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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 얼큰탕 80년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이 집에 처음 왔을 땐 국밥 한 그릇에 500원 했다
▲ 우거지 얼큰탕 80년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이 집에 처음 왔을 땐 국밥 한 그릇에 500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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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끝없이 치솟는 유가에 지갑은 자꾸만 얇아지는데, 생필품 값마저 덩달아 끝없이 들썩이고 있다. 얄밉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려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5공식 '신공안정국'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얄밉다.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를 하고, 청와대 참모진 전면 개각과 장, 차관직 소폭 개각을 했으니, 이젠 '빼 째라'(?)는 투인가. 과연 정부의 말마따나 촛불집회만 하지 않는다면 거꾸로 거꾸로만 머리를 처박고 있는 우리나라 민생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서민들의 얇아진 지갑이 금세 두툼해질 수 있을까.

밥 한 그릇조차 식당 차림표의 가격을 따져가며 시켜야 하는, 이른바 내 돈 내면서도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시대. '신보릿고개'로 어렵고도 힘겨운 이러한 시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은 없을까. '싼 게 비지떡'이 아닌, 값은 '비지떡'처럼 싸면서도 맛은 요릿집 일품요리 뺨치는 맛이 나는 집.

있다. 서울 종로 탑골공원 담을 따라 낙원상가 건물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돼지 부속 국밥집 골목이 나온다. 이른바 족발, 돼지머리, 편육, 순대 등을 싸게 파는 집들이다. 이 국밥집 골목도 값싸게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국밥집 골목보다 더 값싸게 식사 한 끼 맛나고 거뜬하게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

낙원상가 옆 우거지 얼큰탕 전문점 1951년 1.4후퇴 때 북한에서 넘어온 시어머니가 추어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으니 대략 57년쯤 되었다
▲ 낙원상가 옆 우거지 얼큰탕 전문점 1951년 1.4후퇴 때 북한에서 넘어온 시어머니가 추어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으니 대략 57년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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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 얼큰탕 국산 소뼈를 폭 고아 만든 우거지 얼큰탕은 술 먹은 사람들 속 풀어 주는데 그만
▲ 우거지 얼큰탕 국산 소뼈를 폭 고아 만든 우거지 얼큰탕은 술 먹은 사람들 속 풀어 주는데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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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 얼큰탕 한 그릇 1500원! 57년 한결같은 맛

"저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10~30년 이상 단골이자 노인분들이기 때문에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다. 예전에는 추어탕으로 시작했는데 값싼 가격을 그대로 이어가려다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20년 앞부터 추어탕을 포기하고 우거지 얼큰탕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저 내 집에서 하니까 가게세 부담이 거의 없어서 좋다."

돼지 부속 국밥집 골목을 지나 낙원상가 피카디리극장 나들목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모퉁이에 있는 허름한 국밥집. 서울 한복판이 아닌 시골장터에서 보았음 직한 이 집이 바로 간판에는 추어탕이라고 쓰여 있으나 막상 들어가면 추어탕이 아닌 우거지 얼큰탕만 전문으로 팔고 있는 집이다.

이 집 주인 권영희(61)씨는 "1951년 1·4후퇴 때 북한에서 넘어온 시어머니가 추어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으니 대략 57년쯤 되었다"고 말한다. 권씨는 "지금으로부터 36여 년 앞에 시어머니로부터 가게를 이어받았다"며 "5백원을 할 때나 1000원을 할 때나 1500원을 할 때나 재료는 조금 바뀌었지만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권씨는 이어 "폭 고아 만든 우거지 얼큰탕은 술 먹은 사람들 속 풀어 주는데 그만"이라고 귀띔한다. 권씨는 또 "우거지를 만들 때 속배추를 쓰면 맛이 없다. 진녹색 겉배추를 써야 우거지 특유의 맛이 난다"며 "저희 집 우거지 얼큰탕을 먹어 본 사람들은 소화가 잘된다며 다시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우거지 얼큰탕 5백 원을 할 때나 1천 원을 할 때나 1천5백 원을 할 때나 재료는 조금 바뀌었지만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 우거지 얼큰탕 5백 원을 할 때나 1천 원을 할 때나 1천5백 원을 할 때나 재료는 조금 바뀌었지만 맛은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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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 얼큰탕을 먹고 있는 80대 할아버지 이 집 국밥을 먹고 나면 속이 아주 편안해서 좋아. 요즈음 이렇게 맛나고 값 싼 국밥이 어디 있겠어
▲ 우거지 얼큰탕을 먹고 있는 80대 할아버지 이 집 국밥을 먹고 나면 속이 아주 편안해서 좋아. 요즈음 이렇게 맛나고 값 싼 국밥이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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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 집 국밥을 먹으러 와"

"제가 80년대 중반 서울에 올라와 이 집에 처음 왔을 땐 국밥 한 그릇에 500원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집에 언제부터 다니셨나요?"

"한국전쟁이 마악 끝나면서부터 이 집에 다니기 시작했으니까 대략 50년 넘는 단골인 셈이지. 요즈음은 신림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 집 국밥을 먹으러 와. 이 집 국밥을 먹고 나면 속이 아주 편안해서 좋아. 요즈음 이렇게 맛나고 값 싼 국밥이 어디 있겠어."

6일(일) 점심나절. 언론인 윤재걸(시인), 작가 강기희씨와 함께 우연찮게 한 자리에 앉게 된 한 할아버지(80). 할아버지의 말씀은 이 집 국밥의 깊은 맛과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나그네가 할아버지에게 막걸리 한 잔을 권하자 "자전거도 음주 운전을 하면 안 돼"라며 단칼에 말을 자른다. 할아버지 국밥 먹는 모습을 사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찍어! 찍어!"라며 포즈까지 취한다. 정말 멋쟁이 할아버지다.

이 집의 특징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아주머니가 사람 수에 맞추어 공기밥 한 그릇과 함께 우거지 얼큰탕을 낸다는 점이다. 밑반찬은 꼭 하나,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듯한 짜디 짠 깍두기뿐 아무것도 없다. 소금과 고춧가루가 놓여 있긴 하지만, 이는 밑반찬이 아니라 입맛에 따라 간을 맞추는 소스에 불과하다.

이 우거지 얼큰탕의 가격이 1500원이다. 자장면이나 라면도 3000~4000원 하는 이명박 시대에 이렇게 값싼 식당이 서울 종로 한복판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니. 게다가 맛이 음식값처럼 형편없는 것이 아니다.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이 집 우거지 얼큰탕의 시원하면서도 깊은맛을 쉬이 잊지 못한다. 사실, 나그네가 10여 년이 훨씬 지난 뒤 이 집을 찾은 것도 그 감칠맛이 그리워서였다.

깍두기 밑반찬은 꼭 하나,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듯한 짜디 짠 깍두기뿐 아무 것도 없다
▲ 깍두기 밑반찬은 꼭 하나, 고춧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듯한 짜디 짠 깍두기뿐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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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 얼큰탕 이 우거지 얼큰탕의 가격이 1천5백 원이다
▲ 우거지 얼큰탕 이 우거지 얼큰탕의 가격이 1천5백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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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얄미운 넘들이 먹을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넘들이야

"매일 꼭두새벽마다 소뼈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우거지는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서 사온다. 우거지는 특히 흐물흐물 녹을 정도로 포옥 삶았다가 그늘에 한번 말려서 다시 쓴다. 국밥 값이 워낙 싸다 보니 100그릇을 팔아도 15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국밥 값이 싸다 해도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뼈는 쓸 수가 없지. 이 세상에서 가장 얄미운 넘들이 먹을거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넘들이야."

손님이 많을 때는 하루에 1천 그릇 이상을 팔기도 한다는 이 집 우거지 얼큰탕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먼저 국산 소뼈를 우려낸 국물에 흐물흐물하게 한번 삶은 우거지를 넣은 뒤 송송 썬 대파와 두부, 갖은 양념을 넣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찌 그뿐이겠는가. 한 곳에서 외길을 걸어온 이 집의 오랜 역사와 이 집 주인의 오랜 손맛에 이 집 국밥의 비법이 숨겨져 있지 않겠는가.

5일(일) 저녁. 광화문과 시청 주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날밤을 새운 뒤 찾은 낙원상가 우거지 얼큰탕 전문점. 세월은 흐르고, 주변 건물과 길은 많이 바뀌었어도 시골장터에서 만난 국밥집처럼 살가운 정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옛 그대로의 허름한 집. 이 집에서 10여 년 만에 다시 맛보는 우거지 얼큰탕의 깊은맛은 옛 그대로다.

언론인 윤재걸씨는 "이 집 국밥의 깔끔하고도 시원한 맛이 옛 추억과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며 "앞으로 단골집으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작가 강기희씨도 "'신보릿고개' 시대를 맞아 이 집처럼 서민들이 값싸고 맛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식당이 전국 곳곳에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거지 얼큰탕 이 식당 들머리에 수북히 쌓여 있는 우거지 얼큰탕
▲ 우거지 얼큰탕 이 식당 들머리에 수북히 쌓여 있는 우거지 얼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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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가 딸랑거린다. 식당에 들어가 차림표를 바라보면 한 끼 밥값도 꽤 올랐다. 그렇다고 끼니를 굶을 수도 없다. 이럴 때, 낙원상가 한 귀퉁이에 있는 우거지 얼큰탕 전문점에 가서 1500원짜리 국밥 한 그릇 후루룩 후루룩 먹어보자. 얼큰하고 시원하게 혀끝을 끝없이 희롱하는 국밥 한 그릇에서 돈의 가치와 먹을거리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새록새록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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