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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에 가면 눈, 귀, 입이 즐거워진다. 태안의 푸르른 바다와 모래밭이 곱게 펼쳐진 해수욕장, 오랜 세월 바닷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야트막한 '신두리 모래언덕'은 눈을 즐겁게 한다. 태안반도 곳곳에 펼쳐진 시원스런 바다에서 쏴아아 밀려왔다 스르륵 수평선으로 빨려들어 가는 파도소리는 귀를 즐겁게 한다.

 

'밥상천국'이라 불리는 태안반도 곳곳에 '태산이 무너져도 동날 리 없다'는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은 입을 한껏 즐겁게 한다. 1월은 간재미 숭어 생굴 아귀, 2월은 광어 바지락 대합, 3월은 바지락 실치 굴, 4월은 주꾸미 놀래미, 5월은 갑오징어 꽃게, 일 년 내내 나는 우럭, 6쪽마늘 등이 사람들의 입맛을 마구 끌어당긴다.

 

그중 태안이 자랑하는 으뜸 먹을거리는 갯벌이 많은 태안 앞바다에서 나는 세발낙지, 일명 뻘낙지로 조리하는 '박속낙지탕'이다. 태안의 명물 박속낙지탕은 박 속을 우린 국물에 낙지를 퐁당 집어넣어 먹는 특미다. 박속낙지탕의 특징은 살짝 익힌 낙지를 건져 먹은 뒤 그 국물에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어 먹는다는 데 있다.  

 

박 속과 낙지의 뜨거운 포옹. 박속낙지탕은 힘겨운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 태안지역 농가에서 낙지와 수제비, 칼국수로 잃어 버린 영양가를 채우던 보신음식이다. 태안의 갯벌에서 나는 세발낙지는 특히 크기가 작아 한 입에 먹기 좋고 육질이 부드러워 회로 먹어도 쫄깃쫄깃 씹히는 고소하고도 깔끔한 맛이 기막히다. 

 

 

잡히자마자 팔려나가는 태안반도 세발낙지

 

낙지의 다리가 가늘다 하여 이름 붙여진 태안반도 세발낙지는 5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가로림만을 끼고 있는 태안군 원북면과 이원면 일대 갯벌에서 주로 잡힌다. 하지만 태안반도 세발낙지는 워낙 인기가 좋아 잡히자마자 가까운 식당으로 몽땅 팔려나가 낙지를 잡는 어부들도 쉬이 맛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여름 불볕더위는 박속낙지탕으로 날리세요

 

※재료 / 세발낙지 5마리, 박 속, 붉은 고추, 매운 고추, 양파, 감자, 파, 마늘, 소금, 집간장

 

1. 세발낙지를 손질하여 깨끗이 씻는다.

 

2. 박 속, 감자는 네모지게 얄팍하게 썰고 붉은 고추와 매운 고추, 양파, 파는 비껴썰기 한다.

 

3. 냄비에 박 속과 감자, 붉은 고추, 매운 고추, 양파, 파, 마늘, 소금, 집간장을 넣어 한소큼 끓인다.

 

4. 맛국물에 세발낙지를 넣고 살짝 끓여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5. 세발낙지를 다 건져낸 국물에 수제비나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

 

※가을에 딴 박을 냉동실에 넣어 두면 사계절 내내 시원하고 개운한 박속낙지탕을 즐길 수 있다.

지난 26일(토) '한국문학평화포럼'에서 개최하는 제3회 태안문학축전에 갔다가 이날 오후 5시에 들렀던, 태안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태안의 향토음식 박속낙지탕 전문점. 이 식당은 태안읍을 지나 안면도와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북쪽 학암포 방향에 있는 원북면 반계리 삼거리에 있다.

 

식당 주인 조규수(60)씨는 "박속낙지탕은 이 지역 사람들과 이 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조씨는 "태안의 세발낙지는 갯벌에서 자라기 때문에 통발낙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도 독특하다"라며 "박속낙지탕은 질 좋은 세발낙지에 박 속과 여러 가지 채소, 조개 등으로 맛국물을 만들어 끓여낸 음식"이라고 귀띔한다.

 

조씨는 이어 "세발낙지 낚시는 세 가지 방법을 쓴다. 제일 많이 하는 것은 능젱이(칠게)를 미끼로 만들어 배를 타고 나가는 '주낚'인데, 낚싯줄을 바닷물에 던지면 갯벌에 숨어있던 낙지가 미끼를 문다. 이 때 줄을 거두면서 낙지를 잡는다"라며 "간조 때 삽이나 호미로 갯벌을 파서 잡는 '삽낚', 밤에 횃불을 켜고 잡는 '횃불낚'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속과 세발낙지가 뜨거운 포옹을 한다

 

"박속낙지탕을 먹을 때 매콤하지 않다 하여 고춧가루를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주는 대로 가만히 앉아 기다리다가 주인이 '됐시유~'하고 말꼬리를 내리면 그때부터 먹으면 됩니다. 괜히 고춧가루를 달라고 했다가 '됐슈'하는 짧은 말이 나오면 상대조차 하기 싫다는 겁니다. 박속낙지탕은 낙지 다리를 먼저 잘라먹고 난 뒤 낙지머리를 반으로 잘라 먹어야 합니다. 낙지머리부터 먼저 자르면 '됐슈'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국장 정용국 시인의 우스개 말을 떠올리며 박속낙지탕을 시키자 밑반찬으로 콩나물무침, 깍두기, 오이조림, 열무김치, 고사리무침 등이 나온다. 밑반찬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두어 잔째 비워내고 있을 때 박 속과 대파, 매운 고추, 붉은 고추가 언뜻언뜻 보이는 맛국물이 식탁 한가운데 올려진다.

 

이 집 맛국물은 조개와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오래 우려낸 국물이다. 하지만 처음 올려진 맛국물에는 박 속만 있고 세발낙지는 없다. 정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맛국물을 한동안 팔팔 끓인 뒤 싱싱한 세발낙지를 넣고 살짝 익으면 가위로 낙지 다리를 잘라 초간장이나 고추냉이에 찍어먹어야 한단다.

 

팔팔 끓고 있는 칼칼한 맛국물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자 입 안에 바람이 이는 것처럼 개운해진다. 잠시 뒤 주인이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세발낙지를 맛국물에 풍덩 떨어뜨린다. 잠시 사지를 비틀던 세발낙지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때깔 고운 연분홍빛으로 변한다. 세발낙지 한 마리를 접시 위에 올린 뒤 가위로 다리를 잘라 초간장에 찍어 입에 넣는다.

 

 

박 속 헤집으며 살짜기 떠오르는 세발낙지 머리 속엔 먹물이 가득

 

쫄깃쫄깃 껌처럼 부드럽게 씹히는 세발낙지의 고소하고도 깔끔한 맛이 혀를 끝없이 희롱한다. 막걸리 한 잔 마신 뒤 세발낙지 다리 하나 입에 물면 누구나 세발낙지의 포로가 된다. 세발낙지의 다리를 다 먹어갈 때쯤이면 달걀처럼 매끈하게 생긴 낙지머리가 맛국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박 속을 헤집으며 살짜기 떠오른다.

   

낙지머리를 건져 가위로 자르자 거기 먹물이 가득 들어 있다. 박 속과 낙지머리를 입에 넣자 미끌미끌 입천장 여기저기로 도망을 간다. 그렇게 낙지머리까지 다 먹고 나면 주인이 맛국물에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어준다. 박 속과 낙지가 우러난 연포탕이어서 그럴까. 한 수저 떠서 입에 넣자 개운하기 그지없다. 쫀득쫀득 씹히는 수제비와 칼국수 맛도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조씨는 "맛국물에 들어 있는 박 속과 낙지를 다 건져먹은 뒤 그 '멀국'(건더기 없는 국물)에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어 밀국을 끓인다"라고 말한다. 조씨는 이어 "박속낙지탕 맛의 비결은 낙지와 국물 맛에 있다. 세발낙지는 5~7월에 갯벌에서 잡히는 7~10cm 정도의 어린 세발낙지를 쓴다"고 귀띔했다.

 

박속낙지탕의 맛 포인트는 세발낙지를 맛국물에 어떻게 데치느냐에 있다. 세발낙지는 너무 삶으면 육질이 질겨지고, 너무 살짝 데치면 낙지 머리통에 들어 있는 먹물이 흘러내려 옷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먹물 속에 타우린 성분이 들어 있어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하니 옷 버리는 것쯤이야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발낙지와 박 속이 만나 뜨거운 포옹을 하면 수제비와 칼국수를 낳는다? 태안반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 박속낙지탕. 올 여름에는 기름 유출 사고로 엄청난 재앙을 입은 태안으로 가서 박속낙지탕도 먹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해변에서 해수욕도 즐기며, 심각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는 태안 주민을 위로해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박속낙지탕, #태안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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