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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은 불황이다.
 동네서점은 불황이다.
ⓒ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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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이 고향인 고희성씨는 올해 나이 55세인데,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제대하고 잠깐 직장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성격이나 적성에 맞는 서점을 하기로 했다.

서점을 하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도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지식을 공급하고 돈을 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남에 서점 4개 낼 정도로 성황일 때도...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학생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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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성씨는 1980년 서울 상도동에서 서점을 시작했고, 81년 서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앞으로 옮겨 '상지서적'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는 서점을 하면서 참 행복했다. 애초 생각대로 서점을 통해서 바라던 바를 얻을 수 있었다. 1990년대 초에는 경기가 좋아 강남구에 서점을 4개나 운영할 정도였다. 서점을 오래 하다보니 단골 손님도 많아졌는데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3대째 단골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1학년 때부터 서점에 자주 찾아와 참고서 등이 아닌 수준 높은 책을 사가는 경기고등학교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고3이 되어서도 공부와 관련이 없는 책들을 사가곤 했단다. 한 번은 "학생, 고3인데 입시에 관한 책은 안 사고 인문서적만 읽으면 대학 가는 데 지장이 있는 것 아니야?"하고 물었더니 "학교 공부도 공부지만 이런 책도 읽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 후 나중에 그 학생이 찾아와 "서울대에 들어갔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왔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왔다. 그 학생은 영국 유학을 마치고 이번에는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다시 인사를 하러 왔다. 그 때 그 학생은 지금 숭실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이런 사람을 볼 때면 자신이 서점을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는 고씨.    

버티고 버텼지만, 올해로 30년 영업 마감

상지서점 입구
 상지서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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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늙어 힘을 쓰지 못할 때까지 서점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행복을 안겨준 서점을 이제는 더이상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극심한 불황 때문이다. IMF 때부터 해마다 매출이 조금씩 줄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줄었다. 지금은 1990년대 초반의 2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도서정가제가 무너져 동네서점의 존립을 위협했다. 인터넷 서점은 정가제가 무너진 이후 온갖 편법을 써서 책값을 낮춰 상도덕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고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버틸 만큼 버텼다'는 고씨가 이제 가게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가게 앞에는 이런 문구가 내걸렸다.   

'1981년 개업 이래 지금까지 28년 동안 사랑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서점을 정리합니다. …고객 여러분께 죄송스러움과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행복하세요.'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아쉽고도 쓸쓸한 이 문구는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버릴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추억이 사라지는 게 더 아쉽다"
[인터뷰①] 상지서적을 이용하는 고등학생들

상지서점에서 여유롭게 책을 보는 이용호군과 김새민양
 상지서점에서 여유롭게 책을 보는 이용호군과 김새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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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서적에서 책을 고르는 대원외국어고 2학년생인 이용호군과 김세민양을 만났다. 이 학생들은 상지서적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자가 이 서점은 이달 말까지만 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학생이니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물론 인터넷 서점은 편리하고 빠르기도 합니다. 필요한 것 검색해서 주문하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쉽고 편리한 것도 좋지만 이런 동네서점 같은 곳에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책을 고르는 재미가 참 좋아요. 책들을 구경하면서 고르다 보면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접하게 되지요. 그러면 그게 계기가 되어 새로운 지식을 접하게 되지요. 인터넷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지요.

동네서점은 단순히 책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와서 마음의 소양을 찾고 삶의 활력소를 얻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지요. 그래서 서점은 안식을 찾는 공간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데 이런 공간들이 없어지면 어디에서 우리 마음의 안식을 찾으라는 것인가요."

인터넷서점 가격이 싸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용호군은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서점은 할인가격이 있지만, 이런 동네 서점은 그 대신 마일리지가 있지요. 마일리지를 활용하면 동네서점도 괜찮아요. 단지 책 사는 데 드는 시간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빨리 사느냐 천천히 음미하면서 여유롭게 사느냐의 차이입니다."

주로 어떤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학생이라 학과공부 때문에 아직은 깊이 있는 철학 서적이나 전문서적을 접할 수는 없지만 권장도서 이외에도 소설책을 비롯 문학책을 주로 읽어요."

이런 동네서점이 없어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학생 대답이 걸작이다.

"작은 서점이 없어지는 것이 무척 안타까워요. 큰 서점보다는 작은 서점이 더 정감 있고 아늑하고 이런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추억도 함께 사라져 간다는 것이 가슴 아파요.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내서 서점에서 책 읽고 고르던 추억, 커서는 친구들과 함께 동네서점에 들러 여유를 즐기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공간들이 사라지는 것이 뭔가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인터넷서점 책이 싼 건 심리적인 현상"
[인터뷰②] 돌베개출판사 한철희 사장
서점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탄생하는 곳이다.
 서점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각이 탄생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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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이 등장하면서 할인을 무기로 출판사와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 서점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에 인터넷서점의 매출은 단행본의 경우 30% 올라갔고, 반면 서점 숫자는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인터넷서점이 등장하면서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출판사들이 공급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막으려고 해 봤지만 인터넷서점들은 도매상을 통한다든지 온갖 편법을 동원해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렸다.

여기에다 도서정가제법이 인터넷서점의 할인을 20-30%까지 허용하는데 오프라인 서점은 허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도서정가제법이 개정이 되어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10%까지 할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도서도 상품으로 보아 자율경쟁에 맡긴 결과, 인터넷서점의 온갖 편법이 가능해졌고 도서정가제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그 문제점에 대해 대해 돌베개출판사 한철희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서점에서는 판매이익이 많은 할인율이 높은 책 위주로 팔게 된다. 그러면 필요한 책, 중요한 책은 판매되지 않고 이런 책들이 판매되지 않으니까 이런 책들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책, 다채로운 문화, 소수의 목소리는 할인이라는 파고에 붕괴되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종 다양성의 문화가 침해당하게 된다. 

또한 출판사가 수익을 내기 위해 다양한 책, 다양한 문화를 생산해 내지 못하고 한정된, 상업적인 것들만 양산해 내게 된다면, 양질의 책이 들어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독자들의 권리는 박탈될 것이다. 사실 독자들이 도서할인으로 책을 싸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것은 심리적인 것일 뿐 출판사에서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 명목 가격을 높이고 그 대신 할인율을 높이게 된다. 그러면 결국은 독자들을 속이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사장은 개별 출판사가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한다. 도서정가제 법률을 제정하고, 온-오프 서점협의체들이 자율적인 상호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동네서점도 구태의연한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으로 서점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그 좋은 예가 부산에서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서점이라고 말한다. 그 서점은 참고서는 취급하지 않고 인문양서를 취급하면서 독서클럽을 운영하고, 독서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명 저자를 초청해 강연회도 열고, 청소년들의 글쓰기를 통해 책을 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의 문화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밖에도 서울 통인동의 '길담서원'이라는 곳도 특정 분야를 특화시켜 서점이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네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왔던 터줏대감 같은 소중한 동네서점이 또 하나 추억 속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 아쉬움에 가슴이 아려온다.


태그:#상지서점, #동네서점, #인터넷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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