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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버는 돈만으로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성실히 일해서 생활비하고 아이들 교육비 내는 것도 빠듯한데 이리저리 아껴 조그만 목돈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어디서 귀신같이 돈 냄새 맡고 뺏으러 오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가족들에게 우환이 생겨 어렵게 모아놓은 목돈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통사정하는 친구놈들에게 내가 오히려 죽는 소리하며 빌려주고 못 받은 돈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10여 년 사회생활을 해왔지만 50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던 중 주위에서 집을 사서 돈 버는 사람들을 보니 소주가 절로 들이켜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큰 맘 먹고 1억에 가까운 돈을 빌려서 집을 한 채 장만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걱정 없었습니다. 이자가 부담스러워도 집값이 처음 샀을 때보다 두 배나 올랐기 때문에 정말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이자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서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고 있습니다.

팔려고 해도 팔리지도 않고 집 한 채 빼면 갖고 있는 자산도 하나 없는데 부채 줄일 방법도 없으니 정말 앞이 캄캄합니다. 당장 내년이면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그때까지 집이 팔리지 않으면 이자 때문에 아이 등록금도 줄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릴 판입니다.

게다가 금리도 계속 오른다니 지금도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난 상태인데 여기서 더 오르고 집도 안 팔리면 꼼짝없이 경매에 넘어갈 판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자되었다고 좋아했는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이아무개씨 재무 상담 내용 중에서

이런 말이 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사람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일은 없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성을 지배한 것이 바로 '나만 빼고 다 부자가 된다'라는 허탈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그런 허탈함이 2004년 이후 한국사회를 부동산 투자 광풍으로 몰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여론조사업체의 연말 직장인 대상 설문 결과 2006년 직장인들의 최대 화두가 바로 돈 이었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억 단위로 오르는 집값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전세를 살다 갑작스러운 전세금 인상에 이사를 반복해야 하는 서러움을 느끼고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값의 가파른 상승은 공포심을 주기에 충분한 현실이었다.

여기에 재테크의 유행과 함께 책으로, 재테크 기사로 사람들을 강하게 유혹했던 수많은 신조어가 등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빚도 자산이다'라는 말이다. 속담에 '빚은 소도 잡아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채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다. 그러나 재테크 유행과 함께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부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무책임한 선동이 평범한 삶 '위협'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자가 아니면 안 되고 그것은 부채 없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사진은 경기지역 한 부동산중개업소.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자가 아니면 안 되고 그것은 부채 없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사진은 경기지역 한 부동산중개업소.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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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를 부추기는 많은 전문가(?)들도 근거 없이 돈을 빌리라고 주문한 것만은 아니다. 2003년 이후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1억 원을 빌려도 월 이자가 40여 만 원 안팎이었다. 1억이라는 돈은 상당히 큰 돈인데 그에 비해 월 40여 만 원의 돈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여기기 충분했다.

거기에 지난해까지 부동산, 펀드, 주식 등 모든 투자 환경이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적은 이자를 내고 빌린 1억으로 집이나 주식, 펀드에 투자를 해서 수십 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는 환상이 상당했다. 바로 '빚도 자산이다'라고 외친 수많은 재테크 전문가들의 주장이 그럴 듯해 보인 현실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이아무개씨도 바로 그런 환상으로 올 초까지만 해도 부자 된 기분에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빚 내서 집에 저지르라'는 재테크 전문가들도, 이씨가 저축 한 푼 없이 오로지 부채 이자만 갚으며 집값 올랐다고 부자 된 기분에 소비를 늘려 마이너스 통장에까지 손을 대는 상황까지는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집값이 올랐어도 더 오를 것이란 믿음 탓에, 올랐을 때조차 집을 팔아 부채를 줄여 말 그대로 부동산 투자 차익실현을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단순한 산수 수준의 계산으로 '부채 이자는 낮으니 더 높은 수익을 내는 투자를 통해 돈 벌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황당하게 꼬셨을 뿐이다.

월급쟁이여, 사채를 써서라도 강남 진입하라?

상당수 사람들이 이씨처럼 쉽게 돈 벌려는 욕심으로 본의 아니게 부동산 투기를 한 셈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자신의 인생과 가족의 인생 전체를 걸고. 이들은 그나마 10여 년 어렵게 만들어 놓은 전세금마저 날려 버릴 위험한 상황으로 몰렸다.

그러나 이씨만 유독 어리석어서 그렇게 재테크 전문가들의 황당한 꼬임에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자가 아니면 안 되고 그것은 부채 없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상당히 보편적이다.

어찌 보면 이씨는 단지 보편적인 생각을 하고 보편적인 실수를 범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선동이 재테크 책과 방송, 신문 등 언론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진짜 문제였던 것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당시 3·30 대책으로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비율을 규제하는 일명 총부채 상환 비율(DTI) 정책을 발표했을 때 상당수 보수 언론은 재테크 지면에 '월급쟁이의 강남 진입의 꿈을 막았다'라는 식의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모 신문에서는 DTI를 피하기 위해 3개월간 사채를 빌려쓰고 다시 은행권 부채를 이용하는 방법을 우회적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바로 이런 식이다.

참여정부 당시 일부언론들은 정부가 대출규제에 나서자 '월급쟁이들의 강남 진입 꿈을 막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진은 강남의 한 아파트.
 참여정부 당시 일부언론들은 정부가 대출규제에 나서자 '월급쟁이들의 강남 진입 꿈을 막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진은 강남의 한 아파트.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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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시장에서 아파트 구입자금 1억원을 3개월 만기로 빌릴 경우 월이자와 수수료를 떼면 2000만 원 정도가 사채업자에게 간다. 그런데도 사채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은 고금리 부담을 상쇄할 정도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가등기에 필요한 서류만 갖추면 이틀 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인책이다.'

사채의 위험성을 알려도 모자랄 언론이 더 오를 것이니 고금리 부담을 상쇄할 만하다는 분위기의 글을 쓴 것이다. 이틀 내 대출 받을 수 있다는 편리성에 대한 친절한 언급까지 더했다. 바로 그런 보수언론들이 연일 우리는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이 미국처럼 과도하지 않아 한국판 서브프라임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를 한다. 미국과 달리 금융규제를 하는 정부에 쏟아내던 악담들을 기억한다면 너무 민망한 기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모 경제지에는 올 초 부동산 재테크 책을 하나 소개하면서 책 속 내용을 상당히 진지하게 발췌해 소개를 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황당해서 순간 패러디인 줄로 오해할 정도였다.

'정치인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라. 위정자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지역을 체크하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알아보라. 배드민턴이나 탁구모임에는 안 가는 게 나을 듯하다. 부동산에 투자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다. 정보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
강남 복부인을 이용하라. 술자리를 만들어서 정보를 캐내자. 술값 투자해 정보를 캐내라. 취중진담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황당한 내용을 경제지에서 진지하게 접해야 하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최고의 지성이어야 할 경제 언론이 투자자를 위한 정보로 진지하게 다루는 내용이 강남 복부인을 따라다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만큼 재테크 광풍이 이성적 판단을 접은 수준이었고, 믿을 만한 경제지의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는 빚을 예찬한다'는 재테크 말말말

주택담보 대출 고정금리가 10%대를 넘어섰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적인 신용경색 분위기에서 은행채 금리 상승이 CD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신용경색이 우리나라 금융권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연초부터 불안한 환율이 최근에는 위기설에까지 휩싸인 상황이다. 환율 정책의 실패로 파생 금융상품에 투자했던 중소기업들이 흑자 도산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실물경기도 불확실하다. 여기에 금리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담보대출 부실이 부동산 폭락으로 이어져 한국판 서브프라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가정 경제는 물가와 금리가 올라 마이너스 가계부인데 실물경기 부진으로 실직위험까지 증가하는 위험천만한 현실이다. 게다가 주가하락으로 펀드는 반토막이고 부동산은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5개월 전 어느 재테크 책의 추천 서평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상당수 분량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사인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미 미국발 금융위기의 심각성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아슬아슬한 뉴스가 악재가 되어 주식시장의 상승이 멈춰섰던 분위기였다.

눈에 띄는 목차가 있었다. '부자는 빚을 예찬한다.' 내용은 볼 생각도 안 했다.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만에 하나 부동산 시장이 예상 외로 폭락할 경우 이런 류의 선동은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조용히 조언을 해주었다.

개인의 투자실패를 두고 책이나 언론 탓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문화가 건강하게 자리잡고 시장이 건전해지기 위해서라도 전문가들의 '말의 책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자성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이제 금리에 대한 전망, 경제 위기의 해소가 어느 시점일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락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닥론'과 '위기가 기회'라는 식의 말로 보통 사람들의 막연한 부자와 일확천금의 꿈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투자의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라지만 돈 앞에서 늘 허탈한 보통 사람들에게 달콤한 논리로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재테크의 무분별한 '말'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묻고 제어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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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분별한 재테크,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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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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