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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멀리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리한 반론 대신 슬쩍 내밀고 싶은 책이 있다.
 
<서울, 이런 곳 와 보셨나요? 100>은 집과 학교, 직장 근처만 배회하며 서울이 별 볼 일 없는 도시라고 생각해온 '서울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서울은 가까운 곳만 고르더라도 고르기가 곤란할 정도로 여행지가 많다.
 
틈나는대로 카메라를 들고 도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글을 쓰는 블로거라면 여행 정보가 조금 식상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쭉 읽다보면 책을 덮을 때쯤 '음, 그래도 잘 골랐군' 할 수도 있겠다. 
 
수많은 후보 장소 중에서 100곳을 골라낸 지은이의 노력에 고개를 100번쯤 끄덕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가회동 어느 골목 감나무 아래에서 내려다 본 회색 지붕들.
창덕궁 후원의 짙은 숲과 정갈한 정원의 멋.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이 있는 정동길.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며 채워둔 남산타워 아래 자물쇠 펜스.
길상사, 수연산방, 최순우 옛집, 간송미술관이 이웃사촌처럼 가까이 사는 성북동.
끊어진 성곽 아래 골목길 사이사이에 벽화가 그려진 낙산.
한강에 붉은 기운이 번지는 해질 무렵의 하늘공원.
미술관과 방앗간, 커피상점과 이발소가 이웃한 산동네 부암동.
서울 하늘에서 간판 없이 초록을 양껏 누릴 수 있는 홍릉수목원까지. 
 
특히 홍릉수목원처럼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곳 소개는 더 좋았다. 서울에 그런 평지의 숲이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는데, 아직 다녀오지 않은 분들도 가보면 감격스러울지 모르겠다. 선유도나 남산, 하늘공원, 낙산공원, 부암동 등은 이름이 많이 알려져서 익숙하지만 막상 마음 먹고 출발하지 않으면 쉽게 가지 못하게 되는 곳들이다. 책에는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 하기 좋은 카페와 문화공간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창덕궁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지은이의 배려가 고마웠다. 창덕궁은 사계절 두루, 탐방 코스별로 여러번 다녀와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던 곳이기 때문이다. 창덕궁은 지난 봄 나와 딸아이 쿠하가 서울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곳이고, 특히 덕혜옹주 이야기로 인해 더 특별한 추억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하지만 낙선재처럼 조선 왕조의 마지막을 감내했던 공간에 대해 역사적 설명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일본에서 돌아와 죽을 때까지 그곳에 살았던 덕혜옹주와 그를 비롯한 조선 왕조의 후손들이 최근까지 살던 곳이라는 설명 한 줄만 더 해줬더라도 건물만 남은 빈 집이 아니라 지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느껴졌을 텐데 말이다.
 
서울을 떠나자, 서울이 보였다
 
서울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정작 서울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엄마인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자라고 있는 딸아이 쿠하에게 엄마 고향을 소개하고 싶었다.
 
서른 여섯 곳을 골라 소개글을 썼는데 이 책에 소개된 곳과 절반 정도는 같고, 절반 정도는 다르다. 같은 장소를 읽을 때는 '그래, 거기 좋았지'하며 추억이 떠올랐고, 다른 열 여덟 곳은 아직 다녀오지 않았거나, 잘 모르는 분들에게 새로운 장소를 소개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이 데이트 코스를 고민할 때, 한글을 아는 외국인이 서울의 어디가 좋은지 물을 때 선물하기 좋은 자료다. 관광안내서에 미처 싣지 못한 서울의 진짜 얼굴이 보기 좋은 사진으로 담겨 있으니, 우리 모녀처럼 작정하고 서울을 여행하려는 '지방 거주 서울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서울을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도시, 매력 없는 도시라고 자학에 가까운 평가를 하는 서울 사람들에게도,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사건 때문에 서울을 두려운 곳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어쩌면 서울을 다시 보게 해주는 책이 되어줄지 모른다.
 
앞으로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여행할 잠정적인 여행자들에게 소개 가능한 곳을 100개 정도 요약 정리해주니, 서울이 고향인 입장인 사람들은 한결 편해질 것 같다.
 
이 책을 본 뒤로 나는 내가 사는 이 작은 도시(도시라고 명명된 곳이 작을리가 만무하지만, 서울에 살던 사람들이 느끼는 지방 도시는 작게만 느껴진다)도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다.
 
참, 낙산은 재건축과 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예쁜 벽화가 그려진 집들조차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고 낙산이 마음에 든 독자라면, 제일 먼저 낙산부터 다녀올 일이다.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박상준 지음, 허희재 사진, 한길사(2008)


태그:#서울, #여행,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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