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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디 진한 동티모르 커피. 커피를 물에다 넣고 끓여 천이나 금속망으로 걸러낸다. 성긴 망으로 걸러낸 커피는 커피잔 바닥에 커피가루가 두껍게 쌓인다.
 진하디 진한 동티모르 커피. 커피를 물에다 넣고 끓여 천이나 금속망으로 걸러낸다. 성긴 망으로 걸러낸 커피는 커피잔 바닥에 커피가루가 두껍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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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커피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들어온 아라비카종이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밀림에서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주민들은 단지 수확만 할 뿐이다.
 동티모르 커피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들어온 아라비카종이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밀림에서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주민들은 단지 수확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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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커피가 아닐까? 동티모르에 있을 때, 진하고 걸쭉한 티모르 커피를 아침마다 마셨다. 어떤 때는 맛이 있었고, 어떤 때는 찌꺼기가 너무 많아 인상을 쓰기도 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커피는 기호식품이라 사람마다 입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종류 또한 엄청나게 많지 않나. 나 역시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지만 그렇다고  마니아는 아니다. 특별히 맛을 따지지 않고 마신다.

그런데, 동티모르에서 아주 특별한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맛으로 기억되는 커피가 아니라 상황으로 기억되는 커피였다. YMCA의 양동화 간사가 그린 빈을 직접 볶아서 만들어준 커피였다. 그 커피, 양 간사가 사메에서 직접 따서 말린 것이다. 그 커피를 양 간사가 가스 불 위에 군용 찬합을 뉘어 놓은 것처럼 생긴 손잡이가 달린 그릇 안에 넣고 흔들면서 볶았다.

그릇의 윗부분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그 곳에서 탁탁 튀는 소리가 나면서 이따금 껍질 같은 것이 튀어 나왔다. 그렇게 그린 빈을 볶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사이. 제대로 볶아지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양 간사는 소리를 들으면 안다고 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렇게 볶은 커피를 양철망에 부어 식힌다. 뜨거운 커피 알이 금방 식을 리 없으니 양 간사는 선풍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커피를 식힌다. 식은 커피를 분쇄기에 넣고 가는 게 다음 단계. 고운 가루가 된 커피를 여과기에 넣고 끓인 물을 붓는다. 커피 가루에 물을 붓자 거품이 부글부글 일어난다. 거품이 많이 나야 신선한 커피, 라고 양 간사가 알려준다.

그 여과기를 통과한 검은 액체가 바로 우리가 마시는 커피다. 만드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난 뒤에 마시는 커피 맛이 각별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커피를 마시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추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데 양 간사는 이 시간이 즐겁다, 고 했다. 즐겁다는 건, 즐긴다는 의미가 아닐는지. 양 간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다도(茶道)를 떠올렸다. 양 간사는 다도에 버금가는 '커피도'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커피를 볶는 수고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볶는 것부터 추출까지, 한잔의 커피를 만드는 시간 40분

커피를 햇볕에 말리고 있는 청년들.
 커피를 햇볕에 말리고 있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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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으로 필터 담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수작업으로 필터 담배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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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서 한국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양동화 간사와 딜리에서 담배공장을 운영하는 황아무개 사장이다. 양 간사는 동티모르에 체류하는 동안 세 번이나 만났고 또 인터뷰도 했지만, 황 사장은 담배공장 내부를 보여주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지만 기사화 하는 것은 거절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아쉽다.

티모르 커피가 100% 유기농 커피라는 것은 이미 이야기했다. 그 커피를 우리나라의 YMCA에서 '피스커피'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물론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YMCA는 왜 티모르 커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까? 다국적 기업은 일방적인 가격으로 커피 값을 정하고 사들인다. 그 값이 공정한지 혹은 생산원가 이하인지 여부는 관심이 없다. 그렇게 팔려가던 커피에 YMCA는 관심을 가졌다. 왜?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독립한 동티모르의 농민들의 자립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농민들이 생산한 커피를 '공정한 값'을 치르고 사들여 '공정한 값'으로 팔 수 있도록 한다면 그들의 자립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게 YMCA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피스커피'는 동티모르 사메에 현지 공장을 짓고, 직접 커피를 수매하고 말리고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현지에서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양동화 간사다.

양 간사는 자신을 사메 커피공장의 공장장이라고 설명한다. 커피 생산 공정 전체를 관리·감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 간사는 동티모르 현지어인 떼뚬어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양 간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0월 12일 오후, 티모르 호텔에서였다. 그리고 13일과 14일, 딜리의 YMCA 사무실로 찾아가 양 간사를 다시 만났다.

수매와 가공까지 공정 전체 관리... 동티모르 자립돕는 '피스커피'

양동화 YMCA 간사
 양동화 YMCA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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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티모르에는 언제 어떻게 왔나?
"2007년 4월에 왔다. 처음에는 교육을 담당하다가 커피를 담당하게 되었다. 순천 YMCA에서 근무했는데 동티모르에 보내달라고 떼를 써서 왔다. 위험지역으로 알려져서 올 때는 부모님께 필리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 동티모르의 생활여건을 보니 정말 열악하다. 여자 혼자 생활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생긴 건 털털해도 은근히 까다롭고 벌레도 무서워하고, 편식도 심한 편이다. 여행하는 것과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오겠다고 우겨서 왔기 때문에 중간에 실패하고 돌아갈 수 없지 않나. 지금은 익숙해졌다."

벌레를 무서워하던 양 간사는 우기를 한 번 겪고 난 뒤에 벌레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YMCA 사무실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비가 쏟아지자 어린아이 주먹만 한 바퀴벌레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많이 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적응이 되더란다.

- 현지인들과 떼뚬어로 의사소통을 하던데, 얼마나 배웠나?
"동티모르에 와서 제일 먼저 한 게 떼뚬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20시간 배우고 나서 바로 현지인들과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2년 가까이 살다보니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점점 더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처음에는 말을 어눌하게 하니까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말하던 사람들(현지인)이 이제는 잘 알아듣는 것으로 알고 현지인들이 말하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 커피를 한국에 수출하기까지 어떤 공정을 거치나?
"커피 열매가 빨갛게 때문에 레드체리라고 부른다. 그날 딴 커피는 그날 처리하지 않으면 발효가 시작된다. 커피는 향이 생명이기 때문에 발효되면 안 된다. 그래서 그 날 딴 커피는 그날 수매한다. 아침에는 현지인들이 산에 가서 커피를 따고 오후에 장을 열면 커피를 사서 오후 3시경부터 가공에 들어간다.

레드체리의 육질을 제거하면 '터치 메트'라는 게 두 개 나오는데 이게 굉장히 미끌거린다. 이것을 24시간 정도 발효시킨 뒤 씻은 뒤 말린다. 제대로 씻어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말리면 된다. 제대로 말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긴다. 이렇게 4개월 동안 수매를 해서 딜리로 가져온다. 이렇게 말린 커피의 껍질을 제거하면 그린 빈이 나온다. 딜리에서 가공이 끝나면 다시 커피를 사메로 가져가서 불량 커피를 골라내는 과정을 거친다.

커피를 다시 사메로 가져가는 이유는 생산한 사람들이 직접 불량 커피를 골라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사메 사람들에게 주려는 이유도 있다. 물론 딜리에서 사메까지 운반하는 과정에 운반비가 들기는 하지만 감수한다."

양 간사는 생산자들이 커피의 껍질을 벗기는 순간부터 불량품을 골라낸다고 설명한다. 벌레 먹은 것, 덜 익은 것 등을 골라내는 것이다. 물에 담갔을 때 둥둥 뜨는 것도 제거 대상이다. 커피는 도로가에 내놓고 말린단다. 수아이에 가던 길에 커피 말리는 것을 본 것처럼. 그런데 그 사람들은 물에 씻지 않고 그냥 말리는 것이라고 한다.

커피를 말리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커피의 과육을 제거한 뒤 물에 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씻지 않고 그냥 말리는 것이다. YMCA는 커피를 물에 씻는다는 것. 그래야 양질의 커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양 간사의 설명이다.

사메에 가공공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커피를 수매하기 위해서 사메에서 걸어서 세 시간쯤 걸리는 로뚜뚜까지 들어가야 한단다. 물론 커피는 트럭에 싣고 나오는데 워낙에 길이 안 좋아서 트럭에 무리가 가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고. 트럭의 몸체와 적재함을 연결하는 고리가 부러지기도 했다는 것.

아직 수확하기 전인 붉게 익은 커피 열매. 깨물면 달작지근한 과육이 씹힌다.
 아직 수확하기 전인 붉게 익은 커피 열매. 깨물면 달작지근한 과육이 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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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려움이 많을 텐데?
"처음에 사메에 왔을 때 엄청나게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만 듣고 좋은 소리만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아무래도 '사업'이 되다보니 싫은 소리를 하게 되고, 트러블도 생겼다.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동티모르에서도 시골 지역 사람들은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라 외부인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사메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오면 일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남자들과 일을 하는데, 동티모르는 여성차별이 무척이나 심하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매니저를 두고 업무처리를 했는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직접 대화하고 회의하는 체계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매니저가 반발하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지금은 많이 정착된 상황이다."

양 간사의 설명에 따르면 동티모르는 가부장적인 면이 아주 강하고 여성차별이 아주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 하는 과정에서 현지인들은 양 간사가 외국인이고 여자니까 힘들고 험한 일은 하지 말고 자기네들이 하는 대로 그냥 보기만 하라는 식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두고 볼 수 없었던 양 간사는 직접 일을 처리하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현지인들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양 간사는 가끔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현지인들이 직접 위해를 가한 적은 없지만 그만큼 양 간사가 일을 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수매하는 커피는 얼마나 되나?
"커피를 200톤쯤 수확하면 그린 빈이 25톤 정도 나온다. 공정과정에서 골라내고 남은 것이 그 정도다."

양 간사는 티모르 사람들이 커피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커피나무가 병이라도 나면 그 피해가 아주 크다고 설명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경우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현지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언제까지 동티모르에 있을 예정인가?
"언제까지 있게 될지 모르겠다. 현지 상황이 너무나 열악하고 근무조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다. 월급을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물가가 한국과 비슷하기 때문에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4일, 딜리 공항에서 발리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YMCA  사무실에 들러 마지막으로 양 간사를 만나 작별 인사를 했다. 그 때, 양 간사가 한국에 오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양 간사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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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동티모르, #피스커피, #YMCA, #사메, #유기농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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