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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은 상당히 교활하다. 꼭 철면피 같다. 편법이란 편법은 다 쓴다."

 

정동익(65)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분노를 터뜨렸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말투는 단호했다. 1975년 박정희 정권 때 강제 해직 당한 뒤 언론 자유를 위해 지난 33년간 싸워온 정동익 위원장. 그는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5공 정권의 언론탄압이 차라리 "우직한 면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 정 위원장은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는 일부 신문사와 기자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 언론 실천을 선언하고, 국민 편에서 보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국민들이 조중동을 왜 '쓰레기'라고 부르며 편파 왜곡보도에 분노하는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동익 위원장은 노구를 이끌고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할 현 상황에 대한 씁쓸한 마음도 내비쳤다. 그는 "우리 같은 노병들이 길거리에 나서는 일들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다"며 "이제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우리나라 언론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옛날 유신정권과 싸우던 기백은 아직 남아 있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또 정 위원장은 "공영방송이 '땡전방송'처럼 독재자 나팔수, 확성기로 전락하는 걸 막아야 한다"며 "국민들이 직접 나서 촛불을 들고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자유 지키던 우리 노병들, 기백은 그대로"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장을 2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정동익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 지난해 언론탄압 진상규명 특별법을 입법 청원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언론탄압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분위기인데.

"과거 박정희 정권 때부터 독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언론자유 수호 운동을 폈다. 우리는 5공화국도 겪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은 상당히 교활하다. 꼭 철면피 같다. 옛날 군사정권의 언론탄압은 차라리 우직한 면이 있었다. 탱크를 몰고 와서 방송국을 점령하고 언론사에 기관원을 내보내 일일이 편집에 간섭하긴 했지만.

 

그런데 지금 정권은 편법이란 편법은 다 쓴다.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낸 걸 봐도 그렇다. 방송통신위원회·국세청·검찰, 별별 곳을 다 동원하고 법에도 없는 해임권을 썼다. 사실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없잖나? 임명권만 있지. 법을 무시했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있다. 자기들이 뭘 잘못하는지 인식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싸움이 상당히 어려운 싸움 같다."

 

- 현 정권은 87년 이후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가. 잃어버린 10년이라지만, 사실 이 10년간 언론도 꽤 달라지지 않았나?

"잃어버린 10년? 뭘 잃어버렸나? 자기네 영화를 아쉬워하는 것이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이야기다. 반면, 해방 이래 지난 10년간 언론 자유를 가장 많이 만끽했다고 본다. 조중동이 정권을 개패듯이 패도, 누구 하나 어디 잡혀갔다거나 고문당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언론 자유화가 수구세력한테 악용됐던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언론 자유는 침해받지 않고 계속 발전해 왔다. 지금 같이 언론 자유를 탄압할 양상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 최근 언론탄압에 맞서 적극적으로 촛불집회도 결합하고 계신데.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다 해직되고 33년간이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위해 싸웠다. 언론운동 1세대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우리 같은 노병들이 길거리에 나서는 일들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언론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그래도 우리가 유신 정권과 싸우던 기백은 아직 남아 있다.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동아투위' 회원들이 환갑 진갑 다 넘었는데, 다시 나선다. KBS 앞에서 열리는 25일 촛불집회에 '동아투위' 회원들이 많이 나올 거다. 공영방송을 사수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할 계획이다."

 

"33년 전 정부에 탄압받던 동아, 후배들아 각성하라"

 

 

- 1975년 3월 18일 박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에서 해직당했다. 정부 기관원이 <동아일보> 기사에 간섭하다 정부의 탄압으로 백지광고 사태가 난 뒤였다. 이게 33년 전 박정희 정권 유신 때 이야기인데, 2008년 지금 방송국에서 다시 총파업 얘기가 나온다.

"그 때는 언론 자유가 없어 제대로 기사도 못 썼다. 언론인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 취재 현장에 나가면 국민들이 '너희가 기자냐'고 조롱했다. 동아일보사 앞 광화문 네거리에서 학생들이 '동아일보 화형식'을 했다. 그걸 보고 우리가 각성했다. 이렇게 비겁하게 살 순 없다. 언론인의 길을 가겠다. 자유언론 실천 선언을 하고 언론자유 투쟁에 나섰다. 정부 기관원이 (동아일보에) 출입을 못하게 막고, 인권 기사도 다 보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 때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권력이란 속성이 그렇다. 언론을 자기 홍보 수단으로, 나팔수로 만들고 싶은 게 권력 속성이다. 권력자가 아무리 그런 속성을 갖고 있더라도 법을 따르고 상식을 지켜야 하는데, 지금 정권은 그게 전혀 없다.

 

국민들이 직접 나서 촛불을 들고 공영방송을 지켜야 한다. 지금 KBS 사장 한 사람의 자리를 지키자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다. 다시는 공영방송이 '땡전방송'처럼 독재자 나팔수, 확성기로 전락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민들이 촛불 들고 나선 거다. 국민들의 마음은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부가 KBS 앞에서 촛불 문화제도 못하도록 공권력을 동원해 밀어붙이고 있지만, 결코 촛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더 분노할 거다. '광우병' 촛불시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 거다."

 

- 33년 전엔 정권이 나서서 <동아일보> 기자들을 대거 내쫓았다. 그런데 지금은 <동아일보> 스스로 친정부적 입장을 표명할 때가 있다. 어떻게 보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 정의감 있고 양심있던 언론인, 언론 자유를 지키려던 언론인들은 거의 다 축출되고 말았다. 그 때부터 <동아일보>가 변절했다고 본다. 그 뒤라도 젊은 후배들이 각성하고, 우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언론 실천을 선언하고 국민들 편에서 보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선배들 입장에선 상당히 곤혹스럽고 안타깝다. 국민들이 뭘 바라고, 국민들이 왜 조중동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왜곡 편파보도에 분노하는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언론인들은 언론이 사회의 '목탁'이란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언론인은 안정적인 직장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갈수록 (기자들이) 보신주의에 물들지 않나 싶다."

 

"KBS 장악하면, 시청료 거부·TV 안보기 운동 펼칠 것"

 

 

- <동아일보> 기자 이전에 KBS 기자도 하셨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 KBS 기자는 기자 취급을 못 받았다"고 말한 적 있다. 그 때 KBS는 지금과 많이 달랐나?

"6월 항쟁 이전 KBS는 완전히 정권 시녀였다. '땡전뉴스' 소리를 들었으니까. 국민들이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른 기자들이 기자실에 출입도 못하게 했다. 취재 현장에서도 KBS 기자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도 못할 정도로 언론인 취급을 못 받았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전엔 그랬다.

 

그런데, 1986년 전북 고산군 농민회에서 제일 먼저 '땡전뉴스 우린 보기 싫다'며 시청료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그게 종교계로 번졌다. 이어서 시민단체들, 전 국민이 합세해 전국적으로 시청료 거부운동을 폈다. 그 뒤로 KBS 종사자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청와대 서기원 비서관을 KBS 사장으로 내려 보내려고 하면서 낙하산 반대투쟁이 시작됐다. 그 때 수십 명이 구속됐다. KBS가 그때부터 언론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전폭적인 성원과 KBS 내부 종사자들의 각성, 방송 민주화 투쟁에 힘입어 신뢰도 1위의 공영방송으로 자리잡게 된 거다.

 

그걸 이명박 정부가 무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방송, 언론사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도로 옛날로 돌아간다. 이명박 정부가 KBS는 장악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대응할 거다. KBS 안 보기 운동도 펼 거다. 이명박 정부는 '껍데기 방송'만 가져가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 결국 언론을 지키는 힘은 국민한테 있다. 국민들이 언론의 주인이다. 방송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국민들이 빨리 깨달을수록 공영방송을 지키는 싸움은 승리로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거다."

 

검찰, '정치검찰' 소리 들을 정도로 오버한다

 

- 지금 KBS 내부도 문제 아닌가? 대통령의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방관한 KBS 노조 태도를 놓고 말들이 많다.

"내부인들이 똘똘 뭉쳐 권력과 싸워도 어려운데, 노조 집행부가  잘못된 노선을 걷는 걸로 보인다. 공영방송을 지키려고 싸워야 하는데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 정연주 전 사장 개인이 그만두는 걸로 초점을 맞췄다. 정연주 전 사장이 아무리 싫어도 위법적으로 쫓겨나간 사실을 수수방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처음에 노조가 안 나서니, 사원들이 '사원행동'을 만들어 투쟁에 나섰다. 이런 식으로 분열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효과적인 투쟁이 될 수 없다. '사원행동'을 포함해 KBS 노조가 전면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 지금 KBS만 문제가 아니다. MBC <PD수첩> '광우병' 편을 놓고 압박이 심하다.

"<PD수첩>에 대한 검찰수사 자체가 잘못됐다. 보도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 몫이다. 시민단체나 언론중재위도 있다. 언론에 대한 비판과 평가기능을 담당할 여러 사회적 제어장치들이 있다. 검찰이 여기에 개입한다는 건 민주국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언론 자유 침해다. 검찰이 간섭할 게 아니다. 정치검찰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오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정권의 앞잡이로 이용당하는 건 사법부의 명예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 현 정부가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MBC와 KBS를 옥죈다고 보나.

"정부가 졸속으로 쇠고기 협상을 벌인 점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로 현 국면을 이해해야 하는데, 모든 문제가 방송을 장악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지지율도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언론만 장악하면, 공안탄압으로 몰아붙이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말 오판이다.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면 지지율은 올라간다. 그런데 그걸 안 하고 있다. 그저 방송을 장악하고 공안탄압하면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이미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민이 아니다. 4·19와 6·10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써낸 국민이다. 독재탄압을 이겨낸 국민이다. 전 세계 그 어떤 독재자도, 국민을 이긴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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