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피닉스 아이다호

▲ 리버 피닉스 아이다호 ⓒ A Film by Gus Van Sant


영화배우 리버 피닉스. 23년의 짧은 삶을 살았으며, 14편의 영화를 남기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1980년대 이후 수많은 쟁쟁한 배우들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사라졌지만 그 만큼 강렬한 인상과 기억을 남기고 떠난 배우는 없었다.

만약 그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브래드 피트나 키아누 리부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헛된 망상도 지금의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나를 열광하게 만들고 영화에 미치도록 만든 그의 자취는 이제 영화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는 90년대의 제임스 딘으로 명명될 만큼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를 스크린에 쏟아 부었다. 그가 남기고 간 모든 작품들이 영화 마니아나 그를 추종하는 팬들에게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지금도 그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그에게 동화되어가는 나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아직도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떠난 지도 1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에게 15년이란 세월은 영원히 멈춰진 시간이지만, 여전히 세상에 남아있는 나에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 긴 시간동안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 그는 영화배우로서 또한 동경의 대상으로서 너무나 큰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영화배우 리버 피닉스는 잊혀져버린 아련한 추억의 인물이 아니라 아직도 젊은 시절 불덩이 같이 용솟음친  상징으로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그는 첫 작품 <익스플로러>(Explorers, 1985)부터 마지막 작품이 된 <콜리드러브>(The Thing Called Love, 1993)까지 14편이란 많지 않은 영화를 남겼다. 하지만 영화 완성도면이나 관객 호응도면에서 모두 속이 꽉 찬 작품들이 많았다. 다만 지미 리어든 (A Night in the Life of Jimmy Reardon) 정도만이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작품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모든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그만의 채취를 남겼다. 그리고 그 채취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만큼 독특한 향기로 남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나의 기억 한켠에 머물고 있는 그는 어떤 의미일가? 그가 사망한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혼란스럽고 어떤 대답을 해야 될지 망설인다. 그 이유는 그가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그가 출연했던 영화 속에서 예전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가 죽은 지 15년이 훌쩍 지났지만 영화 속에 그는 아직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는 영원한 젊음으로 여전히 스크린 속에 남아있다.

영원한 젊음과 함께 세상을 떠나버린 리버 피닉스의 사인은 약물과다복용이었다. 영화를 통해 처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그는 영화배우 보다 음악 뮤지션이 되기를 갈망했다. 밴드를 만들고 뮤지션으로 활동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뮤지션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어릴 적 삶은 피폐하고 가난했다. 히피족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언제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다. 그는 너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에게 있어 어린 시절은 생존과의 경쟁이었다. 그는 7살 때부터 자신의 동생과 자신의 삶을 위해 길거리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그에게 가정이란 행복과 화목의 상징이 아니었다.

아이다호의 한장면 키아누 리부스와 리버 피닉스

▲ 아이다호의 한장면 키아누 리부스와 리버 피닉스 ⓒ A Film by Gus Van Sant


그의 어린시절불행이 영화에서 슬픔에 찬 눈빛을 만들어내었는지 모른다. 나는 리버 피닉스의 눈빛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눈빛 속에서 알지 못할 열기와 에너지를 느끼며 동시에 슬픔과 감정의 절제를 느낀다. 그리고 세상에 한 번도 외치지 못한 그의 가슴속 이야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도 그가 <스탠바이미>를 통해 아역스타가 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성공을 통해 들어온 풍족한 돈이 결국 리버 피닉스를 더욱더 절망하게 만들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난 그였지만 그의 가족들은 그의 성공과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리버의 가족들은 더욱더 돈에 집착했고 그가 하고 싶어 하던 뮤지션의 길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이런 가족의 변화는 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변화였다. 결국 그는 삶의 도피처로 코카인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꿈과 행복을 환각상태에서라도 맛보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코카인에 손을 대는 순간 그의 몰락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배우로서 성공은 그가 몰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키아누 리부스와 함께한 영화 <아이다호>에서 그는 마이크 역을 맡아 아역스타가 아닌 할리우드를 이끌어갈 차세대 배우로 인식되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열렬한 그의 팬이기도 했다.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을 완성하자마자 다른 배우가 아닌 그에게 먼저 보내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에게 마이크 역은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다호의 성공도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그는 더욱더 현실에서 도망치기를 갈구했는지 모르지만 코카인의 늪에 아주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결국 코카인은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1993년 그의 사망소식은 전 세계로 타전 된다. 할리우드를 대표할 배우로 주목받던 그의 행적은 1993년을 끝으로 멈추게 된 것이다.

그가 사망한 지 15년이 훌쩍 흘렀다. 아직도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아무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문득 그가 생각날 때마다, 그의 눈빛이 떠오를 때마다, 그리고 슬픔에 찬 그의 모습이 기억 속에 맴돌 때마다, 그는 나의 가슴속에 그가 남기고 간 모든 행복과 불행의 근원이 된 14편의 영화와 함께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출연작품

익스플로러 (Explorers, 1985)
해리슨 포드의 대탐험 (The Mosquito Coast, 1986)
스탠 바이 미 (Stand By Me, 1986)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1988)
KGB의 아들 (Little Nikita, 1988)
지미 리어든 (A Night in the Life of Jimmy Reardon, 1988)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바람둥이 길들이기 (I Love You to Death, 1990)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Dogfight, 1991)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1991)
스니커즈 (sneakers, 1992)
죽은 자를 위한 침묵 (Silent Tongue, 1993)
카우걸 블루스 (Even Cowgirls Get the Blues, 1993)
리버피닉스의 콜리드러브 (The Thing Called Love, 1993)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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