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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학동의 도깨비시장(서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쌍봉식당의 음식에는  베푸는 삶을 사는 할머니의 고운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여수 쌍봉식당 여수 학동의 도깨비시장(서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쌍봉식당의 음식에는 베푸는 삶을 사는 할머니의 고운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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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집이다. 여수 학동의 도깨비시장(서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쌍봉식당. 식당에는 '거북건강원'이란 간판이 걸려있다. 곁에 조그맣고 낡은 '새쌍봉식당'이란 상호가 있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백반을 주로 파는 이 집은 탁자가 달랑 2개 놓여있다.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배달 손님이다. 지금은 주인장이 몸이 불편해서 배달을 못해준다. 주 고객은 도깨비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과 노점상들이다.

할머니의 고운 심성 고스란히 담겨 있어

할머니의 밥상은 백반 한 상에 3천원이다. 직접 가져다 먹는 사람들은 2천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3천원을 받는다. 이래가지고 뭐가 남을까 싶을 정도로 착한 가격이다. 밥값에도 할머니의 고운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손님들은 좀 있나요?"
"이리 사람이 없어 갖고 어찌 살랑가 몰겄어."
"연세가 어찌 되시나요?"
"7학년 3반이여, 73세 강옥희"
"식당, 몇 년이나 하셨어요."
"오래됐어. 저 위에서부터 해갖고 이리 내려 온 지가 20년 됐어."

할머니는 30년간 식당일을 해서 5남매를 다 키웠다. 그래서 돈 벌어놓은 게 없다고 한다. 지금은 몸이 불편해서 배달을 못하니까 시장 상인들이 함지박을 가지고와서 음식을 담아 이고 간다. 다 먹은 다음에는 빈 그릇을 갖다 준다. 할머니가 일손도 부족하고 몸이 불편해 생각해낸 새로운 영업방식이다.

"내가 배달을 못해주니까 가져가서 먹으라는 거지."

할머니가 오히려 손님들에게 큰소리치며 배짱 장사를 하지만 그것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하는 손님들은 아무도 없다. 기껏 해봐야 찬과 밥을 더 달라는 애정이 담긴 푸념 정도다.

사실 요즘 이만한 가격에 이렇게 인심 후한 집도 없으니 말이다. 노점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들은 밥 한상(2천원)을 시켜서 둘이 나눠먹는 게 다반사다.

함지박에 가득한 찬거리와 고봉밥

함지박에 가득한 찬거리와 고봉밥
▲ 함지박 함지박에 가득한 찬거리와 고봉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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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박에 찬거리와 고봉밥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간다. 한손에는 노란 물주전자를 들고서. 어릴 적 우리네 농촌에서 흔히 보아왔던 새참을 이고 가는 아낙네처럼.
▲ 찬거리와 고봉밥 함지박에 찬거리와 고봉밥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간다. 한손에는 노란 물주전자를 들고서. 어릴 적 우리네 농촌에서 흔히 보아왔던 새참을 이고 가는 아낙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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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식당의 반찬은 수시로 바뀐다. 계절별로 제철에 나오는 나물과 푸성귀들로 찬을 담근다. 간간이 노점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이 찾아와 함지박에 찬거리와 고봉밥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간다. 한 손에는 노란 물주전자를 들고서. 어릴 적 우리네 농촌에서 흔히 보아왔던 새참을 이고 가는 아낙네처럼.

찬을 살펴봤다. 오이냉채, 꽈리고추멸치볶음, 청각나물, 가지나물, 마늘장아찌, 토란나물 등 시골집 밥상이 연상되는 소탈한 상차림이다. 오이냉채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채 썬 오이와 양파에 송송 홍고추를 넣었다. 다진 마늘에 소금 간하고 약간의 설탕과 식초로 마무리했다. 그 새콤하고 시원함이 너무 좋다.

오이냉채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채 썬 오이와 양파에 송송 홍고추를 넣었다. 다진 마늘에 소금 간하고 약간의 설탕과 식초로 마무리했다. 그 새콤하고 시원함이 너무 좋다.
▲ 오이냉채 오이냉채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채 썬 오이와 양파에 송송 홍고추를 넣었다. 다진 마늘에 소금 간하고 약간의 설탕과 식초로 마무리했다. 그 새콤하고 시원함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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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넣고 식초를 좀 타야 돼. 시원하게 해야 맛있어."
"꽈리고추멸치볶음은 맹물하고 물엿에 갖은 양념을 넣고 거시기 좀 들어가야 해, 그래갖고 볶아야 맛있어. 청각나물은 다듬고 씻기를 몇 번을 반복해, 여간 힘든 게 아니여."

할머니는 요즘 밥을 여남은 상이나 판다고 한다. 도깨비시장 주변에서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는 20여명, 많을 때는 30여명이 장사하러 나온다. 그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점심  한 끼니가 부담스러운 일이다.

시원하고 상큼한 탁배기 한잔에 시름 잊는 서민들

탁배기 한잔에 시름 잊는 서민들
▲ 시원한 탁배기 한잔 탁배기 한잔에 시름 잊는 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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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아 탁배기 한 잔을 쭉 들이키던 이정길(68)씨는 어찌된 일인지 이 집은 주인이 오히려 배짱이라고 말한다. 20년째 단골이라는 이씨는 심심하면 이곳에 들러 탁배기 한 잔씩 한다면서 이 집 주인이 서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귀띔한다.  

"옛날부터 해놔서 소문이 났어. 서민들을 위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제."

젊은 시절 외항선을 타기도 했다는 이씨는 탁배기를 마시는 것이 이제는 유일한 낙이 됐다. 막걸리 1병에 2천원, 안주는 그냥 덤이다. 너댓가지의 찬을 내준다.

그는 술을 몇 순배 들이켠 탓인지 계속 말을 이어간다. 주인장에게 확인해보니 막걸리 소주 팔아서 별로 남는 것도 없는데 외상값이 무려 10만원이 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탁배기 팔아 생활하는데 그 돈 떼어먹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
"묵고 계산하는 거라 나중에 갖다 준다고 그냥 가는 일이 허다해."
"배고픈 사람들 밥도 해주고 좋은 일 많이 하는데…."

가방을 짊어진 손님이 한 분 들어오자 할머니는 "그거 아무도 안 가져가, 아무데나 놓고 그냥 앉아"라며 살갑게 맞이한다. 그 역시도 이 집의 단골이다. 오전 일만 마치고 지나는 길에 날씨가 무더워 목을 축이러 왔다고 한다. 탁배기 상이 차려지자 한 잔을 따르더니 대접 채 들고 순식간에 들이켠다.

"막걸리 맛이 시원해요. 상큼합니다."

이 집을 찾은 손님들의 말에 의하면 주인 할머니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껏 참 많이도 베풀었다고 한다.

"누른 밥 많이 먹였소, 술 좋아한 사람들 술도 드리고, 옛날에는 참말로 막걸리 서말씩 팔았어. 나이가 든께 사람도 떨어지고…."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할머니는 베푸는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 여름날 오후의 도로는 한산하다.
▲ 여수 학동 서부시장(도깨비시장) 앞 도로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들, 여름날 오후의 도로는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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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탁배기, #도깨비시장, #막걸리, #쌍봉식당, #고봉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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