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최인식 사무총장이 5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명단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전교조교사 명단공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최인식 사무총장이 5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교사 명단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서울의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다. '전교조 척결'을 목적으로 얼마 전 설립된 우익단체인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이 오늘 5일 서울지역(지방 267명 포함) 전교조 소속 교사라면서 4950명의 실명과 재직 학교를 공개했다. 이를 공개한 인터넷 사이트는 명단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접속이 마비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사실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우리반 학생들과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단 한번도 항의를 받거나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왜일까?

나는 전교조 소속 교사일 뿐이고...

학생들에게는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것을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전교조 조합원인 교사와 전교조 조합원이 아닌 교사를 구분해서 판단하도록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선생님이 교총 회원인 것과 아닌 것이 학생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 선생님이 한나라당 지지자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 지지자인지도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학기 초에 모든 학부모님들께 편지를 통해서 내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것을 알린다.

다음은 본인이 어느 학생의 학부모에게 쓴 편지의 일부분이다.

"...(전략)...  이상에서 저의 첫 번째 편지를 마치기 전에 한 말씀만 더 드립니다. 저는 세상을 착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교육을 통하여 세상이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착한 사람이 일한 만큼 대우 받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학생 이름 생략)의 부모님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아니 이미 잘 알고 있을, 제 스스로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입니다. 저는 늘 저 자신에게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착하게 살려고 하는 합니다. 굳이 전교조 때문은 아니더라도 촌지니 선물이니 하는 것은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후략)..."

전교조 마크가 들어간 이 명함을 학기초에 학부모들에게 모두 나누어준다. 이걸 A4에 인쇄해서 가위로 잘라서 만드는 조악(?)한 수준의 명함이다. 제가 전교조 교사인 것을 모르는 학부모는 없겠죠?
▲ 내 명함 전교조 마크가 들어간 이 명함을 학기초에 학부모들에게 모두 나누어준다. 이걸 A4에 인쇄해서 가위로 잘라서 만드는 조악(?)한 수준의 명함이다. 제가 전교조 교사인 것을 모르는 학부모는 없겠죠?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첫 번째 학부모 모임에서 학부모님들에게 언제든지 학생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연락달라고 전교조 마크가 들어간 명함(명함이라고 하기에도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A4용지에 프린터로 인쇄해서 직접 만듦)에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적어서 나누어 드린다.

난 전교조 교사 이름 함부로 공개하는 것 반대할 뿐이고...

내가 전교조 소속 교사라는 사실은 학생들도 알고, 학부모님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우익단체들이 전교조 교사들의 이름을 함부로 인터넷에 올리고 공개하는 것에 반대한다.

당당하면 공개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보수우익 단체과 조전혁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묻겠다. 당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가 "당신 거실에 훔친 장물이 있을지 모르니, 아니면 당신 안방에 불법 무기가 들어있을지 모르니 당신 안방과 거실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당신들은 분명히 "남의 사생활인데 그걸 왜 공개하느냐?"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들이 던지는 이 질문을 똑같이 당신들에게 되물어보겠다.

"장물이나 불법 무기가 없다면 당당하게 공개하면 될 것 아니냐?" 이 질문에 당신들을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전교조 조합원인 것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있지만, 당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학부모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전교조 조합원인지를 물어보면 대답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도매금으로 전교조를 빨갱이로, 좌익으로, 친북집단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인터넷에 공개하라고 하면 나는 절대로 동의해 줄 수 없다.

당신들은 이미 전교조를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을 해놓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이름을 인터넷에 실명으로 공개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빨갱이 교사로 여론몰이를 하려고 하는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발 교사와 노동자 중의 하나만 선택하라는 무지에서 벗어나자. 당신은 대한민국 국민이냐 아니면 서울시민이냐는 질문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교사와 노동자 중의 양자택일 역시 성립되지 않는 억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하지만 소수의 몇 사람들이 빨갱이, 좌익 어쩌고 하면서 매도함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문근영을 보라. 이 비유를 두고 당신이 문근영이냐면서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전교조 교사가 문근영이라는 말이 결코 아니라 악의를 품은 몇 사람에 의해서 똑같이 돌팔매질을 당하고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전교조는 이미 그 서슬퍼런 군사독재 시절에도 해직을 각오하고 스스로 조합원 명단을 공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들은 모른 척하고 있다. 전교조 창립 시기 2500명의 해직자를 내면서도 전교조 교사들은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로 내가 전교조다라고 명단을 공개했다.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의미이며,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이자, 아이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맹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당시에 정권이, 교육청이, 보수 우익들이 나서서 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려고 했다면 필사적으로 반대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전교조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좀더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겠다는 맹세로,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는 약속을 전교조 조합원임을 공개하라고 하면 내 돈 내고 신문 광고를 내서라도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의도하는 것처럼 마녀사냥식으로 전교조 교사들을 여론몰이로 흠집내고 빨갱이로 매도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모든 정보공개의 결정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것을 밝히고 홈페이지에 올리고 싶으면 올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알리고 싶지 않으면 알리지 않을 권리가 있다.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은 자신들의 회원명부부터 공개해야

조전혁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도 집요하게 교원노조의 명단을 홈페지에 공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에게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한나라당 당원 명단부터 공개하라. 그리고 이를 어길 시에는 당원 자격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어라."

이번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를 실행한 이상진 대표를 비롯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에게 마찬가지로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회원 명단과 간부 명단을 공개하라. 그리고 성향상 자신들과 가까울 것으로 예상되는 교원단체인 대한민국교원조합, 자유주의교원노조, 한국교원노조, 교원단체총연합 명단부터 공개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전교조 명단 공개는 학부모를 위한 당연한 공개 사항이라며 전교조 마녀사냥에 나선 조중동에게 요구한다.

"조중동은 전혀 부끄러운 것도 없으며, 그렇게 자랑스러우면 조중동 신문 독자 명단부터 공개해야 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의 논리대로 그렇게 당당하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자신들의 명단과 과거 경력, 현재 직위 등을 상세하게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자신들과 가까운 교원단체 명단부터 공개하라. 그래야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에 대한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다.

교원노조 소속 교사 명단 공개는 야만스런 마녀사냥

야만과 암흑의 중세가 가면서 마녀사냥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집필자에 전교조 교사가 한명도 없음에도 금성 근현대사교과서는 좌파교사들이 쓴 좌익교과서로 매도당한다. 전교조가 가장 많은 광주·전남 등이 채택률이 낮고 전교조가 가장 적은 대전과 경기가 채택률이 가장 높음에도 금성교과서 채택률이 높은 것이 전교조 때문이란다.

그들은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막무가내다. 오로지 전교조를 반대하기 위해서라면 팥으로도 메주를 쑬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무 관련도 없는 금성교과서를 채택한 학교 명단 옆에 버젓이 전교조 조합원 숫자를 적어서 언론에 내보낸다. 그리고 전교조 조합원 수와 금성교과서 채택은 무관하다는 결과는 보도하지 않는다. 금성교과서 저자에 전교조 조합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어느 언론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침묵의, 반전교조 카르텔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보수우익단체들에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로 통하는 듯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 교원노조 조합원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법을 만들자고 하는 정당이 있는가? 세계 어느 나라 시민단체가 교원노조 교사들의 이름을 인터넷에 무단으로 공개하고 있는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현대판 마녀사냥이 조중동과 한나라당, 보수우익 단체들에 의해 반전교조 카르텔로 나타나고 있다.

나는 전교조 교사지만, 당신들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나는 전교조 교사로 아이들에게, 학부모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교사로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교사를 전교조 교사와 전교조 아닌 교사로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은 교육적이지도 못하고 이성적이지도 못하다. 아니 야만적이다.

[최근 주요 기사]
☞ '3월 위기설' 실체, 청와대에 있다
☞ 신지호 의원님, 누가 '반대한민국'입니까?
☞ 사시 준비 그만두고 로스쿨이나 한번?
☞ [대연합] '반대' 진중권, 대안 뭔가 ☞ [대연합] 노회찬 "민주당 강화론일 뿐이고..."
☞ [엄지뉴스] 한우 아니면 정말 벤츠 1대 줄건가요?
☞ [E노트] 강만수 "이런 때 CEO대통령 가진 것 다행"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서울의 사립학교 교사입니다.



태그:#전교조, #명단공개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