 "수업이 가능한 강의실이 있고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기숙사가 만들어진다면 합숙을 하면서 이런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실외 스포츠의 경우 정규 수업에 모두 참여하면서도 훈련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가 진 후에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조명 시설이 있는 경기장과 같은 인프라 개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황 감독은 "야구만 해도 정규 수업이 모두 끝나고 연습을 하려면 해가 진 후에도 운동할 수 있는 경기장이 필수"라며 "그런 배려 없이 무턱대고 최저학력제를 시행한다면 경기력 저하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저학력제를 시행할 모든 여건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남는다. 바로 모든 교육 개혁을 삼켜버리는 '블랙홀', 대학 입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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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혁의 블랙홀, 대학입시 제도 먼저 고쳐야

단체 종목의 경우 팀 성적에 따라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주는 기형적인 '4강·8강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최저학력제를 비롯한 모든 학원 체육 개혁 조치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 종목들도 운동 성적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 성적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으로써 운동에 집중하고 싶은 선수들은 대학이 아니라 프로나 실업팀 등으로 직행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락고등학교 축구부 최상목 감독은 "4강제 혹은 8강제를 폐지하면 또 다른 선수스카우트 비리 등이 생길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팀 성적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며 "이 문제가 해결돼야 대회 성적에 연연하면서 운동만 시키는 학교 체육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운동 선수가 대학에 가는 목적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초중고와 마찬가지로 대학도 운동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다양한 활동들, 특히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주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운동만 해도 대학에 가고 대학원까지 진학하고 졸업한다는 이야기가 없어져야 한다"며 "최적학력제와 같은 규정과 제도만으로는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학은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며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나의 역량을 넓히는 곳이라는 상식을 익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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