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도심여행지 95곳과 서울 근교 여행지 5곳을 다룬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100>
 서울 도심여행지 95곳과 서울 근교 여행지 5곳을 다룬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100>
ⓒ 한길사

관련사진보기


언젠간 나올 줄 알았다. 역사만 '미시사'가 있는 게 아니다. 여행도 '미시여행'이 있다. 멀리 가는 여행이 아니라, 가까이서 즐기는 여행이다. 시간과 돈에 쫓겨 헐레벌떡 하는 외국여행보다, 느긋하게 살펴보는 우리 동네 여행이 오히려 깊이가 있을 수 있다.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100>(한길사 펴냄)은 서울을 주제로 한 미시여행서다. 서울에서만 볼 만한 곳 100군데를 찾아냈다.(정확히 말하면 경기도 여행지가 다섯 군데 있다.)

'에이, 서울에 볼 만한 곳이 무슨 100군데나 있어? 억지로 숫자만 채운 게 아니야'라고 수군대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책은 그 소란을 한꺼번에 잠재울 만큼 제대로 명소를 골랐다.

서울 가회로에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소나무 가로수, 서울역 근처 중림동에 있는 50년 된 수산시장, 영업이 끝나면 그래피티(거리벽화) 아트를 선보이는 청계천 을지로 상가, 전남 담양이 부럽지 않은 양재동 문화예술공원의 메타세콰이어길 등은 서울사람도 잘 모를 만한 동네 명소들이다.

사람들 발길이 너무 잘 닿는 곳에 있어 오히려 묻힌 곳들이다. '좋은 것은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대한 은근한 반박이다.

응봉산은 서울 성동구에 있는 95미터짜리 돌산이다. 쉽게 말해 동네 뒷산이다. 여기서 글쓴이는 아주 멋있는 야경을 찍은 뒤 "야간 출사지 가운데 으뜸"이라고 치켜세운다. 소개된 사진을 보면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조선 태조의 매 사냥 이야기와 마침 산책 나온 노부부를 엮는다. 4월초 개나리가 만개하고, 해맞이 명소라는 정보가 곁들여지면, 응봉산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올라간다.

동네 개천인 '불광천'도 명소로 등장한다. 발 닿는 구간이 5-6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한 이 조그마한 천에 뭐 볼 게 있을까 싶지만, 글쓴이는 은행나무의 샛노란 빛깔과 벚나무의 주홍빛이 고루 섞이는 가을에 이만한 비경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고 강조한다.

명동 유네스코 빌딩 '작은누리'와 안국동 아름다운 가게 '하늘정원'은 건물 옥상이다. 주말이면 수십만 명이 모이는 이 동네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런 곳 몰랐지' 하는 글쓴이의 미소가 느껴진다.

책엔 동네 학교까지 명소로 나온다. 경희대 캠퍼스가 그곳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연애하는 길이라고 해서 붙은 '키스로드', 선녀가 가야금을 탄다는 뜻에서 붙여진 '선금교', 경희대생만 아는 오르막길 '헐떡고개' 등에 대한 정보가 곁들여지니 확실히 학교가 재밌게 느껴진다.

전통과 느림, 정 등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여행

책에서 소개된 몽촌토성.
 책에서 소개된 몽촌토성.
ⓒ 한길사

관련사진보기

글쓴이는 '소박함'에 강조점을 두고 여행지를 골랐다. 수많은 프랑스 요리점 중에서 프랑스 가정식 백반을 내놓는 곳에 눈길을 두고, 탁자가 하나밖에 없는 카페를 호평한 것도 그래서다. 물론 개중엔 가격이 만만치 않은 곳도 있다.

글쓴이가 말하는 소박함이 단지 '값싼'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과 느림, 정 등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포함한다. 전통에 대해선 유난히 짙은 애정을 바친다. 전통에 대해선 그만한 값을 치뤄야 한다는 게 글쓴이의 생각이다.

맛이 심심해 한 번에 실망할 만한 식당도 있다. 책에 보면 세 번을 가야 겨우 맛을 알 수 있는 냉면집이 나온다. 한 번 보고 쉽게 판단하는 요즘 세태에선 욕 먹을 만한 집이다. 글쓴이는 걱정이 됐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으며, 몇 번 더 가본 뒤 판단할 것을 주문한다.

글쓴이가 지닌 또 다른 미덕은 '사소함'이다. 큰 것보다는 아주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커피점 '커피스트'에선 화장실 가는 길 투명한 바닥 아래 발굴터를 소개하고, 카페 '소원'에선 다락에 '별궁'이란 애칭을 붙였다.

'소박함'과 '사소함'을 좋아하지만 글쓴이의 취향이 꼭 한 쪽에 치우쳤다고 보긴 힘들다. 글쓴이는 잡식성이다. 어느 한 쪽을 편들기보다는 두루 맛보고 살펴보길 권한다. 그래서 책의 또 다른 특성은 '조화'다.

책엔 김구가 살았던 경교장도 나오지만 이승만이 살았던 이화장도 나온다. 거의 치장을 하지 않은 카페도 나오지만, 개성 넘치게 꾸민 카페도 나온다. 여행지 중엔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1인당 8만원을 내야 하는 곳도 있다.

글쓴이의 취향인 듯도 하고, 다양한 취미를 가진 독자층을 고려한 마케팅 전략인 듯도 하다. 하지만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글쓴이가 말하는 것은 '공존'이다.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카페와 대성이용원 풍경이 떠오른다. 한복 입은 할아버지와 스키니진의 손녀 마냥 둘은 나란히 손을 잡고 서 있다. 고인이 된 대가 김환기 화백의 작품과 실험적인 젊은 작가의 작품을 한 동네에서 만난다. 세월의 흐름처럼 그 걸음이 잦아지는 걸 어찌 막을까. 다만 부암동의 고유한 정취와 잘 녹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보는 가득, 사람이야기 부족한 점 아쉬워

책은 무려 935쪽이다. 100곳을 담으려고 했으니 당연한 분량이다. 매주 토, 일마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2년이나 걸린다. 100곳 이상 담으려고 해도 가능했을 것이다. '서문'에서 '200, 300으로도 모자란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아마 100곳 이상 되는 여행지에서 고르고 골라 책에 담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좁은 지면에 정보를 구겨 넣고자 하는 강박관념이 느껴진다. 대신 사람이야기는 부족하다.

창덕궁 후원을 이야기할 때 덕혜옹주, 영친왕이 나온다. 패망한 나라 백성으로서 덕혜옹주는 비극 그 자체다. 한 대목만 적었어도 독자는 가슴 '싸'한 느낌으로 창덕궁을 거닐 것이다.

창덕궁 소요정 대목에선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대통령이 직접 공장 기계를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대목에서 호기심이 생겼지만, 저자는 그냥 스치고 지나간다.

글쓴이 소개와 고칠 곳
박상준이 글을 쓰고 허희재가 사진을 찍었다. 박상준은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와 영화주간지 <씨네버스> 취재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프리랜서 여행 작가로 일하고 있다. 영화주간지 <씨네버스> 사진기자로 일했던 허희재는 지금은 영화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다. 최근 영화 <신기전> 현장 사진을 찍었다.

책은 꽤 긴 책이지만 오타가 적다. 꽤 꼼꼼하게 교정을 봤음을 알 수 있다. 단 몇 곳을 꼽자면, 성모 모리아(->성모 마리아, P172), 백안마루(->백악마루, P560), 부안동(->부암동, P762), 팸플렛(->팸플릿, P850)이 잘못 쓰였고, P843 정보란엔 역이름이 빠졌다. P109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아리랑'은 '한때 우리나라 최초 영화로 알려졌던 아리랑'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지금은 1919년작 '의리적 구토'가 1926년작 아리랑보다 앞선 영화로 알려져 있다.
'길상사' 편에 나온 시인 백석과 자야의 연애담과 '이화장' 편에 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사람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정보에 비하면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 책이 단지 일반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에 대한 시각을 달리 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런 점은 더욱 아쉽다.

'서울 나들이 실용백서'는 앞에서 소개한 여행지를 단지 한 번 더 반복한 듯하여 아쉽다. 물론 책을 읽다가 '후닥닥' 책 뒤로 가서 찾아보기엔 아주 편하다.

따지고 보면 내 취향일 수 있다. 해당 여행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유익하다. 여행지 정보가 잘 소개돼 있고, 가는 길이나 전화번호 같은 게 잘 정리돼 있다.

글쓴이는 서울 도시 안에서 훌륭한 여행지 100곳을 찾아냈다. 어디 서울뿐이랴. 부산, 대구, 광주, 인천, 제주, 강릉 등 전국 어디서도 이런 곳들이 즐비하다. 앞으론 지역 도심 여행지 100이 연속으로 나오길 꿈꿔본다.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100 -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가볼 만한 곳

박상준 지음, 허희재 사진, 한길사(2008)


태그:#서울, #도심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