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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가 화엄 세상이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아기 단풍들이 곱게 물들어 있으니, 그렇게 화사할 수가 없다. 붉은 색만 있었다면 이렇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으리라. 자주 빛깔과 주황색 그리고 사이사이 초록까지 겹쳐져 조화를 이루고 있어 더욱 돋보인다. 한 가지 색보다는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야 우뚝해진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내장사 단풍과는 또 다른 맛이 난다. 선운사(대한 조계종 제 24교구 본사, 전북 고창군 아사면 삼인리 소재)는 백제 시대 검단 선사에 의해 창선된 호남의 역사 깊은 고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천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곳이 곱게 단풍이 드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일찍 서두른다고 하였지만 집사람의 늦장으로 10시가 되어서야 나설 수 있었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어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희뿌연 하늘이 안개인지, 황사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까지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선운사에 도착하면 가을 햇살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달렸다. 달리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달리는 도중 내장사로 향하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절정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선운사는 내장사만큼 이름을 얻지 못하였으니, 밀리지 않을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고창읍에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국화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인지, 고창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물결도 줄을 잇고 있었다.

 

선운사 입구에 가까워지니, 자동차들의 수가 예상을 넘었다. 전국의 관광버스가 이곳에 다 모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도솔산 선운사도 그 역사만큼이나 관광 명소가 되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넓은 주차장이 꽉 차 있어서 주차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겨우 자리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선운사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상황에서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공원은 생활에 지친 국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맞는 것이다.

 

문화재는 사찰의 사유재산이 아니다. 문화재는 국민 모두의 재산이요, 국민 모두를 위해서 관리 보존되어야 한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있고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를 당연히 가지고 있다. 따로 입장권을 내면서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가로부터 문화재 보호를 위한 예산지원을 받고 있으니, 국민에게는 관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외국인에게 징수하는 것은 몰라도 국민에게 받는 것은 억지다.

 

아기 단풍의 앙증맞은 이파리들이 곱게 물들여져 있는 화엄세계에 들어서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음까지 진하게 물이 들어 날아오를 것만 같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고운 빛깔이 내 안으로까지 번져나고 있었다. 일상의 번다함과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가을 풍광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온 몸이 이완된다.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날마다 이렇게 마음의 청소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과 번뇌로 가득 차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화엄 세상에 머물러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솔산 선운사의 화사한 화엄 세상에서 노닐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그렇게 청정해질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마음을 무겁게 잡고 놓아주지 않던 욕심과 탐심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버릴 수 있는 마음이 이곳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으로까지 계속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기 단풍의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태그:#선운사, #단풍,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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