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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식의 말을 침착하게 경청한 당계요는 다정한 음성으로 화답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부끄럽습니다. 본국이 공화정부를 수립한 지 이미 10년이 지났습니다. 이 10년 사이 정치인은 나라를 팔았고 군부는 할거했으며 잦은 내우외환으로 나라는 위태로운 지경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행히 손 총통이 호법정부를 수립해 민족의 앞길을 밝히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북양군벌을 철저히 타도해 중국을 통일하고자 모든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귀국의 독립운동에 대하여 깊은 동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지원을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신규식은 앉은 채로 가볍게 목례하며 당계요에게 사의를 표했다.

“선생의 정의로움에 경의를 표합니다. 중국과 한국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중국 측은 본국의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내분에 밀려 역부족이니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부디 귀국의 통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물론이지요. 하루속히 잃어버린 국토와 독립과 자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국 임시정부의 군사 및 경제의 현 상태는 어떠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신규식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가져다 입에 댄 후 말하기 시작했다.

“상해에서 수립된 본국의 임시정부는 여전히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군사적 측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의 군사 활동은 연길, 길림성, 영고탑 일대를 근거지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은 본국과 비교적 거리가 가까워 일을 처리하기에 편리할 뿐더러, 동북삼성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이 200만 명에 육박하므로 경비 조달이 다소 용이합니다. 일부 동지들은 이곳에 신흥군관학교를 설립해 군사교육을 실시하면서 군사 인재 및 혁명 간부 양성에 힘을 쏟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북 지역에서 일본 세력이 팽창하고 장작림이 외교 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강제로 해산되었습니다.

이에 군관학교의 생도들은 한국 독립군으로 투신하거나 북로군정서의 서 일 선생 및 김좌진 장군의 휘하로 귀속해 지난 해 음력 9월 상순 길림성 화용현에 있는 청산리 부근에서 일본군 5만여 명과 격전을 벌인 끝에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집계에 따르면 일본군 사상자는 3,300명에 달하며 연대장 한 명이 죽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비장한 전투로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독립군이 비록 큰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고정적 근거지를 상실하게 됨으로써 향후 발전 가능성은 지금 낙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경제적 측면을 말하자면, 곤궁한 형편이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정도입니다. 국내 동포들은 모두 일본의 감시를 받아서 자금 지원에 큰 어려움을 겪는 반면 해외 동포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모금 운동을 벌이며 피땀 어린 자금을 임시정부에 지원하고 있지만 그 액수가 미미해 어려움이 큽니다.”

당계요는 머리를 끄덕이며 신규식의 말에 동감을 표해 주었다.

“대체로 한 민족의 독립운동에는 자국민의 단결과 노력뿐 아니라 외부의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과거 중국 혁명도 외부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현재 중국 정세가 혼란스러운 것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저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길에 한국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패기가 넘쳐 전혀 망국민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한국인은 머지않아 나라를 찾을 것이라고요. 제가 운남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군사 인재 양성 면에서 귀국을 도울 것입니다.”

그는 이 약속을 지켰다. 운남군관학교에서는 한국임시정부가 증명한 신분증을 지참한 학생들은 모두 수용해 학비와 기숙사비를 면제해 주면서 50명을 졸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프랑스 은행에 예치해 놓은 자금이 있는데 현재 은행이 파산 상태입니다. 지불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10만 원을 지원하겠습니다.”

이 약속은 은행 예금이 지불되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속히 운남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선생뿐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상해로 돌아가면 여러 동지들에게 선생의 후의를 전하겠습니다.”

“운남으로 가는 일은 조만간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십시오. 운남으로 가자마자 귀국 정부 요원의 파견을 요청하겠습니다. 운남성은 귀국의 요원들을 따뜻이 맞이할 것입니다.”

그가 운남으로 간 뒤 한국정부는 복정일을 파견하여 군사학교 협력 건을 협의했다.

“선생의 뜨거운 마음에 감사드리며 모든 일을 조치해 주신 대로 수행하겠습니다.”

신규식은 당계요에게 다시 사의를 표했다. 두 사람은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당계요가 신규식에게 물었다.

“언제 광동성으로 가시는지요?”
“오늘 오후에 가려고 합니다.”

“무슨 일로 그리 서두르십니까? 하루 더 머무르실 수 있다면 오늘 저녁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초대는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 응하겠습니다.”
“꼭 그리해 주십시오.”

광동호법정부 총통 손중산

광동호법정부 총통 손중산은 거울 앞에서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손문이었다. 중산은 그의 호였다. 인민복 상의는 그가 디자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인민복 스타일의 옷을 아예 중산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제는 관리들이면 누구나 그런 상의를 입었다.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관음산의 자락을 보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는 비서장 호한민, 외교부장 오정방을 호출했다. 한국 임시정부 특사의 내방 회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당계요 성장은 꼭 신규식 특사의 요청을 들어주라고 하는데 두 분은 어떻게 보시오?”

비서장 호한민은 말을 아꼈다. 대신 외교부장 오정방이 나섰다.

“각하, 신규식 선생은 저도 남 못지않은 우정을 갖고 있는 친구입니다.”

손중산은 다소 근엄하게 말했다.
“나의 친구이기도 하오.”
“외람스럽습니다. 하지만 공과 사를 가려야 할 일입니다.”
“공사를 가리다니오?”
“한국 임시정부를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말해 보시오.”
“우리 중국은 지금 태평양회의에 전력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손중산은 신규식이 와서 무엇을 요구할지를 이미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신규식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신규식에게 물심양면으로 빚을 진 바가 있었다. 가장 어려웠던 상해 시절, 신규식의 도움은 그에게 큰 힘이 된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신규식은 이승만의 외교 노선 때문에 임시정부 내 입지가 어렵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이때 외교적으로 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자신의 도리라고 그는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부의 반대를 무마해야 했다. 반대론자들이 어떤 논리를 제기할지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그가 아까 중산복을 입으며 생각한 것은 바로 그 문제였다. 그는 확신이 서자 비서장과 외교부장을 호출한 것이었다.

총통이 자꾸 되묻기만 하자 오정방은 다소 당혹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는 소신 있는 원칙주의자였다.

“각하, 영토가 없는 나라를 외교적으로 승인할 수는 없는 겁니다. 영토가 없다는 것은,”

갑자기 손중산이 오정방의 말 중간에 끼어들었다.
“통치 영역이 없다는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각하. 우리가 한국을 승인하면 태평양회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오 동지.”

손중산은 동지라는 호칭으로 외교부장을 불렀다.

“바로 그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광동정부도 북경정부에 비해 중국 내 통치 영역이 훨씬 좁습니다. 그러니 통치 영역이 없는 한국을 승인함으로써 우리의 주장을 일관성 있게 강화시킬 수가 있는 겁니다. 내가 한국을 승인하려고 하는 것은 신규식과의 우정 때문이 아니고 바로 우리 중국의 국익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총통의 얼굴만 쳐다볼 뿐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그:#당계요, #손중산, #신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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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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