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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가로등 없는 길을 달린다는 것은…

도로 경찰소다! 감속! 감속! 다행히 다들 건물 안에 있는지 조용히 통과,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잠시 후 순찰차가 요란한 불빛을 내뿜으며 뒤쪽에서 달려온다. 순간 급브레이크를 잡고 손으로 조나단의 눈을(전조등) 가리고 어둠의 일부인 것처럼 서 있는다. 마네킹 작전 성공! 경찰에게 제제를 받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문제다. 

야간 주행
 야간 주행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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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지점. 갓길이 사라지면서 오르막이 나타났다. 2차선이지만 가로등도 없는 길이라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두 귀를 열 수 있는 한 크게 열고 뒤에서 차 오는 소리가 들리면 도둑이 경찰을 발견한 것처럼 재빨리 도로 바깥쪽으로 조나단의 손을 꼭 붙잡고 까치발을 한다.

처음에는 '페달을 밟다가 혹시나 차가 날 피하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에 조나단과 산책을 시작했다. 갑자기 산 길 도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 대형 트럭이라도 오는 건가? '칙칙 폭폭' 기차다. 이 밤에 기차가? 하기는 자전거도 가는데….

사실 산책하는 여유 대신에 사냥꾼을 피하는 먹잇감처럼 두려움이 몰려왔다. 걸음이 느려질  때쯤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은 또 언제 이렇게 몰려왔는지 모르겠다. 아! 저기 빛이 희미하게 보인다. 3km의 오르막이 30km처럼 느껴졌다. 머리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것처럼 축축하고, 입은 냉장고를 연 것처럼 하얀 김을 만든다.

왼쪽이 차량 불빛, 오른쪽이 조나단의 조명
 왼쪽이 차량 불빛, 오른쪽이 조나단의 조명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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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시10분. 140km 지점. 작은 마음. 콧물이 줄줄, 손이 차갑고, 입김 공장 실적 우수. 마찰이 많은 엉덩이 부위가 땀띠로 화끈거리지만 다리 움직임은 더 부드러워졌다. 마스크, 긴 장갑을 키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개애굴', '개애굴', 청개구리들이 자기 전에 마지막 목을 푸나 보다.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부웅'하며 트럭이 지나간다. 내일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밤 늦게까지 사람 소리가 들리는 집도 있다. 음…. 스키 장갑도 소용이 없구나, 어디 오뎅 파는 곳은 없나? 라면에 김치 파는 편의점은?

03시. 168km지점. 도로 오르막. 몸은 덥고 발이 시리다. 마스크는 벗어도 눈가에 잠은 벗지 못한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조금 내려앉기 시작한다.

03시33분. 169km지점. 도로 오르막 위. 아! 라스베가스가 생각난다! 빛의 물결이 지평선을 가득 메운 것 같다. 도시의 불빛이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의 선을 이루기 위해 반짝이는 광경에 반사적으로 삼각대를 설치한다.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도시의 야경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도시의 야경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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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주유소다!

04시34분. 178km지점. 도로 평지 위.  어, 어! 저건 진짜 코펙(COPEC 주유소) 간판이랑 비슷하다. 이번에는 광고 간판이 아니겠지? 맞을 거야? 맞아야 하는데…. 아, 맞다! 주유소다!

이런 반가운 녀석! 삼각대 앞으로! 찰칵! 24시간 운영하는 주유소 안 식당은 한창 청소중이다. 조나단을 입구에 세워놓는데 마음 속에서 뭔가 뜨거운 물이 갑자기 냄비 뚜껑을 뛰쳐나가는 것처럼, '무엇'인가가 '울컥'하고 뛰쳐나간다.

머리는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 조나단이 엉덩이를 살짝 올리며 삼각대를 몸에게 보여준다. 타이머를 맞추고 조나단 왼손을 가볍게 붙잡고 오른쪽 무릎을 꿇는다.   

코펙 주유소에 도착한 뒤에
 코펙 주유소에 도착한 뒤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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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펙 주유소에 도착한 뒤에
 코펙 주유소에 도착한 뒤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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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에는 '찬바람'이 불지 않는다. 몸에 붙어있던 '찬기운'들은 '온기'가 오는 걸 보고 서서히 떨어져 나가며 몸을 한번씩 흔들어댄다. 간식을 먹고 해님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05시. 눈이 침침하고 따끔거린다. 콧물도 조금 나온다. 허벅지 바깥 쪽이 두드림에 반응한다. 허리, 어깨가 찌뿌드드하다.  

05시47분. 콧물이 더 나오고 눈이 더 침침하다.

06시18분. 해는 집에 일이 생겼는지, 늦잠을 잤는지, 쉬는 날인지 몰라도 아직이다.

07시. 아, 드디어, 빛이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 나가자, 산티아고로!  

아침서리가 내려 앉은 밭
 아침서리가 내려 앉은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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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풍경 같은 아침
 영화 속 풍경 같은 아침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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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가자, 산티아고로!

08시19분. 193km 지점. 산티아고 14km를 알리는 표지판 앞. 이제 30분이면 산티아고다.  갑자기 산티아고를 한번 '뻥, 차 주자'라는 생각이 든다. 삼각대를 20m 뒤에 세운다. 가드레일 위에 올라가서 힘껏 두 다리에 힘을 모으고 점프! 아….

파란색 큰 표지판은 3개의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산티아고는 맨 위에 있었고 나의 점프력은 제일 아래 목적지에도 1m 모자랐다. 나의 점프력은 개구리였고, 산티아고는 캥거루의 점프력(한번에 점프하는 거리가 5∼8m 정도이지만 최대 13m까지도 점프하는 경우도 발견된다고 한다. -자료출처: 두산 백과사전)을 요구하고 있었다. 출근길 운전자들이 쓱 보고 지나간다. 하하. 이거 뛰고, 달리고(카메라를 향해) 서비스 제대로 하는구나.   

산티아고 표지판을 이단 옆차기로 차려는 필자
 산티아고 표지판을 이단 옆차기로 차려는 필자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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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도착의 감격을 표현중인 필자 1
 산티아고 도착의 감격을 표현중인 필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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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도착의 감격을 표현중인 필자 2
 산티아고 도착의 감격을 표현중인 필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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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도착의 감격을 표현중인 필자 3
 산티아고 도착의 감격을 표현중인 필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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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 골인지점 도착(칠레영락교회 앞). 주행거리: 207km, 주행시간: 15시간. '희망여행

제1회 울트라 자전거 대회 1등'으로! (참가1, 완주1). 태극기를 보며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한다. 샤워가 필요해 보였는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곳으로 먼저 안내한다.

예배 후에 아까 그 분이, 머무는 동안 식사는 자기 집에 와서 하란다. (한국식당 운영) 최 목사님은 옛날에 부 목사님이 살던 사택의 큰 방 하나를 1주일 동안의 쉼터로 허락해주셨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여기저기서 '채움의 소리'가 들려온다. "가방 보니까 다 찢어졌던데, 우리 집에 와서 가져가(가방가게 사장님), 옷 필요하면 우리 집 오고(옷 가게 사장님), 알죠? 밥은 우리 집으로 오세요(한국식당 사장님)" 이 분들은 이민 와서도 한국의 00파이를(정)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리라.          

도시의 느낌이 살아있는 간판
 도시의 느낌이 살아있는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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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한국가게가 있는 칠레의 동대문 거리인  파트로나토(patronato)로 가는 다리
 대부분 한국가게가 있는 칠레의 동대문 거리인 파트로나토(patronato)로 가는 다리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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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00파이를(정)을 잊지 못하는 분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미국 횡단할 때, KHS로부터 스폰서를(조나단 제조회사. LA본사에 찾아가 재정 후원을 문의했으나 거절당했으나, 2007 인터바이크 쇼 무료 티켓을 받은 후에 라스베가스의 임원진을 찾아가 한번 더 문의를 했고, 재정후원이 아닌 AS후원을 받기로 했다)받기 위해서 밤새 라스베가스를 달려서 임원진이 묶고 있던 호텔에 도착한 일(잠깐 가게 앞에서 잠들었다가 쥐가 나서 다리 풀고, 태극기를 발견한 한국분이 간식 사주시며 길을 안내해주셔서 새벽06시 도착).

친구를 깜짝 놀라게 하려고 밤새 달려서 스프링빌로 가던 일(초콜릿 과다 복용으로 쌍코피가 나고 길에서 매트리스 위에 쓰러져 자고, 소낙비가 오는 아침에 도착하고 나니 아리조나의 '스프링 어빌'이었고, 스프링 빌은 유타 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지인의 아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밤새 가다가 졸음운전으로 갓길로 5번 가량 핸들을 꺾었다가 갓길 아래 갈대밭에서 텐트 치자마자 기절해서 잤던 일(생각보다 길은 더 멀었고, 그 날 저녁에 지인에게 차량구조를 요청하고 말았다). 그 때 역시, '상황을 떠나라!'는 '흐름'에 몸을 실었던 것 같다.

결과가 비록 '실패'(그렇게 보일지라도)로 이어지면 어떤가? 자꾸 넘어지고 일어서다 보면 그런 '변화의 흐름'을 좀 더 빨리 알아 볼 수 있는 '시력'이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변화의 흐름'에 온몸을 던지는 '행동'이 많아질수록, 그의 인생은 정말 그가 희망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영락교회 친구들과
 영락교회 친구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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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야간주행은 위험합니다. 저도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야간주행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만일, 부득이 하게 가야 하는 경우에는 안전장비(야광조끼, 비상등)와 간식을 충분히 챙기시고 휴식과 스트레칭을 주기적으로 하시면서 주행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여행자에게는
누구보다 많은 자유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008년 9월 3일 수요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 박정규 올림.


태그:#자전거, #칠레, #남미, #세계일주, #희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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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세계일주 <박정규 여기 있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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