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체육계의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체육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운동만 하던 관성이 쉽게 바뀌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조용한 변화'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3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편집자말]
 가락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이 훈련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락고등학교는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락고등학교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다.

가락고등학교 축구부 선수들이 훈련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락고등학교는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락고등학교는 올해 전국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다. ⓒ 이승훈


내년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축구선수 세용이는 요즘 고민이 많다. 공부와 축구 모두 잘하고 싶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도 공부를 시키는 공릉중학교를 졸업한 세용이의 중학 시절 성적은 전 과목 평균 80점대. 하지만 고등학교에 와서는 40점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공릉중학교처럼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우는 가락고등학교에 진학했기에 정규수업만은 빠지지 않고 듣고 있다. 감독 선생님도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보름 전부터 오전 수업을 마치고 연습을 해야 한다. 또 대학팀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벌이는 대학팀과 연습경기로 가끔 수업을 빠질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3년 후 졸업과 함께 프로냐 대학이냐, 아니면 직업 축구 선수의 길을 버리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고등학교 선수들은 공부보다는 운동에 더 전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세용이는 "프로선수가 되는 게 꿈인데 공부에 시간을 쏟다 보면 운동만 신경 쓰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축구를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락고등학교 축구부 최상목 감독은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정규수업만이라도 다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며 "지도자로서도 운동에 아이들의 진로가 달려 있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경희대 야구부 졸업반인 이수범씨에게도 '운동+공부'는 중학교까지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잠신중학교를 다닐 때는 글러브와 책을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2002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씨는 공부와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수업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건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합숙을 하기 때문에 신문조차 읽을 수 없는 분위기인데다 진로가 걸린 운동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큰 게 사실"이라며 "중학교와 달리 수업을 제대로 듣는다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에 진학한 후 수업 참여를 강조하는 경희대 야구부의 분위기 속에서 다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일과표에서 사라진 '수업시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야구부가 연습 경기를 펼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야구부가 연습 경기를 펼치고 있다. ⓒ 이승훈


김경수 감독이 이끄는 공릉중학교 축구부와 황현철 감독이 이끄는 잠신중학교 야구부는 운동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한국적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공릉중은 선수들이 공부를 하면서 방과 후에만 훈련을 하고도 창단 2년 만인 재작년 서울시 대회에서 우승했고 올해는 전국대회에서도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시험기간에는 아예 훈련도 없고 2주에 한 번씩 영어와 한자 시험을 본다. 잠신중은 선수들이 정규수업에 보충수업까지 모두 참여하면서 훈련을 하고서도 매년 전국대회와 서울대회에서 2~3번씩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야구부 라커룸 입구에 있는 졸업생 명단에는 유원상(한화), 이용규·이호신(기아), 민병헌(두산) 등 배출해낸 프로선수들의 이름도 여럿이다.

하지만 '공부+운동' 신화는 거기까지였다. 이 학교 졸업생들이라도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엔 상황이 180도 변했다. 중학교 때에는 하루 일과표에 빠지지 않았던 '수업시간'은 고등학교 일과표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나마 공릉중학교와 연계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가락고등학교 등 몇몇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권을 보장받는 편이지만 대부분 학교들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중학교나 대학교에서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지만 고등학교는 유독 이런 변화의 바람에서 비켜나있다. 

초등학교 6학년 축구선수 아들을 둔 이연화씨의 걱정도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아들이 축구를 너무 좋아하고 중학교 한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이씨는 현재 아이의 운동을 중단할까 고민 중이다. 중학교 때는 공릉중과 같이 공부도 시키는 학교에 진학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도 그게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이가 잘 성장해서 프로에 간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젊은 나이에 방출되는 일도 허다하지 않느냐"며 "축구를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서는 공부도 해야 하는데 중학교는 그렇다 쳐도 고등학교는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운동선수 공부시키기는 중학교 때만, 혹은 몇몇 학교만 해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 같다"며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운동만 하는 체육계의 관행이 바뀌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느 지도자를 만나느냐 혹은 어떤 학교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체육 특기생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교육환경은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공부하는 운동선수 키우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부 지도자들에게만 이 문제를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공릉중과 잠신중 등의 성공 사례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운동+공부' 성공 신화, 이젠 평범한 일상으로

 가락고등학교는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훈련을 하고 있다.

가락고등학교는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정규수업이 끝난 후 훈련을 하고 있다. ⓒ 이승훈


현재 정치권과 체육계에서는 필요한 구체적인 제도로 최저학력제와 정규 수업시간 중 연습 및 시합 금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각 체육협회 차원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된 곳도 있다. 축구계는 내년부터 정규수업시간 중 연습 및 경기를 전면 금지시켰다. 또 중고농구연맹은 모든 선수들에게 '한자급수자격 검정시험 6급'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6급'을 따야만 경기를 뛸 수 있도록 했다.

공릉중 축구부 김경수 감독은 "물론 공부와 운동 두 가지를 모두 하는 것은 어렵지만 청소년 시기에 종일 운동만 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는 한편 학생들이 실제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최저학력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수업시간은 물론 훈련이 끝난 후에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지도자의 임무"라고 덧붙였다.

공릉중은 자체적으로 '최저학력제'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명확한 성적 기준은 마련해 놓지 않았지만 김 감독은 축구부 학생들에게 성적이 많이 떨어질 경우 운동장 출입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이 때문에 공릉중 선수들은 축구를 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했고 후배들도 이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공부 대열에 합류했다.

이용수 세종대 체육학과 교수는 "최저학력제를 운동선수에게 적용하는 것은 일반학생들에 비해 역차별이 될 수 있다"면서도 "원칙적으로 최저학력제 도입은 그동안 아예 공부를 하지 않던 운동 선수들이 수업에 들어가고 공부를 하도록 유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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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최저학력제를 말한다 ② : '최저학력제가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들'이 이어집니다.
최저학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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