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본 소감을 말하라면 ‘불편하다’이다. 불편하다는 말의 의미를 모를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그래도 덧붙이라면,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영화의 내용도 편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우선 영화의 절반가량이 흔들리는 화면과 함께 무의미한 시간을 쪼개며 하품을 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중간 중간 블랙신 또한 감수해야만 한다.

 

 영화 < REC > 포스터

영화 < REC > 포스터 ⓒ 유니버셜

중반 이후 일단 좀비, 호러영화로 진입한 후에도 흔들리는 카메라를 쫓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영화는 관객을 배려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고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관객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비추기보다 카메라맨과 리포터가 하고 싶은 대로 비춘다. 물론 그게 감독의 의도겠지만. 그러니 배려 받지 못한 관객인 나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설정자체도 고도의 심리를 이용한 인내의 종착역쯤 해서 하우메 발라구에로와 파코 플라자 두 감독의 속내를 털어놓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면 감내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즈음 영화는 호러영화, 좀비영화, 여름 장르영화(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로서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나 불편함은 여전하다. 원인을 전혀 모르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에 의해 정상적인 사람들이 뜯어 먹히는 장면, 피가 낭자한 모습으로 갑자기 뛰어들어 공격하는 좀비가 된 사람들, 느닷없이 괴성을 치며 달려드는 좀비들, 날뛰는 좀비들만큼이나 날뛰는 카메라를 좇아가야 하는 관객들, 어느 것 하나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뻔하지만 예측불허의 무엇이 있다

 

시놉시스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절대 견딜 수 없다!’라고 쓰고 있는데 글쎄? 뭘 견딜 수 없고, 뭘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멘트다.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길 것이고 가만히 볼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함과 불예측성에 견딜 수 없다는 얘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라면 조금은 위트라고 받아들이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충격의 정도, 공포의 정도는 다르기 마련이니 피골이 오싹한 체험을 했다고 해도 누구 하나 탓할 사람이 없을 영화이긴 하다.

 

 리얼 TV다큐 프로그램인 ‘당신이 잠든 사이’의 리포터 안젤라 비달(마누엘라 벨라스코 분)과 카메라맨 파블로(목소리만 나오지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가 소방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얼 TV다큐 프로그램인 ‘당신이 잠든 사이’의 리포터 안젤라 비달(마누엘라 벨라스코 분)과 카메라맨 파블로(목소리만 나오지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가 소방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유니버셜

 

이야기는 리얼 TV다큐 프로그램인 ‘당신이 잠든 사이’의 리포터 안젤라 비달(마누엘라 벨라스코 분)과 카메라맨 파블로(목소리만 나오지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가 소방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는 데서 출발한다. 소방대원들이 모든 사람들이 잠 든 사이에 열심히 일하는 것을 취재하려는 의도로 영화는 출발하지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걸 관객은 알게 될 것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영화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는지 카메라는 쉴 사이 없이 흔들린다. 장면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뛰어다니는 P. O. V(시점샷)가 그토록 현장감을 살리는 것인지 체험하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어떤 때는 카메라를 떨어뜨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장면(실은 감독이 의도한 장면이지만)들을 잡기도 한다. 사람과 사물들이 거꾸로 비쳐지기도 하고, 카메라가 떨어지면서 작동을 멈추거나 전원에 이상이 생겨 블랙신을 그리기도 하고, 음성 없는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카메라는 미지를 좇는다. 공포를 좇는다. 그리고 공포를 만든다. 그저 좇아갈 때만 해도 그런 대로 마음 편하게 좇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공포를 만들 때는 좀 억, 하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소방대원과 함께 취재를 위해 도착한 아파트에서 예측불허의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우리의 삶에도 예측불허의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을 가늠한다면 이 영화의 배치는 예측할 수 있는 도구일지도 모를 일.

 

 카메라는 미지를 좇는다. 공포를 좇는다. 그리고 공포를 만든다. 그저 좇아갈 때만 해도 그런 대로 마음 편하게 좇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공포를 만들 때는 좀 억, 하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카메라는 미지를 좇는다. 공포를 좇는다. 그리고 공포를 만든다. 그저 좇아갈 때만 해도 그런 대로 마음 편하게 좇아갈 수 있다. 그러나 공포를 만들 때는 좀 억, 하고 쓴웃음을 짓게 된다. ⓒ 유니버셜

억울한 갇힘, 견딜 수 없는 죽음의 나락

 

카메라가 갑자기 미친 듯이 날뛰는 노파와 접하게 되고 그것이 그들의 여행이 단순한 다큐 취재여행이 아니라 공포여행이었음을 알리는 전초다. 그와 동시에 아파트는 봉쇄된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게 이유다. 갑자기 소방대원들도 리포터도 카메라맨도 폐쇄된 공간에서 버려진 이들이 된다.

 

무턱대고 잠가버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감염 영역 밖의 사람들, 접촉하지 않으면 자신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 그래서 이미 위험에 노출된 이들을 잠그고 자신의 안전을 기하는 현대적 삶의 이데올로기, 이 비정한 삶의 법칙이 영화에서 걸어 나와 그렇지 않아도 자신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현대인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죽음의 영역에 담을 쌓았다고 그들이 살 수 있을까? 영화는 거기까지 답하지 못하고 끝난다.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에서 닿을 수 없는 성을 쌓아 자신들의 삶의 영역과 구분하던 영국인들의 당찬 계획과 너무도 닮아있다. <Rec>는 답하고 있지 못한 것을 <둠스데이: 지구 최후의 날>는 이미 답했다. 차라리 죽음의 담 안이 삶의 영역이었다고.

 

영화평론가 ‘김도훈’은 < Rec >를 ‘플레이스테이션용 1인칭 호러 게임 속에 홀로 직접 뛰어든 기분’이라고 말했다. ‘듀나’는 ‘유튜브 세대를 위한 일인칭 좀비 롤러코스터’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냥 이 영화를 게임으로, 놀이로 보기에는 너무 우리의 현실이 아프다.

 

 살기 위해 택한 길이 죽음의 길이 되기도 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격리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격리되어 우리 동포들이 북쪽에 갇혀있다.

살기 위해 택한 길이 죽음의 길이 되기도 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격리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격리되어 우리 동포들이 북쪽에 갇혀있다. ⓒ 유니버셜

내 자식 내 어버이가 거기 갇혀 있다면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다.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도 먹고 살 게 없다. 먹을 것을 위하여 꽃제비가 되기도 하고, 사선을 넘어 중국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살기 위해 택한 길이 죽음의 길이 되기도 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격리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격리되어 우리 동포들이 북쪽에 갇혀있다.

 

남쪽의 어떤 이들은 우리가 힘들여 번 재산을 그들과 공유할 수 없다고 한다.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들은 나쁜 정부 때문에 그런 것이니 휴전선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들이 격리된 채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게 맞는다면, 영화 속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아파트를 통째로 격리한 당국이라는 불한당과 다른 게 무엇인가.

 

통째로 격리된 이들은 좀비에 물려 죽어간다. 잠시 후에도 어떤 일이 그들에게 전개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관객은 그런 불가항력적이고 불예측적인 것에 마음을 졸이며 들여다보고 카타르시스를 즐긴다. 게임이라면 그래도 된다. 놀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적절한 쇼크효과와 서스펜스, 그게 있어야 더 재미있으니까.

 

영화를 통해 무엇이라도 배워야 한다면,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만 살자고 죽음의 그림자가 덮은 아파트를 봉쇄하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극히 현대적이며 합리적인 휴머니즘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내 삶의 방식은 내가 쓴다? 맞다. 그러나 그 삶의 방식인 줄 알았던 것이 공멸로 가는 것이라면 그래도 가야 할까? 아파트에 봉쇄당한 채 죽음과 좀비로 자신의 삶을 맞바꾸는 이들이 득시글거리는 영화, 미친 듯 삶의 방법이라 믿고 다른 사람에게 달려들어 피를 뜯지만 결국은 모두 죽는 길임을 모르는 좀비, 좀비들.

 

 영화를 통해 무엇이라도 배워야 한다면,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만 살자고 그들의 죽음의 그림자가 덮은 아파트를 봉쇄하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영화를 통해 무엇이라도 배워야 한다면,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만 살자고 그들의 죽음의 그림자가 덮은 아파트를 봉쇄하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 유니버셜

리포터 안젤라가 정체 모를 좀비에게 끌려가며 남긴 말이 귓가에 섬뜩하게 남는다.

“필름이 모든 것이야. 파블로, 제발!”

 

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역사는 사실대로 남는 것이야! 제발!”

 

그리고 거기에 내 자식, 내 어버이가 절규하며 손을 내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자우메 발라구에로와 파코 플라자가 함께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 마누엘라 벨라스코 주연, 스페인 영화, 상영시간 78분

2008.07.14 14:3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자우메 발라구에로와 파코 플라자가 함께 각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 마누엘라 벨라스코 주연, 스페인 영화, 상영시간 7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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