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포스터

<미인도> 포스터 ⓒ 이룸영화사

소설 <바람의 화원>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인기 속에, 역시 ‘조선시대 천재화가인 신윤복이 여자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소재로 한 영화 <미인도>가 지난 목요일(13일) 일제히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신윤복 역을 맡은 김민선의 전라연기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걸작들이 사실적으로 재현된다는 점 등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개봉하자마자 맥스무비집계 전체 예매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막상 뚜껑을 열자 여기저기서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야기는 관객을 흡입할 만큼 흥미진진하지 않았고, ‘천재’로 칭송되던 신윤복 캐릭터 또한 다른 작품에서 익히 보아오던 ‘평범함’ 그 자체였다.

네티즌이 직접 점수를 매기는 포털사이트 영화 평점에서도 11월 16일 현재 비교적 낮은 점수인 6.05(10점 만점)을 기록하고 있다. 

기본 설정은 훌륭했지만…

사실 <미인도>는 관객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영화이다.

죽은 오빠를 대신해 남자로서의 삶을 강요당해야 했던 신윤복의 한(恨)은 유교정신이 지배하던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신체나 성(性) 에 관련된 풍속화를 그림으로써 억압과 금기에 도전했던 그의 정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씨름도’ ‘단오풍경’ 등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이 철저한 고증과 작업을 거쳐 줄거리 속에 녹아들며 사실적으로 모사되었고, ‘조선 최초 에로티시즘’이란 광고문구에 걸맞게 윤복의 눈을 통해 본 여성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화면 가득 펼쳐져 볼거리를 제공한다.

거기에 윤복이 스스로 여자임을 깨닫게 해준 광무와의 첫사랑, 역시 윤복을 사랑하는 스승 김홍도(김영호 분)와 그런 김홍도를 사랑하는 기생 설화(추자현 분)의 엇갈린 운명도 흥미 있게 펼쳐질 여지가 있는 설정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요소들이 원숙하게 한 덩어리로 버무려지지 않고 어색하게 서로의 주변만 겉돌았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의 문제점

 <미인도>의 한 장면

<미인도>의 한 장면 ⓒ 이룸영화사


<미인도>의 첫 번째 문제를 꼽으라면 주인공 신윤복의 캐릭터를 들 수 있다. <미인도>의 신윤복에게는 심하게 말해서 어떠한 매력도 느낄 수가 없다.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남장을 하게 된 윤복은 강무(김남길 분)를 만나며 사랑에 눈을 뜨고, 여성의 가슴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풍속도를 그리며 자신의 예술세계에도 전기를 맞게 된다. 그러면서 자아를 찾게 된 윤복은 ‘도화서’라는 직책과 가문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버리고 강무와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이런 ‘설정’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 윤복은 ‘성장’하지 않는다. 영화 시작부분과 끝부분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일관되게 소극적일 뿐이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순순히 남장을 하고 화원이 되었고, 강무를 만나면서부터는 그 당시 여자들이 그러했듯 남자에게 의존하는 또 한명의 순종적인 여인네가 되어버린다.

왜 적나라한 풍속도를 그렸느냐고 다그치는 왕의 물음에도 자신의 생각을 똑바로 표현하지 못하고 답답한 모습만을 보일뿐이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신윤복의 용기는 영화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원인은 영화상에서 신윤복에게 애초에 ‘억압’이라는 장치가 제대로 부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인도>의 한 장면

<미인도>의 한 장면 ⓒ 이룸영화사

비록 여성임을 부정하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지만, 대신에 그에겐 여성이 붓을 잡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때에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

게다가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 밑에서 엘리트교육을 받고 있고, 다른 화원들의 시샘을 받을 만큼 왕의 총애도 받고 있다. 신윤복에게 남장을 한다는 것은 제약이라기보다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금기시되던 풍속도를 그린다든가 강무와 성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관객이 윤복이 느끼는 환희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감독은 새장을 벗어나 날아가는 새를 통해 이런 윤복의 마음을 전달하려 했지만, 관객의 눈에는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윤복이 여성성까지 회복해 더욱 많은 것을 가지게 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제법 긴 시간동안 이어진 윤복의 성행위 장면은 영화상 꼭 필요한 설정으로 여겨지지 않고, 영화 내내 등장하는 다른 성적인 장면들과 연계되어 흥행을 위한 ‘불순한 의도’로 비춰지는 것이다.

에로티시즘의 과잉

 <미인도>의 한 장면

<미인도>의 한 장면 ⓒ 이룸영화사


윤복이 냇가에서 멱을 감는 여성들의 모습을 훔쳐보며 ‘단오 풍경’을 그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미인도>에는 성과 관련된 장면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중 단연 압권은 초반부에 벌어지는 기생들의 ‘청나라 성행위 체위’ 재현 장면과 그것을 감상하는 윤복의 모습이다. 유명배우가 출현하는 극장용 상업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모습이고, 윤복과 강무의 정사신과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긴 시간동안 진행된다.

이 장면 역시 그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영화에서 신윤복이 야한 그림을 그리는 명분은 그의 대사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유혹하고 흔들리는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격렬하고 일탈적인 성행위가 그가 말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혹은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윤복이 강무에게 쏟았던, 지극히 순수하고 어찌 보면 ‘신파’로까지 느껴지는 아름다운 사랑은 기생들의 행위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윤복이 성에 눈을 뜨고 여성성을 깨닫는 장면으로 치부하기에도 그 정도가 넘치는 듯 하고, 그의 그림이 ‘비판’ 내지 ‘조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때도 이 장면은 자극적인 볼거리 제공과 그로 인한 관객의 관심 유발에 무게가 실리는 듯 하다.

또 하나의 신파극

 <미인도>의 한 장면

<미인도>의 한 장면 ⓒ 이룸영화사


<미인도>에 쏟아지는 또 다른 뼈아픈 지적은 ‘굳이 신윤복 김홍도여야 했을까?’ 라는 의문이다. 즉, 신윤복 김홍도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어도, 혹은 굳이 사극이 아니었어도 <미인도>에 나타난 신파조의 줄거리를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미인도>가 지나치게 상투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금기에 대항하는 도전정신 대신에 네 남녀의 엇갈린 치정극으로 전개된다. 순수한 사랑을 하는 강무와 윤복, 강무를 질투하는 김홍도, 또한 김홍도를 사랑해 윤복을 질투하는 기생 설화. 다른 작품을 통해 익히 들어본 이야기이요, 새로울 것 없는 구성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윤복과 김홍도가 서로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정도이다. 즉, 윤복은 김홍도를 꺾고 다시 가문을 일으키려는 야심을 품은 채 김홍도 밑으로 들어간 것이고, 김홍도는 그런 윤복의 속내를 알면서도 그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영화 속에선 그런 ‘사실’만 인지될 뿐, 관객의 감정을 흔들어놓는 요소로 작용하지는 못한다. 윤복이 김홍도에게 가하고자 하는 ‘뼛골까지 빼먹는’ 복수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그 방법조차 짐작하기 어렵고, 김홍도의 사랑과 집착도 잘 표현되지 않아 통속 멜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에로티시즘과 센세이션사이

<미인도>영화 팸플릿에는 수차례에 걸쳐 ‘에로티시즘’과 ‘센세이션’이란 낱말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기대를 밑도는 <미인도>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이 두 단어의 다소 어울리지 않는 결합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센세이션’을 표방하며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부각시켰지만, 믿었던 ‘에로티시즘’은 ‘센세이션’을 견인하지 못했고, 오히려 상투적인 줄거리 전개와 결말을 도출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훌륭한 아이템 선정과 철저한 고증, 배우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극적 재미 면에서는)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미인도>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듯 하다.

미인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