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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KBS 가을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사투나잇> 제작진 등 PD들이 31일 KBS 신관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KBS 가을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사투나잇> 제작진 등 PD들이 31일 KBS 신관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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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투나잇> 폐지 논란이 무성하던 지난 9월말, KBS 한 PD는 <시사투나잇>을 "KBS PD들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PD는 "<시사투나잇>으로부터 더 많은 시사 프로그램들이 분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꺾이고, 분화는커녕 모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9월부터 <시사투나잇> 제작진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졸랐다. 국회에서, KBS 사내에서 <시사투나잇> 폐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제작진은 인터뷰를 꺼려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회사 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에 발언하기가 조심스럽다"는 이유였다.

'인터뷰 고사'는 사측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 제작진과의 인터뷰는 결국 성사됐다. 사측이 그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름 바꾸고 제작진 갈아치우고도 프로그램 존치?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KBS 가을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사투나잇> 제작진 등 PD들이 31일 KBS 신관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KBS 가을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사투나잇> 제작진 등 PD들이 31일 KBS 신관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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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정기 이사회가 있었던 지난 10월 29일 공개된 개편안에는 "<시사투나잇>은 <시사터치 오늘>로 명칭을 바꿔 월~목요일 0:15~0:45분 방송하는 것으로 '존치'시켰다"고 되어있다.

'존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시사투나잇> 제작진들은 없다. "'존치'란 말은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뜻인데 프로그램 이름 바꾸고 제작진을 바꾸면서 이 단어를 쓰는 것은 모순된다'는 것이다.

사측의 입장이 전달된 후 제작진들과 PD협회 집행부들은 지난 10월 30일부터 아침과 저녁에 사내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31일, 아침 피켓시위가 끝난 후 강희중·최필곤·우현경·이지희 PD 등 <시사투나잇> 제작진을 인터뷰했다.

<시사투나잇> 진행자로 이날 새벽 1시께 방송을 마친 강 PD는 "1시간만 자고 출근했다"고 했다. 그는 방송을 끝낸 뒤 안 마시려 했는데 괴로워 하는 후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한 잔 했다.

이들의 얼굴에는 '순수 PD제작 생방송 데일리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일상적 피곤함과 함께 최근 벌어진 상황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했다. 강PD는 데스크 및 진행, 최PD는 정치, 우PD는 '숙경미Q',  이 PD는 이슈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시사투나잇> 유지안, 이사회 당일 뒤집혔다

KBS <시사투나잇>의 최필곤 PD
 KBS <시사투나잇>의 최필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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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인터뷰를 하게 되는 상황까지 왔다. 지난 10월 29일까지만 해도 '현 상황 유지'쪽으로 알려지지 않았었나?
최필곤 PD(최) : "우리가 접한 얘기로는 이사회 당일인 29일 아침에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진통에 진통을 거듭하다 결국 당일 아침에 최종 결정을 했다. 우리 제작진도 다 현상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갑자기 뒤집혔다. 당황스러웠다."

- 사측에서는 '존치'시켰다고 주장한다.
이지희 PD(이) : "<좋은나라 운동본부> 팀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프로그램이어서 제작진 내부에서 '리모델링해야겠다'는 의견이 먼저 나왔다. 숱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유지하기로 했다. 이게 '존치'다. 지금 제작진이 상황을 전혀 모르는데 이름 바꾸고 존치라니 어이가 없다. "

- 이사회를 거치면서 <시사투나잇> 폐지가 확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보나?
최 : 글쎄... KBS 이사회가 직접 프로그램 개편에 대해 언급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새 사장 들어온 전후로 일부 이사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구체으로 어떻게 언급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부 이사들의 입장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강희중 PD(강) : "좋은 결과를 기대했었다. 사측으로부터 '믿고 기다려 달라'는 얘기도 들었기 때문에, 또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잘 풀려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 생각하고 많이 달랐다."

- 이번 가을 개편을 앞두고 KBS 내부에서 '절차적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최 : 프로그램 개편 등은 제작진과 사측이 긴밀한 협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편성규약이 있다. 항상 편성규약에 따라 프로그램 개편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외부 관심이 많다보니 회사에서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 (폐지) 발표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제작진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를 했는데, 사측은 이곳저곳의 얘기 다 듣고 수렴했다고 주장한다.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수렴된 적 없다. 이전 개편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시사투나잇>에 '정파' 칼날 들이대지 마라

KBS <시사투나잇> MC인 강희중 PD
 KBS <시사투나잇> MC인 강희중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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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시사투나잇> 제작진이 발표한 입장문에는 '(사측이) 권력의 외압과 간섭에 굴복했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강 : "물론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방법으로 개입했는지 단서를 잡기는 어렵다. 우리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의 시작을 외부 특히 정치권에서 주장했으니, 이번 결정이 이같은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주요 비판이 편향성인데, 이에 대한 토론이 없었고, 사측에서 '토론으로 해결하기 힘든 얘기'란 말도 했다.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시사투나잇> 전체가 재단된 것이다."

이슈 취재를 도맡고 있는 후배 이지희 PD가 입을 열었다. 

"새 사장 선임 과정에 베이징 출장 중이었다. 상황을 잘 몰랐다. 회사에 복귀하고 나니 사장이 바뀌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폐지 결정을 보며 사장 바뀌는 게 정말 큰 일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사투나잇> 고정 꼭지 '숙경미Q'를 진행하고 있는 우현경 PD는 입을 떼기 전 천장을 쳐다보며 손으로 얼굴을 두어번 훔쳤다. 착잡함이 묻어났다. 지난해 11월에 팀에 합류, 'PD출동 현장속으로' '숙경미Q'를 제작하며 지낸 지 1년 만에 프로그램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편향성 지적에 대해 우리는 '논란'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약자의 얘기를 다루고 권력을 비판하니, 힘있는 쪽에서 볼때는 눈엣가시 같을 수 있다. 편향성 논란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개편은 편향적이라던 사람들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편향적이라고 하니 절충해서 이름 바꾸고 내용 쇄신하고 좀 더 공정한 방송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 같은데, 이것은 <시사투나잇>을 편향적 프로그램이라고 낙인찍은 것이다. KBS 시사프로그램을 외부 입김에 의해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장과 간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프로그램을 이렇게 해 버리면 시사 PD들이 뭘 믿고 일을 할 것인가?"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PD가 됐다는 우PD는 지금의 상황이 '창피하다'고 했다.

"<시사투나잇>에 대해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시사투나잇>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하더라', 이런 비판 들어본 적 있나? 한나라당은 다 못하고 민주당은 다 잘한다고 했나? 그런데 <시사투나잇>에 정파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생각 다른 사람들이 편향의 낙인을 찍으면 시사PD들은 누굴 믿나. 굉장히 창피한 일이다."

다시 선배 PD들에게 물었다.

<시사터치 오늘>, 공영방송 가능할까

KBS <시사투나잇>의 이지희 PD
 KBS <시사투나잇>의 이지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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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시사투나잇>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들이 있었나?
최: 편향적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어느 한쪽의 주장이었다.  특정 정치 지향을 가진 정당(한나라당)에서 말 나왔으니 이것 자체가 편향적인 것이고, 공영방송에서 이를 수용해 편성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편향이다."

- <시사투나잇>의 제작 원칙과 철학은 무엇인가?
강 : "<시사투나잇> 제작진이 가장 고민했던 것은 팩트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하되 우리가 할 수 있는 좀 다른 영역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가려져 있는 진실은 어떤 것일까. 수많은 기자들이 비중있는 팩트들은 이미 소개하는데 우리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팩트를 소개하자는 욕망이 있었다."

-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줄곧 공영방송과 어울리지 않는 프로그램이라고 비판했다.
최: "공영방송과 국영방송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교재로 쓰이는 책을 보면, 한나라당이나 정부에서 주장하는 공영방송은 국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 기계적 중립에 기반하는 것도 어디서 근거하는 건지 모르겠다. 공영방송의 목표와 가치는 건전한 여론 형성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다. NHK와 BBC 등은 모두 이를 표방한다."

"상처입은 후배 PD들, 떠나고 싶어한다"

KBS <시사투나잇>의 우현경 PD
 KBS <시사투나잇>의 우현경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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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측에서는 '<시사터치 오늘>로 존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 제작진은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꿔서 가자'는 사측의 의견이 전달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우 PD는 "공영방송 PD들이 만드는 시사프로그램의 가치를 죽여놓고 <시사터치 오늘>에서 구현한다? 그것이 가능할까?"라고 되물었다.

강 PD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 그런 사측의 입장을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내부에서 먼저 후배들이 떠나고 싶어한다. 상처들을 많이 입었다. 이게 이번 조치의 최대 손실이다. '외부 압력은 없다', '내부 결정했다'고 하는데, 결국 밖의 정치세력 주장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KBS의 현재 위치고 자화상이다. 이게 슬프다는 것이다."

최 PD는 "후속 프로그램을 맡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논의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PD들이 '차마 못하겠다'고 했다"면서 "정치적 논란 속으로 빠져들면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말 <시사투나잇> 부활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KBS <시사투나잇>의 최필곤 PD 등 제작진은 가을개편에서 프로그램이 폐지된 데 항의하며 '시사투나잇 must go on'이라고 적힌 검정 티셔츠를 맞춰 입고 블랙투쟁중이다.
 KBS <시사투나잇>의 최필곤 PD 등 제작진은 가을개편에서 프로그램이 폐지된 데 항의하며 '시사투나잇 must go on'이라고 적힌 검정 티셔츠를 맞춰 입고 블랙투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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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다. 일단 <시사투나잇> 폐지에 담긴 함의가 뭔지를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PD들이 좌절할 만큼의 함의가 담겨있고 이것을 사원 전체가 알아야 한다. 어디까지 어떻게 할 것이라고 대답하긴 어렵다."(강희중PD)

"KBS는 공적 재산이다. 돈내는 사람이 주인인데 주인이 우리 국민들이다. 주인들의 몫을 특정 정당이나 특정세력 특히 집권세력의 뜻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힘 닿는 데까지 이 부당함과 싸울 것이다."(최필곤 PD)

전날 아침 10시경부터 오늘 새벽 1시 무렵까지 회의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제작하고, 테이프 들고 뛰고, 방송했던 이들은 당일 아침 8시 다시 신관 1층으로 모여 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또다시 같은 장소로 가 '폐지와 존치 사이, 정치가 있다' '권력 간섭 허락하는 KBS 부끄럽다' '대통령이 불편하면 누구라도 폐지대상'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었다.

네 명이 맞춰 입은 검은색 티셔츠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시사투나잇,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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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사투나잇,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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