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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렵다, 비싸다, 잘 모르겠다, 쓰다…. 한마디로 전통주는 우리들 대부분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가끔 명절이나 제사 때 한 번씩 마시는 분기별 주류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술과 거리가 먼 민족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술 문화와 술 시장은 어느 분야못지 않게 발달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술 약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전통주와는 친할 수가 없는 것일까?

 

지난 9일 전통주가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는 전주 전통술박물관을 찾았다. 마침 '서화를 통해 보는 우리 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기획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락부락한 돌쇠형 인상일거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깨고 만난 박소영 팀장은 30대 가녀린 젊은 처자다. 그리고 전통주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술꾼'이다.

 

"우리 문헌이나 그림에 보면 술마시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당연히 술을 사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죠. 술을 마시는 때가 따로 정해져있는 게 아니라 술은 그냥 일상생활의 한 일부였어요. 술 종류도 굉장히 다양해서 농민들이 마시는 농주, 사신이 왔을 때 접대했던 술, 양반들이 마시던 술, 궁중에서 마시던 향운주, 그림 속을 들여다보면 무척 재밌어요.

 

일례로 신윤복의 <주사거배>와 김홍도의 <주막>을 비교해보면 양반들의 음주문화와 서민들의 음주문화가 한눈에 보이거든요. 이때 양반의 술이라고 할 수 있는 '호산춘'이 등장하죠. '춘'자가 붙는 술은 대개 3번의 덧술을 하여 100일 동안 빚는 고급 청주인데 문인 집안이나 상류사회에서 빚어 마시던 술을 말해요. 민속주의 대표격인 방문주도 이때쯤 등장하구요.

 

조선후기로 가면 암울했던 역사에 따라 풍경도 달라져요. 안중식 화백이 그린 <탑원도소회지도>라는 그림은 일제강점기 시절 그린 그림인데 새해 첫날 '도소주'를 마시던 풍경이 나와요. 우리 민족은 한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새해 아침부터 술을 나눠마시던 민족이거든요. 아마 그 시절 나라를 잃고 암울했던 그 당시 우리 민족에게 정체성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씁쓸하기도 하죠."

 

와인보다 다양한 전통주

 

 

박소영 팀장이 말하는 우리 전통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가양주'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모두 술을 만들어 먹었다. 집마다 전통과 풍습이 다르니 그만큼 다양한 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술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프랑스의 와인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얼마나 많은 재료를 응용해서 만들었는지 현대인들은 의외로 잘 몰라요. 고두밥, 죽, 백설기, 구멍떡, 송편, 인절미, 개떡… 굉장히 많은 재료를 이용해서 술을 만들어먹었어요. 또 술을 증류하느냐, 거르느냐에 따라서도 각각 다른 맛이 나오구요. 얼마나 숙성을 시키느냐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맛의 전통주가 탄생하는거죠."

 

조선초기 전성기를 맞았던 우리의 가양주 전통은 그러나 어느순간 뚝 끊겨버렸다. 일제가 발행한 '주세법' 때문이다. 일제가 직접 술을 만들어서 팔았기 때문에 술은 더 이상 여염집에서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술 주조 과정도 획일화, 단순화되었고 술은 아무 때나 마실 수 없는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음료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뚝 끊겨버린 우리 전통주의 명맥은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게임을 계기로 잠시 부흥하는 듯했으나 번성했던 조선초기의 가양주의 명맥을 되짚어보기에는 너무 멀리와 버렸다. 지금도 전통주의 맛을 찾으려는 움직임과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그 다양다종했던 가양주의 발자취를 좇다보면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다고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발굴을 해야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어려운 문제는 '무관심'이다. 전통주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관심, 그것이 더 무섭다고 했다.

 

"전통주라고 하면 다들 어렵게 생각하세요. 저 역시 처음에는 그랬죠. 그런데 직접 우리 술을 마셔보고 맛을 보니 전통주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거예요. 무엇보다 진짜 맛있어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전통주를 드셔본 분이라면 얼마나 감칠맛나고 얼마나 풍부하고 얼마나 비옥한지 아실 거예요."

 

눈내리는 날 마신 '향운주' 잊을 수 없어

 

맞다. '백문이 불여일미' 아무리 백번 설명해도 직접 한번 맛을 본 것만 못하다. 전통술박물관에서 근무하는 덕분인지, 탓인지 그 영향으로 '전통술꾼'이 되어버린 박 팀장은 눈이 펄펄 오는 날 맛보았던 향운주 맛을 잊지 못한단다. 화제를 바꿔 박팀장 개인의 전통술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2005년 3월 초였나봐요. 이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향운주례가 있는 날이었거든요. 그 날 3월인데도 눈이 내렸어요. 소나무 사이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시던 그 때의 향운주, 그때 전통주에 꽉 잡힌 거죠.(웃음) 그 꿈결같은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그러나 그렇게 맛있는 명품술이 탄생하기위해서는 지난하고 까다로운 술 주조과정이 뒤따라야한다. 얼렁뚱땅 대충 만든 술은 절대 그런 맛을 내지 못한다.

 

"전통주 만들기요? 어렵죠. 저도 전통술을 한 번 만들어봤는데 정말 솔직히, 너무 어려워요. 까다롭고 복잡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거든요. 술 만드시는 분들도 솔직히 술 만들다보면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고 고백하기도 하세요. 그러나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술을 만들어낸 사람만이 정말 참된 술맛을 알수 있는 것 같아요. 몇 개월씩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과 기대속에서 탄생한 술과 집앞 편의점에서 간편하게 몇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술의 맛이 같을 수가 있을까요."

 

사랑은 기다림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술은 사랑이다. 술은 기다림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곧 숙성이다. 때론 한잔의 술을 앞에 두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때가 있다. 박 팀장은 전통주를 직접 만들어보고서야 그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선조들의 시조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송강 정철의 시조중에서 술을 익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는 그런 내용의 시조가 있잖아요. 국어시간에 배울 때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정말 이제 알 것 같아요. 제가 특별히 고상해서가 아니라(웃음), 전통술을 만들어보면 그 의미를 저절로 알게되요. 정말 몇 개월씩 술을 만들다보면 정말 누군가 기다려져요. 좋은 술은 좋은 사람과 꼭 함께 먹고싶거든요. 이러니까 무슨 술 CF같네요.(웃음)"

 

'재 너머 성권롱집의 술 닉닷 말 어제 듯고/ 누은 쇼 발로 박차 언치 노하 지즐타고/ 아해야, 네 권롱 겨시냐 정좌수왔다  하여라'  - 송강 정철의 시조

 

술잔 앞에 두고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 있던가

 

"너무 부어라 마셔라하는 문화도 실은 우리 술문화가 아니예요. 우리 술문화는 반주문화 거든요. 천천히 여유있게 즐기면서 마시는 거죠. 무엇보다 우리 술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류거든요. 풍류가 빠진 술은 있을 수가 없죠."

 

젊은이들이 전통술과 멀어지게 되는 까닭을 박 팀장은 전통주를 접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이다. 자주 접하지 않으니 그 진가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술과 잘 어울리는 안주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문제제기를 했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는 안주류의 개발도 전통주의 대중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 박 팀장의 의견이다.

 

"사람들은 막걸리가 우리 전통주인줄 아는데 사실은 청주가 우리 전통주예요. 청주가 일본술(사케)인줄 아는 사람도 많은데 이것은 일제시대 때 왜곡된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어요."

 

덧붙이는 글 | 1.<서화를 통해 본 우리 술>전시회는 올해 12월 31일까지 계속됩니다. 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도슨트의 자세한 설명과 시음회도 준비되었다고 하는군요. 

2.아울러 11월 1일과 2일에는 '만추만취 가양주 대향연'이 전통술박물관에서 열립니다. 올 가을, 취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3. 이 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올립니다.  


태그:#전통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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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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