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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자그마한 원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자녀가 생기면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하려고 결혼 후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다 작년 8월에 그동안 모아온 5000만원을 국내펀드와 해외펀드에 나눠서 투자를 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후였지만 오히려 주가가 빠진 그때가 기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아서 한 1~2년만 펀드에 넣어두면 넓은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입하고 나서 한 두달은 바닥에 잘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익률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돈은 3000만 원 남짓한 금액이 되어버렸습니다. 자꾸 떨어지는 수익률을 보면서 중간에 몇 번이나 환매할까 생각했지만 다시 오를 거라는 말에 손해본 돈이 아깝기도 해서 기다렸습니다. 지금도 계속 고민이 됩니다. 이젠 빠질 만큼 빠졌으니 곧 다시 반등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고 금융위기가 장기화되서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주가지수가 다시 1400선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걸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몰락의 길을 가고 다우지수가 10000선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걸 상상하는 사람도 없었다.

서브프라임 문제가 이미 불거진 후였음에도 그것이 지금처럼 대형금융위기로까지 번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 잘 나가던 주가가 처음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는 단지 잠시 조정을 받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잠시 동안의 조정만 끝나면 곧 다시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지난 1년간 주가는 잠시 반등만 했을 뿐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주가가 이렇게 많이 빠질 줄 알았다면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펀드에 들어가 있는 돈을 조정해서 다른 안전자산으로 옮겨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 경제라는 것이 워낙 변화무쌍해서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시장 주변에서는 주가가 빠지면 빠질수록 바닥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주가 바닥론, 반등론이 지금이라도 털고 나가야지하는 사람들의 돈을 계속해서 묶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불안해서 이제라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앞으로는 괜찮을 건데, 지금 나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기대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투자자들이 D증권 객장 전광판을 통해 미국 구제금융안 부결로 주식이 급락했다는 소식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투자자들이 D증권 객장 전광판을 통해 미국 구제금융안 부결로 주식이 급락했다는 소식을 바라보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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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등장하는 바닥론

작년 10월 2000선이 무너졌을 때도, 올 초에 베어스턴스 사태가 터졌을 때도, 얼마 전 페니매이와 프레디맥 사태가 터졌을 때도 바닥론은 늘 있어왔다. '어느 정도 주가가 빠졌으니 지금이 투자적기다'라는 말은 주가가 빠질 때 항상 등장한다.

물론 그동안 바닥론만 있어왔던 것은 아니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라는 비관론 역시 그동안 계속 제기되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는 우리 태도다. 기본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경기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주가가 올라서 내가 가입한 펀드의 수익률이 좋아졌으면 한다.

그러다보니 여러 의견들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 소위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한다. '경기가 안 좋아질 것이다',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내가 가진 자산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반갑지 않은, 원하지 않는 이야기이기에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반면에 '이제 안 떨어질 것이다', '지금이 바닥이다, 투자적기다'. '앞으로 오를 것이다', 이런 말들은 내 돈이 좀 늘어났으면 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딱 맞아떨어지기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는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들의 이해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투자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로서도 비관론이 반가울 리가 없다. 당장 금융상품의 판매가 급감할 것이 뻔하고 자칫하면 '펀드런'이 발생해 금융회사의 수익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가능하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상황이 긍정적이라기보다는 투자하는 사람들과 판매하는 금융회사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금융회사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닥론, 반등론을 들고 나오고 투자자들은 그 말을 받아들여 환매시기를 늦추게 된다. 어찌보면 지금의 바닥론이나 낙관론은 금융회사나 투자자로서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희망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다.

단기에 필요한 돈은 안전자산으로

문제는 기대대로 되지 않았을 때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이 아니었을 때, 바닥이라는 말만 믿고 '이번엔 정말 맞겠지' 하는 생각에 환매를 미루고 추가납입을 하고 신규가입도 했는데 주가가 더 떨어질 때를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위 사례자의 돈을 포함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투자하는 돈은 그냥 여유 있는 돈이 아니다. 한 푼 한 푼이 힘들게 벌어들인 돈이고 가족과 미래를 위해서 '꼭 써야하는 돈'이다. 쓰다 남아서 없어도 되는 돈이 아닌 어딘가는 분명히 써야하는 돈, 즉 없어서는 안 되는 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돈 쓸 계획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고 펀드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생각하고 기다린다. 수익률이 계속 곤두박질쳐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손실이 났으니 아까워서 차마 환매는 할 수 없고, '언젠가는 오르겠지' 하고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내가 이 돈을 언제 써야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보다는 현재 손실액만 생각한다. 그러다가 바닥론, 반등론이 들려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경제는 우리가 바라는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는 우리의 예측과 기대를 너무 쉽게 벗어나버린다.

이 때 바닥인 줄 알고 기다렸다가 우리가 까먹는 것은 단순히 돈만이 아니다. 그 돈은 가족을 위해 오랜 시간 힘들게 일 해서 번 돈이고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 어딘가에 써야 하는 돈이다. 그런 돈을 까먹는다는 것은 그동안 그 돈을 벌기 위해 힘들게 고생한 시간과 미래에 가족들과 함께 이루려 했던 꿈을 동시에 까먹는 끔찍한 일이 된다.

오랜 시간 고생한 돈일수록, 가족과 함께 꾸었던 꿈이 클수록, 돈을 까먹어서 부딪히는 현실은 극단적인 현실이 된다. 그래서 가정의 돈 관리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운용해야 한다. 바닥이라서, 앞으로 반등해서 수익률이 회복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지더라도 나와 내 가족이 그동안 노력한 수고와 미래의 꿈을 까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위 사례자 역시 마찬가지다. 막연히 떨어지는 수익률에 불안해하고 '좀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단기간에 써야할 돈이 무엇이고 얼마의 자금이 필요한지 꼼꼼히 따져봐야한다.

이사 갈 자금으로 준비한 돈이라면, 언제 이사를 가야하는지, 그리고 이사가는 데 필요한 최소 금액이 얼마인지를 따져봐서 1~2년 안에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이사자금만큼은 조정을 해서 안전자산으로 옮겨놔야 한다.

펀드 수익률이 회복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씨가 계획한 시기에 이사자금을 차질없이 준비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재무설계, #펀드, #바닥론,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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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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