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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성벽 길
 수원화성 성벽 길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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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이 정조가 건설한 신도시라고 하지요. 그래서인가, 화성 행궁에서 정조의 흔적을 아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긴 화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조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화성은 정조의 사부가(思父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세자가 없었다면 화성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정조를 생각하면서 사도세자를 생각하면서, 수원 화성을 찾았습니다. 화성 행궁에는 뒤주가 세 개나 놓여있더군요. 뒤주에 갇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나요. 뒤주 안을 들여다보니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 앉아있을 크기였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체험이라니요. 절대로 해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도세자가 죽은 바로 그 뒤주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지요.

17일, 수원 화성 성벽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화성의 둘레는 5744m랍니다. 산책하듯 걷기에는 적당한 거리지요. 길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드물어 부담 없이 걷기에 아주 좋습니다.

이번 도보여행의 출발지는 팔달문입니다. 이 곳이 남문이라지요? 팔달문은 도심지 가운데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 문 양쪽으로 성벽이 이어져야 하는데 끊겨 있습니다. 덕분에 화성 성벽길을 다 걷지 못했습니다.

화성 행궁을 둘러보고 서장대로 올라가 서쪽 성벽길을 따라 걸었기 때문에 서장대에서 남쪽으로 가는 성 길을 걷지 못한 것이지요. 팔달문에서 출발해 성벽 길을 한바퀴 돌아 팔달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화성 행궁에는 정조의 흔적이 남아있다

서장대
 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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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에서 화성 행궁이 가깝습니다. 화성 성벽 길을 걷기 전에 화성 행궁을 둘러보았습니다. 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을 행궁이라고 한다지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이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간 김에 행궁 옆에 있는 화령전에도 갔습니다. 정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곳이지요. 행궁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둘러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입장료는 1500원입니다. 오전 11시에 도착하면 신풍루 앞에서 무예24기 공연을 볼 수 있습니다.

화성 행궁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갑니다. 주차장 뒤에 화성열차를 타는 곳이 있습니다. 화성열차 타는 곳으로 가려면 주차장 뒤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화성열차를 타면 다리품을 팔지 않고도 화성을 둘러볼 수 있답니다. 한번쯤 타보는 것, 좋겠지요? 특히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니 매점이 나오고, 길 건너편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효원약수터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약수터에는 물을 잠그는 장치가 있더군요. 약수터에 그런 장치가 있는 건 처음 봅니다. 물을 먹지 않을 때는 잠갔다가 먹을 때는 여는 것이지요. 물을 낭비하지 않아 좋긴 하지만 어째 수돗물 먹는 느낌이 듭니다. 약수터는 물이 콸콸 넘쳐야 제 맛이지 않나요?

약수터 위로는 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그 사이로 계단이 있지요.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서장대가 나옵니다. '장대'는 화성에 주둔하던 군사들을 지휘하던 곳이었답니다. 동쪽과 서쪽에 두 개 있는데 서쪽에 있어서 서장대인 것이지요.

서장대에는 정조 시대의 장용위 군사는 없고 대신 조선시대 복장을 한 사람이 둘 있더군요. 이 사람들, 보초를 서는 분위기는 아니고 서장대 마루에 앉아서 한적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물 잠그는 약수터, 절약은 좋지만...

수원화성
 수원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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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성벽 길에는 서장대를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는데 그 곳에는 넓은 마루가 있었습니다.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더군요.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라고 쓴 표지판이 어찌나 반갑던지, 냉큼 신발을 벗고 올라갔답니다.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요. 게다가 전망은 어찌나 좋은지 수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한 여름에 피서하러 멀리 갈 것 없이 이 곳에 오면 되겠다, 싶어지더군요.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가족인 듯 보이는 일행이 과일을 깎아서 나눠먹고 있었습니다. 아이 둘은 마루에 엎드려 화성을 소개하는 팸플릿을 보는 중이었지요. 신문을 보는 사람도 있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부러워졌답니다.

서장대부터 성벽길을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서쪽으로 쭉 가면 화서문이 나오고 장안문이 나올 것입니다. 성벽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흙길일 줄 알았더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네요. 포장도로보다는 흙길이 걷기에는 더 좋지요. 피로감도 덜 느껴지고.

서이치를 지나고 서포루를 지납니다. 성벽은 아주 길게 이어져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곡선 같습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성벽을 쌓으려면 공이 많이 들었겠지요? 그래서 정약용이 거중기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정약용이 만들었다는 거중기는 화성 행궁 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햇볕이 상당히 따갑습니다. 9월인데도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성벽길에선 햇볕을 피하면서 걸을 수 없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겠지요? 햇볕을 가릴 수 있는 모자나 양산을 준비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화성 성벽길은 흐린 날이나 비가 약간씩 흩뿌리는 날 걸으면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산 쓰고 성벽길을 걷는 맛, 아주 괜찮거든요.

화서문을 지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초가집 모양의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매점이라는데 자세히 보니 음식점입니다. 콩국수·잔치국수·빈대떡 등을 판답니다. 이 곳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해도 되겠네요. 값이 저렴합니다.

구경 거리가 너무 많아 걷기에 집중 안 되네

화홍문
 화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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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공심돈을 지나니 잘 다져진 흙길이 나옵니다. 성벽 길은 길게 이어져있고, 가는 길에 일정한 간격으로 기가 꽂혀 있습니다. 깃발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장안문을 지나 북동적대에 이르니 포 한 대가 보입니다. '홍이포'라고 한답니다. 적들이 침입하면 제 역할을 했을 포가 이제는 한낱 전시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저 포에 포탄이 장전될 일이 절대로 없겠지요?

도보여행이면 걷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화성 성벽길은 구경할 게 너무 많아서 걸음이 자꾸 더뎌집니다. 하다못해 성벽길 위 담쟁이 넝쿨도 볼 만 합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성벽 위에 올라가 낫으로 넝쿨을 걷어내고 있습니다. 아직 푸른빛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잎들이 달린 넝쿨을 거두는 게 그리 좋아 뵈지는 않더군요.

성벽길을 걷다보니 성 안을 걷는 건지 성 밖을 걷는 건지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아래에 양쪽으로 길이 나 있기 때문이지요. 정조가 세운 화성 신도시는 거대한 도시 안에서 흔적만 겨우 남긴 채 사라져 버렸고, 성벽은 성 안과 성 바깥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로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표지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100년의 세월이 한 줌의 먼지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아마도 정조는 자신이 세운 화성 신도시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성벽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걷습니다. 이곳에서는 절대로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것 같은 성벽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니까요.

수원천 위에 세워놓은 화홍문을 지나고, 동장대를 지나고 동북공심돈을 지나고 동북노대도 지나 창룡문에 닿았습니다. 동문이지요. 걷기가 조금 지루해진다 싶어질 무렵 봉돈이 나타납니다. 일종의 봉화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답니다. 특이한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봉돈을 지나고 동포루를 지나고 동삼치를 지나고 동남각루까지 지났습니다. 지동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계단 끝에서 성벽 길은 끊어졌습니다. 더불어 이 날의 도보여행도 끝났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니 지동시장입니다. 뜨거운 오후의 햇살이 지동시장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문득 성벽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번잡한 저자거리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길 끝에서 시장을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세계와 산 자들의 세계는 종이 한 장 차이라지요?

수원화성 성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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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보여행, #수원화성, #정조, #화성행궁, #서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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