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과>의 포스터. <사과>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제 사랑하며 겪어가는 고민과 갈등을, 사랑의 결론이 아닌 사랑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사과>의 포스터. <사과>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제 사랑하며 겪어가는 고민과 갈등을, 사랑의 결론이 아닌 사랑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 청어람


4년의 기다림, 3주의 나들이

강이관 감독은 4년 전 이미 영화 <사과>의 촬영을 끝내고 편집 작업까지 마쳤지만 곧바로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보일 수 없었습니다. 제작사와 투자사는 개봉 시기를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으나 결과는 언제나 연기, 미정이었고, 그렇게 <사과>는 빛 안 드는 창고 속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사과>는 강이관 감독의 첫 작품, 그야말로 데뷔작인데 감독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요.

하지만 지난한 4년이란 기다림의 시간동안 <사과>는 토론토국제영화제·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을 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총 10개의 버전이 나올 만큼 공을 들인 편집 작업도 계속되었습니다. 관객과 만날 수 없었던 마음고생의 4년이 어찌 보면 <사과>에겐 숙성의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10월16일, 마침내 <사과>가 개봉을 했습니다! 비로소 감독은 한껏 익힌 <사과>를 손에 들고 기쁘게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지요. 하지만 긴 기다림에 비해 그 기쁨은 3주를 채 넘기질 못했습니다. 왠지 좀 쓸쓸한 모습으로 “개봉 한 건가 안한 건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극장 가봐도 영화가 없길래”라며 웃음을 짓던 감독의 말처럼 <사과>는 개봉 3주 만에 극장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우리 주변에 흔하고 흔한 드라마·영화 속의 전형적이고 판타지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제 사랑하며 겪어가는 고민과 갈등을, 사랑의 결론이 아닌 사랑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린 영화 <사과>.

그렇게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일상을 울리는 진지함과 진솔함이 담긴 영화가, 게다가 영화계에서도 후한 평을 받은 좋은 영화가 개봉 3주 만에 막을 내렸다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더 많은 관객들이 <사과>를 보며 자연스레 연애, 사랑, 결혼의 의미에 대해 차분히 음미하는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일텐데요. 감독의 아쉬움엔 미칠 수 없겠으나, 한 명의 영화 관객으로서도 아쉬움이 짙게 남더군요.

강이관 감독과의 '씨네토크'

 <사과>의 강이관 감독. <사과>는 그의 첫 작품이다.

<사과>의 강이관 감독. <사과>는 그의 첫 작품이다. ⓒ 이대암

하지만 아직 극장에서 <사과>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네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아직 <사과>를 상영중이라고 합니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는 지난 14일 밤, 강이관 감독과 관객과의 ‘씨네토크’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최신 개봉작도 아니고 최고 흥행작도 아닌 영화의 감독과의 만남이기에 세간의 화젯거리와는 거리가 멀겠지만, 영화 <사과>의 느낌만큼이나 은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독은 약간은 수줍은 듯 겸손한, 느긋함에 진솔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 4년 만의 개봉입니다. 개봉하고나서 기분이 어떠셨는지요?
"자다가 문뜩 눈을 떴을 때, 개봉 한 건가 안한 건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극장 가봐도 영화가 없길래." (웃음) 

- 감독님은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랑이라. 알았으면 이런 영화 안 찍었겠죠. (웃음) 저를 비롯하여 문소리, 이성균, 김태우 씨 그리고 여러 스텝 등 아래위로 3~4살 차이밖에 안나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작업을 했어요. 당시에는 결혼한 사람도 없었고요. 대체 사랑이란 왜 이리 힘들까, 사랑을 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어요.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겠구나, 여자의 이런 말과 행동에는 뭔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 남녀의 관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랑이란 뭔가 좀 이상하다란 고민을 나누며, 사랑에 대해 같이 공부해보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다보니 각자가 사랑에 대해 굉장한 학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영화를 보며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통해 상대방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이전보다는 사랑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고,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면이 참 좋았고요.  관객분들도 이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사랑에 대한 생각에 도움을 받으실 수 있길 바라는 심정입니다."

-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좀 더 밝은 분위기, 유쾌한 결말은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시나리오 단계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던 부분입니다. 좀 더 밝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것이 기분 좋게 마무리되게 그리고 싶었으나 제 내공이 거기까진 안 됐고요.(웃음)
애써 영화를 보러 왔는데 숨김없는 현실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요즘 드라마나 일반적인 영화, 특히 유럽이나 미국의 영화를 보면 멋진 사람, 멋진 이야기가 참 많은데요, 보면 즐겁고 너무 좋죠. 그런데 막상 극장을 나오면 멋진 사람, 멋진 이야기는 그새 어디가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화도 내고 별거 아닌 일에도 화나고 그러잖아요? 영화란 걸 봤으면 삶에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는 응용이 안되는.

그래서 <사과>를 통해서는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는 바람이 컸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거짓말로 즐겁게 꾸며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서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현정이(문소리)가 뭔가 좀 더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를 갖고 있고, 꼭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고 있고. 그래서 현정이를 둘러싼 관계가 즐겁고 희망적으로 진전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를 그려나갔습니다."

- 남성으로서, 현정이(문소리)란 여성을 주인공으로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켜감에 있어 어려움이나 충돌은 없으셨나요?
"영화는 현정이의 시점으로 계속 진행되죠. 영화를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가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재밌는 인터뷰였죠. 한 명의 여자 분을 만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고, 첫사랑 이야기도 듣고, 결혼 한 분이면 남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또 남편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렇게 사랑에 대한 더 넓은 이해를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실제로 감독은 50쌍의 남녀와 릴레이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하고, 엔딩크레딧에는 모든 인터뷰이들의 이름과 그들에 대한 감사의 글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남자 이야기건 여자 이야기건 사실은 같다고 생각해요. 남녀의 차이 이전에 사람이란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닐까요. 제가 남자이다 보니 영화에 남자의 시선이 들어가 있는 진 모르겠어요. 하지만 특별히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다거나 하기보단 그저 현정이의 입장에서 전체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근본적인 발상자체가 ‘우리가 과연 성인인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서른 살 전후의 어른들을 보면 ‘아, 이들은 완전 어른이다. 이 사람들은 사랑도 다 알고 있고, 애들을 어떻게 키우는지 다 알고 있고,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없다.’ 이렇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제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그 나이를 지나면서 보니 세상이 꼭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성인도 계속해서 학습을 받아야 하고 더 성장해야하는데, 그런데 사회에서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았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빨리빨리 취직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등등 사회와 가정에서 강하게 등을 떠밀죠.

현정이는 연애와 결혼을 통해서 글쎄요, 이전보다 훨씬 현명해지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진 게 아닐까, 어렸다가 조금은 덜 어려진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영화를 보며 결혼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결국 현실에 대한 순응을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사실 현정이가 능동적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찍었어요. 민석이가 떠난 건 민석이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현정이가 수동적 피해자일 수 있지만, 이후부터는 상훈이와 결혼한 것도, 구미로 내려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이혼에 대한 이야기 등 현정이가 주도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건 아니지만 결국 현정이의 주도적,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고요. 현정이가 수동적이란 생각은 안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결혼을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결혼은 자기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서 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이런저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안할 수도 있는 거고요.

전체 이야기를 생각할 때 결혼이야기가 중간에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하면, 대부분의 멜로드라마는 연애 이야기만 하다가 결혼하면서 끝나거나 결혼 이후의 생활만을 그리고 있죠. 연애, 결혼이란 터널을 지나가면서 관계가 변해가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죠.

왜 사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연애, 결혼을 거치며 관계가 변해가는 걸까. 그러한 궁금증을 바탕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구조화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이란 제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문제로 보고 영화를 찍었습니다."

“영화를 만든 게, 친구들이랑 같이 보려고 만든 겁니다. 같이 보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여러분과도 물어 보고 답하는 형식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나눴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감독의 말과 함께 ‘씨네토크’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렇듯 계속해서 소탈한 대화와 소통을 이야기하는 감독은, 지난 4년 간 관객과의 소통을 얼마나 바랐을까요.

타영화관계자 대동 없이 나홀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찬찬히 극장문을 나서는 감독의 뒷모습을, 그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멀찍이서 훔쳐봤습니다. 왠지 쓸쓸한 듯, 하지만 왠지 편안하고 소박한 진솔함에 미소가 떠오르더군요.

비록 <사과>가 3주라는 짧은 나들이를 했지만 아직도 상영중이며, 앞으로도 강이관 감독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영화팬들은 많으리란 사실이 감독에게 따스한 위안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더 많은 영화 팬들이 <사과>의 은은한 향을 맡아보게 되길 바랍니다. 

사과 강이관 문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