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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나는 풍물패 활동을 했다. 지갑에 돈 한 푼 없어도 하루 세 끼를 잘 챙겨먹을 수 있었던 새내기 때, 친구들은 영어 동아리다 과내 동아리다 학회다 하며 자신의 갈 길(?)을 찾을 때, 난 풍물패에 가입했다. 평소 국악에 관심이 있었고 뭔가 독특한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르지 않게, 풍물패 생활은 정말 독특했다. 수업 후 연습 시간은 물론 공강 시간, 심지어는 밤에도 모여서 악을 치며 놀았으니깐. 하지만 그렇게 악을 쳐도 힘들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즐거웠으니까. 그렇게 2년 반 동안, 나는 대구 달성 다사지역의 12차 36진굿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풍물패 활동을 하면서, 이것보다 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로 풍물 아르바이트였다.

 

풍물 아르바이트, 그 첫 날의 기억

 

어느 날, 어린이 관련 운동을 하는 기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모내기를 할 때 길놀이를 해달라는 거였다. 그날 시간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나와 같은 패 선배 두 명이 길놀이 준비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버스에 탔다.

 

그러나 난감한 일이 일어났다. 길놀이 전날에 비가 왔던 것. 내가 전수받은 달성다사12차36진굿은 전쟁을 표현한 풍물굿이라서 가락을 느끼면서 춤을 추기보다는 정신없이 뛰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길놀이 때에는 기본 가락을 치며 천천히 걷긴 했지만, 울퉁불퉁한 흙바닥에서 악을 치면서 걷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어깨에 맨 북은 얼마나 무겁던지, 균형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꽹과리를 잡고 있던 선배가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뒤에 있던 나와 다른 선배는 제발 그러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선배가 속도를 올리면 도통 낮추는 법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데 속도를 더 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속도를 올리면서 논두렁을 열심히 뛰어다닐 때마다 함께 갔던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기 때문.

 

그날 길놀이는 무사히 끝났고, 우리 세 명은 각각 만 원씩을 받았다. 풍물 아르바이트로 번 첫 일당이었다. 그 때 모내기를 담당했던 분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한 번 더 와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로는 연락이 없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말과 함께 춤을!

 

얼마 후, 다시 연락이 왔다. SBS <동물농장> 촬영팀에서 아르바이트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지금 기수 몇 명이서 말을 타고 국토종단을 하고 있는데, 그 종착지가 부산 해운대 백사장이고, 이곳에서 이들을 맞이할 풍물패가 필요하다는 사연과 함께.

 

그날도 아침부터 바빴다. 학교에서 악복과 악기를 챙겨 해운대로 출발했다. 시작하기 전, 주의사항도 들었다. 악기 소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말이 놀랄 수 있으니 조금 떨어져서 악을 쳐달라는 말과 함께 뒷발에 차일 수 있으니 절대 말 뒤로는 가지 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촬영 시작. 저 멀리서 기수를 태운 네 마리의 말이 달려왔다. 우리는 항상 그랬듯이 열심히 놀았다(!).

 

그러나 이날도 쉽지 않았다. 바로 모래사장 위에서 악을 쳤기 때문이다. 흔히들 상모를 목의 힘으로 돌린다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오금의 힘으로 돌린다. 무릎을 구부리며 오금에 힘을 준 뒤, 바닥에서 느껴지는 반동으로 오금을 펴면서 상모를 돌리는 것이다. 상모뿐 아니라 다른 악기를 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모래사장이다 보니, 발은 계속 빠지고, 도저히 오금에 힘을 주어 걸을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같이 저녁식사 겸 뒷풀이를 하면서 다들 한 마디씩 했다. 모래사장에서 악을 치는 건 너무 힘들다. 다행히 그 이후론 모래사장에서 악을 칠 일이 없었다.

 

찜질방 구경과 냉면 한 그릇, 풍물 아르바이트의 극과 극

 

이외에도 몇 번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 중에 가장 좋았던 때가 있었고 반대로 가장 싫었던 때도 있었다.

 

가장 좋았던 날은 어린이날에 있었던 찜질방 아르바이트였다. 안그래도 악을 치면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땀범벅이 되는데, 찜질방에서 악을 쳐야 한다는 사실에 가기 싫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한 나와 친구 세 명은 악복과 각자의 악기를 챙기고 찜질방에 가자마자 길놀이를 했다. 덥긴 했지만, 아이들이 잘 따라와줘서 나름 재미있었다. 거기에 사장님의 배려로 찜질방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장 싫었던 날은 한 냉면집의 개업 기념 길놀이 아르바이트였다. 그 날은 사회 풍물패 선배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근처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길놀이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시작했지만, 더운 날씨에 다들 지쳐갔다. 체력 좋기로 소문난 사회 풍물패 선배들도 지쳐서 '잠시만 쉬었다 가자'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을 정도니까. 거기다 일당도 냉면 한 그릇과 수정과 한 잔이 전부였다. 그것도 요즘 냉면 한 그릇보다 더 적은 양으로. 이날 이후로 그 때 길놀이를 한 사람들은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싫은 소리를 한 번씩 하곤 했다.

 

좋았던 아르바이트건, 그렇지 않건 길놀이 당시에는 정말 신이 났다. 그리고 길놀이 뿐만 아니라 이후 뒤풀이까지도 내게는 정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비록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일당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기다렸던 건 그 순간에 느껴지는 신명과, 그 신명을 함께 느끼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 '아르바이트, 그 달콤 쌉싸래한 기억' 응모글입니다.
* 우리가 흔히 쓰는 '농악'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풍물굿'입니다.


태그:#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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